'전기 1로 열 4' 생산 유럽 히트펌프 열풍, 韓서 보일러 대체하나

열 흡수·방출 '역카르노 사이클' 방식…가스비 최대 75% 절감
아파트 확산 정부 적극 권장하지만…비용·설치 여건 '숙제'

삼성전자가 정부의 난방 전기화 보금사업에 발맞춰 공기열 히트펌프 기반의 'EHS 히트펌프 보일러'를 국내 시장에 본격 출시한다고 20일 밝혔다. 사진은 삼성전자 'EHS 히트펌프 보일러' (삼성전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4.20 ⓒ 뉴스1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히트펌프(Heat Pump)'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핵심기술로 급부상하면서 기존 보일러를 대체할 수 있을지 여부에 이목이 쏠린다.

히트펌프는 화석연료를 직접 태워 열을 얻는 기존 보일러와 달리 주변 공기나 물에 포함된 열을 끌어와 실내로 옮기는 '열 이동' 방식을 사용한다. 전기를 1만큼 투입하면 3~4배 이상의 열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압도적 효율을 자랑한다.

이에 정부도 공동주택 설치 허용 등 제도 정비에 나서며 확산 기반을 마련하는 모습이다. 다만 기존 아파트의 경우 초기 도입 비용과 설치 여건 등 현실적 제약은 여전히 남아 있다.

열을 '만드는' 게 아니라 '옮긴다'…가스비 최대 75% 절감하는 고효율

22일 업계에 따르면 히트펌프는 공기·물·지열 등 외부 열원을 활용해 실내로 열을 이동시키는 설비다. 냉매를 압축하고 팽창시키는 과정에서 열을 흡수·방출하는 '역카르노 사이클'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증발기에서 외부 열을 흡수한 냉매는 압축기를 거치며 고온·고압 상태로 바뀌고, 응축기에서 실내로 열을 전달한 뒤 다시 액체로 돌아간다. 이후 팽창밸브를 거쳐 저온 상태로 낮아지며 사이클이 반복된다.

이 같은 구조로 히트펌프는 직접 열을 만드는 연소 과정이 없기에 에너지 효율을 뜻하는 성적계수(COP)가 3.0~4.0에 달한다. 이는 효율이 100% 미만인 가스보일러보다 에너지 소비량을 70% 이상 줄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전기 1을 사용해 최대 4의 열을 얻는 셈이다.

일반 전기히터가 1대1 수준의 효율을 보이는 것과 확연히 대비된다. IEA 등도 히트펌프가 가스보일러 대비 에너지 사용을 크게 줄일 수 있는 핵심 기술로 평가한다. 화석연료를 직접 연소하지 않아 탄소배출도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이에 열에너지 소비의 대부분을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서도 히트펌프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LG전자는 국제 탄소배출권 인증기관인 골드스탠다드에 ‘고효율 히트펌프 기술을 활용한 연료 전환 기반 탄소감축 프로젝트’ 등록하고 탄소배출권 사업을 확대한다고 14일 밝혔다. 사진은 LG전자 공기 열원 히트펌프 '써마브이 R290 모노블럭' (LG전자 제공. 재핀매 및 DB 금지) 2026.4.14 ⓒ 뉴스1
아파트 확산 '초기 단계' 정부 적극 권장…비용·설치 여건 걸림돌

히트펌프는 그동안 단독주택 중심으로 보급돼 왔다. 실외기 설치 공간과 배관 구조 등 물리적 조건을 확보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앙난방형 시스템과 개별 세대 설치형 제품이 확대되며 아파트 적용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정부 역시 공동주택 설치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열에너지 혁신 전략'을 통해 신축 건물에 도시가스 대신 히트펌프 도입이 가능하도록 법령을 정비하고, 아파트 단지 내 중앙식 히트펌프 시스템 도입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가스보일러 대비 20~30% 높은 초기 설치비가 여전한 걸림돌이지만 정부가 가구당 설치비의 최대 70%를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파격적인 혜택을 예고하며 경제성 문턱을 대폭 낮췄다.

정부는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 대를 보급해 온실가스 518만 톤을 감축한다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수립했다. 산업 현장에서도 가스보일러를 히트펌프로 교체할 때 탄소배출권 크레딧을 제공하는 등 제도적 뒷받침이 강화되는 추세다.

다만 현실적인 제약도 적지 않다. 기존 건물의 경우 전력 용량과 배관 구조를 바꿔야 하는 경우가 많아 도입 비용이 많이 든다. 일반적으로 초기 설치비는 가스보일러 대비 20~30%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외기 설치 공간 확보도 변수로 꼽힌다. 특히 고층 아파트나 노후 주택에서는 설치가 제한되는 사례도 있다.

기술적 한계도 존재한다. 저온 환경에서는 공기 중 열에너지가 줄어들어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 다만 최근에는 저온 성능을 개선한 제품이 출시되며 한계를 보완하고 있다.

기업들도 시장 선점에 나섰다. 삼성전자(005930)의 'EHS 히트펌프 보일러'는 고효율 냉매 압축 기술과 결빙 방지 기술을 갖춰 영하 25도의 혹한 환경에서도 최대 70도의 고온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또한 스마트싱스(SmartThings) 앱을 통해 실시간 전력 소모량을 모니터링하고 최적화하는 기능을 탑재해 사용자 편의성을 높였다.

LG전자(066570) 역시 '써마브이(Therma V)'를 필두로 유럽 시장을 석권한 데 이어, 국내에서도 고효율 히트펌프 판매를 통한 탄소배출권 확보 등 단순 기기 판매를 넘어선 에너지 설루션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초기 설치비용과 공동주택의 인프라 제약이 단기적인 확산을 더디게 할 수는 있다"면서도 "하지만 탄소중립 규제와 정부 보조금 지원이 본격화하고 있는 만큼, 히트펌프는 중장기적으로 보일러를 대체하는 표준 난방 기술로 빠르게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kha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