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100달러, 환율 1500원' 뉴노멀 대비…기업 비상경영 확산
[고유가·고환율 뉴노멀]①생산비 11% 이상 급등, 성장률 0% 가능성
정유, 국내 소비 줄고 수출 제한…항공, '이중고'에 비상경영
- 박기호 기자, 신현우 기자, 김진희 기자, 김성식 기자
(서울=뉴스1) 박기호 신현우 김진희 김성식 기자
고유가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전쟁 종식 혹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해제인데 기업들이 어떻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고유가 파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정말 무섭습니다.
사상 초유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중동산 원유 공급이 막히고 국제 유가가 폭등하자 우리 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1400원 수준의 고환율 국면이 500일가량 지속되고 최근에는 심리적 마지노선인 1500원을 돌파했다.
더 큰 문제는 고유가·고환율이 고착화돼 '뉴노멀(new normal, 새로운 표준)'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원유 생산시설이 파괴돼 중동 상황이 안정을 찾더라도 정상화까지는 2년 이상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는 물론 기업들도 고유가·고환율 장기화에 대한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에 대한 직접적 충격이 가시화하고 있다. 20일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약 3주간 지속되는 단기 공급 충격으로 전 산업 평균 생산비는 4.2% 상승하고 제조업은 5.2%, 서비스업은 1.4% 오를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장기 공급 충격이 이뤄지면 제조업 생산비 상승률은 최대 11.8%까지 확대할 것으로 예상됐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와 제조업 원자재 공급망 전반에서 중동 의존도가 높아 복합 공급망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원유, 액화천연가스(LNG)뿐 아니라 나프타, 헬륨 등 화학·비료·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주요 산업 원자재의 중동 의존도가 높기에 에너지 가격 상승과 원자재 공급 차질이 동시에 발생한다.
원유, LNG 가격 상승 여파는 석탄 및 석유제품, 전력·가스 부문 충격이 가장 크고 이후에는 화학·금속·운송 등으로 연쇄 파급되는 구조다. 봉쇄 장기화 시 석유제품 생산비는 82.98%, 전력·가스 제품은 77.71% 상승할 것으로 분석됐다.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에 대한 직접 비용 충격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공정용 소재 공급이 차질을 빚고 장비 운송이 지연돼 물류비 상승, 수요 위축 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결국 대다수 기업의 실적이 하락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게다가 전쟁이 에너지 인프라를 직접 공격하는 양상으로 번지면서 종전이 되더라도 세계 에너지 시장에 미칠 악영향이 수년간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가스·석유 수송은 재개할 수 있지만 생산 기반 시설 복구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후 손상된 에너지 생산 기반 시설 복구에 2년 이상이 걸렸다. 에너지 공급망 재건에 필요한 시간을 감안하면 고유가 시대는 한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고환율 역시 우리나라 기업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위험자산 선호 심리 위축으로 지난 19일 달러·원 환율은 전날 대비 17.9원 오른 1501.1원으로 마감했다. 주간 거래에서 환율이 1500원대로 마감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우리 주요 기업들은 올해 경영 활동의 최대 복병으로 '고환율'을 우려했다. 뉴스1이 지난해 12월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올해 경영 활동 최대 변수로 '환율 변동성'이라는 응답이 34.9%로 다른 현안보다 우선했다.
다른 설문조사에선 대기업의 경우 올해 감내할 수 있는 환율 수준은 1400원대로 판단했다. 1500원이 넘으면 비상경영에 돌입하는 등 기존의 경영 계획은 폐기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적정 환율은 평균 1362.6원으로 집계됐다. 1500원이라는 뉴노멀은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도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유가 상승세가 고착하면 원화 가치가 추가로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하면 환율은 1550원까지 오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고환율 상황 장기화 시 기업이 생산비용 인상분을 판매가에 반영하지 않으면 80.1%의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역시 비상에 걸렸다. NH금융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선 전쟁이 3개월 이어지면 성장률은 0.3%p, 1년간 지속되면 0%대까지 내려갈 것으로 추정됐다. 물가 상승률은 2~4%p 높아지지만 소비는 0.3~0.6%p, 투자는 0.6~0.7%p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 모두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위기 요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글로벌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이 고착하면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 특성상 불황 국면으로 진입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고유가·고환율은 이미 우리 주요 업종을 타격했다. 원유 수급난에 시달리고 있는 정유업계는 사면초가 신세다. 단기적으로는 정제마진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원유를 들이지도 못하고 있고 환율마저 상승하면서 극심한 불확실성이 업계를 휘감고 있다. 게다가 정부가 원유 자원 안보 대응 수위를 주의(2단계)로 격상하면서 국내 유류 소비가 줄어들 것으로 보이고 수출마저 제한되면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핵심 원료인 나프타 공급에 제한이 걸린 석유화학 업계는 셧다운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가동률을 최저 수준인 50%대까지 낮췄지만 비축 물량은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업계에선 이르면 이달 말부터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기업이 발생하고 최대한 버티는 기업 역시 4월 중순까지가 마지노선이라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가동률을 낮추고 있지만 현 상태가 계속되면 공장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항공업계는 유가 급등, 고환율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업계는 리스크를 줄이는 데 총력전을 펼치고 있으며 일부 항공사는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항공사 전체 비용 지출 중 유류비 비중이 30% 내외로 가장 많다. 대한항공의 지난해 전체 비용 지출 14조 9600억 원의 28%인 4조 1600억 원은 유류비다. 항공유 가격이 배럴당 1달러 변동하면 약 3050만 달러(약 460억 원)의 손익 변동이 발생한다. 아시아나항공의 유류비는 전체 비용 지출의 29%에 달했다. 유가 급등으로 항공사들은 오는 4월 적용되는 유류 할증료 가격을 이달 대비 3~4배가량 인상한 상태다. 대한항공의 미국 동부 노선 유류 할증료는 40만 800원(왕복 기준)으로 올랐다.
자동차 업계는 소비 심리 악화로 판매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에선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을 돌파하면 내연기관차 수요가 최대 10%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 심리 자체가 크게 위축돼 전체 차종에서 판매 부진이 발생할 수 있고, 재고가 쌓일 경우 가격 인하 압력도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업계의 경우 탱커선 등의 발주 물량 확대가 예상되지만 동시에 생산비 상승으로 큰 효과를 체감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용접도장 등 연료 집약 공정뿐 아니라 운송비 급등으로 철광석과 후판 등의 원자재 가격도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철판 절단에 활용되는 에틸렌 공급 역시 쉽지 않아 생산에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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