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울산' 구조개편안 데드라인 3월 넘기나…중동 변수에 예측불허

쉐브론 동의·샤힌 변수 등 난제 산적…호르무즈 봉쇄로 유가 급등
업계 실효성 있는 '에너지 비용' 지원 절실 호소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25일 서울 서초구 코트라에서 열린 석유화학 사업재편승인기업 CEO 간담회에서 CEO들과 기념촬영을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남수 HD현대케미칼 대표, 이영준 롯데케미칼 대표, 김 장관, 송명준 HD오일뱅크 대표. 2026.2.25 ⓒ 뉴스1 김명섭 기자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여수와 울산 석유화학 산업단지 재편 방안이 3월 말까지 나오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최종안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중동 변수까지 더해진 때문이다.

정부는 최종안 제출 시한을 3월 말까지 정하고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업계 내부에서는 "한 달이라는 시한 내에 합의를 끌어내기엔 무리"라는 회의론이 지배적이다.

11일 오후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여천NCC 3공장 앞.2025.8.11 ⓒ 뉴스1 김동수 기자
정부 '3월 시한' 압박에도…쉐브론 동의·샤힌 변수 등 난제 산적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말까지 여수와 울산 단지의 사업재편 조율을 마치겠다는 입장이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주도한 대산 모델은 비교적 명확한 의사결정 구조 덕분에 110만 톤 규모의 NCC 감축 합의에 성공했다.

하지만 여수와 울산은 업체별·주주별 셈법이 완전히 엇갈린다. 우선 여수 산단은 다국적 지배구조와 주주 간 이견이 최대 걸림돌이다. LG화학과 GS칼텍스는 설비 통합 원칙에는 합의했으나 GS칼텍스의 지분 절반을 보유한 미국 쉐브론(Chevron)의 동의 여부가 불투명해 진척이 더디다. 합작 구조 변화에는 해외 주주의 동의가 필요하다.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공동 운영하는 여천NCC는 3공장 폐쇄에 이어 추가 감축 여부를 두고 논의 중이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롯데케미칼 여수 공장 셧다운 여부 역시 협상 대상이다.

울산 산단은 신·구 설비 간의 갈등이 핵심이다. 오는 6월 준공을 앞둔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가 약 180만 톤의 에틸렌 증설을 예고하면서 기존 업체인 SK지오센트릭, 대한유화와의 생산량 조정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최신 공법을 갖춘 에쓰오일은 감축에 소극적인 반면 노후 설비를 운영 중인 타사들은 샤힌의 물량이 시장에 풀릴 경우 구조조정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 우려한다. 이처럼 업체마다 투자 시점과 설비 노후도가 제각각이라 단기간 내 합의를 끌어내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산은 주요 기업 간 이해관계가 비교적 단순해 합의가 가능했지만 여수와 울산은 업체 수가 많고 지분 구조도 복잡하다"며 "최종안 도출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3일(현지시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위협하는 가운데, 아랍에미리트 푸자이라 해안에 유조선들이 늘어서 있다. 2026.3.3 ⓒ로이터=뉴스1
호르무즈 봉쇄에 '사면초가'… 실효성 있는 '에너지 비용' 지원 절실

산단 내부의 갈등만큼이나 외부 상황도 최악이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5%가 통과하는 핵심 수송로다. 이곳이 봉쇄될 경우 글로벌 원유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국제 유가와 원료 가격이 동시에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했다. 6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WTI 가격은 전장보다 9.89달러(12.21%) 급등한 배럴당 90.90달러에 마감됐다. 2023년 9월 28일 이후 최고치다. WTI는 이번 주에만 23.88달러가 올라 주간 기준 상승률이 35.63%에 달했다. 집계가 시작된 1983년 이후 역대 최대다.

문제는 국내 석유화학 산업 구조가 유가 변동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국내 기업 대부분이 원유에서 추출한 나프타를 원료로 사용하는 NCC 공정을 활용하고 있어 유가가 상승하면 곧바로 원가 부담이 커진다. NCC 공정의 경우 운영 비용의 70~80%가 원료비로 구성된다.

이미 업황 자체도 좋지 않다. 중국의 대규모 설비 증설로 에틸렌 등 기초 유분 공급이 많이 늘어났지만 글로벌 수요는 둔화하면서 제품 가격은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의 대표 수익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는 최근 100달러 이하로 떨어지며 손익분기점(250~300달러)을 크게 밑도는 상황이다.

사업재편이 승인되더라도 실제 가동 중단이나 통합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당장 산업이 고사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금융·세제 지원과 함께 보다 실질적인 비용 절감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화학산업협회는 지난주 정부의 대산 1호 승인에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현재의 구조적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민간의 자구 노력은 물론, 정부의 실효성 있는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업계에서는 석화 공정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전기료 인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NCC 등에서 전력 사용이 많은 업계 입장에서는 가장 실질적인 원가 절감 방안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대산 1호 승인 패키지에서도 전기료 관련 혜택은 미비한 수준(4~5%)이라 기업들이 체감하는 실질적인 원가 절감 효과는 크지 않다"며 "실효성 있는 에너지 비용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여수와 울산의 재편 논의는 골든타임을 놓치고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kha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