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칼럼] 사람과 기술을 받들면

김화진 미시간대 석좌교수(법무법인YK 고문)

김화진 미시간대 로스쿨 석좌교수

HD현대 권오갑 명예회장은 '현대중공업을 구한 사람'으로 통한다. 현대오일뱅크를 업계 선두기업으로 만든 뒤에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발탁되었는데 그때가 바로 2014년이었다. 2014년은 한국 조선업이 그야말로 백척간두에 섰던 사상 최악의 불황 때다. 현대중공업이 수조 원대의 적자를 내면서 존망의 위기에 내몰렸었다. 당시의 위기는 2008년 세계를 뒤덮었던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다. 경기침체로 글로벌 물동량이 감소해 해운산업이 어려움을 겪었고 그 결과 선박의 발주가 급속히 감소했다. 겹쳐서, 중국 조선사들이 급성장했는데 중국 조선사들은 저가 수주를 무기로 한국에 도전했다. 한국 조선사들도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유가 상승기에 해양플랜트 사업에 지나치게 매달렸던 것도 문제였다. 해양플랜트는 종래 한국 조선산업이 잘 모르던 높은 수준의 기술력이 필요한 분야였다. 마진율은 컨테이너선의 2배에 달하지만 설계 변경이 잦았고, 이는 건조 지연으로 이어져 비용이 커졌다. 해양플랜트 사업이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은 불합리한 계약 조건도 이유였다. 건조 도중에 설계를 변경한다면 의당 의뢰한 측이 공정 지연 책임과 비용을 커버해야 하는데, 조선사가 일방적으로 부담한다는 계약을 체결하면 발주 측은 건조 중이나 완성 직전에 언제라도 설계를 변경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그런 식의 계약이 가능했던 이유는 다급해진 한국 조선사들의 실적 부담이었다.

나아가 한국은 해양플랜트의 핵심인 정유 관련 설비를 만들어 내는 기술이 없었다. 발주처는 해외나 자국에서 핵심 설비와 전문 인력을 들여와 설치하는 조건으로 협상 우위를 점했다. 여기에 더해 조선 3사가 수주 경쟁에 나서서 서로 저가 경쟁을 벌였다. 그러다가 산유국들의 석유 과잉 공급이 발생하자 유가가 하락했고 그 상황에서는 고비용의 해양 시추가 인기가 없어져 발주처들은 온갖 클레임을 걸어 인도를 미루거나 거부하는 만행을 부렸다. 결국 현대중공업은 해양플랜트 비즈니스에서 손을 떼버렸다.

권오갑 HD현대 명예회장이 현대중공업 대표이사이던 2022년 7월 22일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열린 차세대 이지스구축함 제1번함 정조대왕함 진수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뉴스1 안은나 기자

2014년 한 해에만 약 3조 원이 넘는 적자가 발생했다. 창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인력을 감축하고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는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경쟁력 없는 해양플랜트는 줄이고 기존의 사업에 다시 방점을 두었다. 누적 적자가 7조~8조 원이 됐다. 구조조정은 2016년까지 계속됐다. 수주도 LNG선이나 초대형 컨테이너,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선별 전략을 채택했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던 차에 친환경 규제 강화의 시대가 오면서 LNG선 시장이 급속히 성장했다. LNG선 기술은 한국 조선사들이 선두였다. 시장의 신뢰를 받고 있었다. 그 결과로 조선산업의 수익성이 급격히 개선되기 시작한다. 현재 LNG선은 가장 부가가치가 큰 선박이고 한국이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회생했다. 단순히 경기가 회복되어서가 아니라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리스크를 제거하는 동시에 LNG선에 집중한 결과다. 그 모든 과정이 권오갑 사장의 리더십 아래에 진행됐다.

권 사장은 오너경영자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당시 4년 정도 무급으로 일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집안 살림을 축냈다. 그뿐 아니라 최고경영자로서 채권단에 개인적인 보증까지 서야 했다. 수조 원의 누적 적자가 있는 기업의 채무에 보증을 서는 일은 누구도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권 명예회장은 그보다 더 힘들었던 일이 같이 일하던 동료, 후배들을 회사에서 떠나게 하는 것이었다고 회고한다. '주인보다 열 배 더 독한 놈이 나타났다'는 플래카드도 울산시 곳곳에 등장했다. 새로 사장에 부임해서 그런 일을 시작해야 했을 때 현대중공업의 시가총액은 7조 원 정도였다. 지주회사 체제로 재편된 지금의 시가총액은 약 150조 원이다. '47년 회사원' 권오갑 명예회장의 지론이 있다. "사람과 기술을 받들면 어떤 위기도 돌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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