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마진 30달러 육박 4년 만에 최고…정유사, 미소 대신 눈물 왜?

정제마진 상승, 수익성 개선 불구 원유·환율·물류비 증가 더 타격
지정학적 리스크발 '역성장' 가능성…정부, 가격 압박까지 가중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테헤란의 하메네이 거처를 촬영한 에어버스 위성사진. 2026.02.28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미국-이란 전쟁 직후 복합 정제마진이 30달러까지 치솟으면서 약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도입 비용을 뺀 값으로, 이 지표가 높을수록 정유사의 수익성이 좋아진다.

통상 업계에서 배럴당 4~5달러를 손익분기점(BEP)으로 보는 점을 감안하면 수치상으로는 '슈퍼 사이클'에 진입한 셈이다.

하지만 정유업계의 표정은 어둡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수익 지표는 치솟았지만, 그 이면에는 공급망 붕괴와 비용 폭등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유가와 고환율, 수요 위축이 맞물리는 '3중고'의 그림자가 짙어지면서 연초 기대를 모았던 실적 반등 시나리오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정제마진 30달러 육박, '상저하고' 기대 무색하게 만든 3중고

6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최근 복합 정제마진은 지난 3일 26.6달러를 기록했고 5일에는 30달러 수준까지 상승했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던 2022년 8월(19.36달러) 이후 최고치다.

복합 정제마진은 올 들어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올 1월 11달러에서 시작해 2월 중순에는 약 12~14달러, 2월 말에는 약 15~18달러까지 올랐다.

하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싸늘하다. 정제마진 호조라는 표면적인 수치보다 눈앞에 직면한 원유 가격 상승, 환율 급등, 물류비 증가라는 '3중고'가 더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에쓰오일·GS칼텍스·HD현대오일뱅크) 원유 도입 물량의 약 70%가 중동산이라는 점이 가장 큰 부담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등 주요 산유국에서 출발한 원유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만큼 해협 봉쇄가 현실화된 상황에서 원유 수급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정유사들은 미국이나 브라질, 멕시코 등으로 도입선을 다변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지만 이 경우 운송 거리 증가에 따른 운임 상승과 보험료 인상, 원유 품질 차이에 따른 정제 수율 변화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여기에 산유국이 기준유가에 프리미엄을 더한 공식판매가격(OSP)을 인상할 경우 실제 원유 도입 가격은 더 크게 오를 수 있다.

환율 변수도 부담이다. 국제 정세 불안으로 달러·원 환율이 1500원대 진입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원유 수입 단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 환율 상승이 수출 채산성에 일부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는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재고평가손익 변동성과 금융비용 증가를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업계 관계자는 "정제마진이 높다고 해서 마냥 웃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며 "원유 조달 비용과 환율, 해상 운임까지 동시에 뛰는 구조라 업계에서는 오히려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많다"고 말했다.

3일(현지시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위협하는 가운데, 아랍에미리트 푸자이라 해안에 유조선들이 늘어서 있다. 2026.3.3 ⓒ로이터=뉴스1
지정학적 리스크 발 '역성장' 시나리오…정부, 가격 압박까지 가중

업계가 가장 공포를 느끼는 대목은 전쟁 장기화로 인한 글로벌 경기 둔화와 석유제품 수요 위축에 따른 '역성장' 시나리오다. 전쟁으로 인해 유가 급등이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소비 심리를 얼어붙게 만들어 결국 석유 제품에 대한 수요 자체가 증발해 버리는 상황이다.

항공유와 휘발유 가격이 폭등하면 여행 수요가 줄고 물류비 부담에 전 세계 교역량이 급감하게 된다. 이는 정유사들에 '사 갈 사람이 없는 고가 제품'만 남기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정제시설을 겨냥한 드론 공격 등 중동 전역으로 군사 충돌이 확산할 경우 원유 조달 안정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에너지 공급망 불안이 장기화하면 원유 가격뿐 아니라 운임과 보험료, 금융 비용까지 동시에 상승하며 산업 전반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

실제로 국내 주요 정유사들은 이미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하며 원유 도입선 다변화와 재고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전쟁 장기화에 따른 장기 불황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재고평가이익 같은 장부상 이익은 일시적일 뿐"이라며 "에너지 안보 위기와 수요 절벽이 동시에 닥치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했다.

여기에 정부의 강도 높은 가격 압박은 설상가상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5일 "가격 상황을 점검한 뒤 고시를 통해 최고가격을 지정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겠다"며 전방위적 규제를 예고했다. 업계에서는 영업이익률이 1~2%대에 불과한 상황에서 유류세 인하 등 실질적 지원 대신 가격 통제에 나설 경우 수익성을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한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영업이익률이 1~2%대에 불과할 정도로 수익 구조가 한계치에 다다른 상황"이라며 "원가 상승 요인을 무시한 채 유류세 인하 같은 근본적인 지원 없이 무조건 가격만 내리라고 압박하는 것은 정유사에 모든 손실을 떠넘기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kha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