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조선 7척 발 묶이고 운임 3배 폭등"…재계, 정치권에 SOS
민주당-재계 긴급 간담회, 유가 부담·운송 난항 호소
선박 보험료 최대 12배↑…헬륨 90% 중동서 조달, 반도체도 영향권
- 박기호 기자, 이승환 기자
(서울=뉴스1) 박기호 이승환 기자
대미통상 환경의 변동성이 커지는 가운데 중동 사태로 우리 기업의 고민이 더욱 깊다. 사태 장기화는 당장 에너지, 해운 등의 산업은 물론이고 대(對)중동 수출 프로젝트 전반에 상당한 부담이 작용할 수 있어서 범정부 (차원의) 지원과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
경제계가 5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미국·이란 전쟁 여파에 따른 우리나라 주요 업종별 위협 요인을 전달하면서 대응·지원을 요청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이 엿새째 이어지며 확전 가능성이 제기되자 경제계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유가는 일단 진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의 보험료가 최대 12배까지 급등하는 등 물류비 부담은 커지고 있다. 정유 및 석유화학 업계는 원유 수급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팽배하고 중동에서 건설 및 인프라 사업을 진행 중인 기업들은 공기, 납기 등의 계약 문제로 현지 인력도 바로 철수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 주력인 반도체 생태계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동 정세·대미 관세 대응 민주당-재계 긴급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한국경제인협회, 한국무역협회를 비롯해 삼성·SK·현대자동차·LG 등 주요 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간담회에선 원유 수급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민주당에 따르면 현재 사실상 봉쇄된 호르무즈 해협에는 국내 정유사에 원유를 공급하는 7척의 유조선이 사실상 갇혀 있다고 한다. 이들 유조선에는 최대 200만 배럴 정도의 원유가 실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만 배럴은 우리나라의 전체 하루 원유 소비량이기에 최대 7일 치의 발이 묶여 있는 셈이다.
물론 국내 석유 비축분은 약 7개월(208일)을 사용할 수 있는 규모라 수급 위기 대응력은 충분하다. 하지만 업계에선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중동산 원유 수급이 불확실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된 것은 이번이 사상 처음이라서 원유 수급의 안정성이 담보되지 않고 있기에 비상 상황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는 중동 지역에서 원유의 70.7%를 수입하고 상당수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야 한다.
액화천연가스(LNG)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안도걸 민주당 의원은 "LNG는 비축 물량이 9일 정도라서 가장 큰 문제"라며 "LNG를 중심으로 한 핵심 에너지원의 안정적인 수급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가스 비축량은 의무 보유 기간인 9일보다는 충분한 수준이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중동(카타르)에서 LNG의 20.4%를 수입하는데 전쟁 여파로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데 있다. 이란의 보복 공격으로 중동 지역의 LNG 생산이 중단되는 등 에너지 공급망이 마비됐다. LNG는 대부분 장기 계약을 맺기에 단기적인 영향은 다소 제한적이라고 평가되지만 장기화하면 비싼 가격에 구매할 수밖에 없다. LNG는 국내에서 발전용으로 주로 사용되는데 공급 차질은 결국 전기요금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경제계는 물류비 부담도 호소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해운 운임은 3배 넘게 급등했다. 보험료가 인상했고 위험 지역 선박 운항 기피 현상이 확산했다. 이에 일부 해운사는 전쟁 위험에 따른 요금도 추가했다. 우회 항로 이용도 쉽지는 않다. 운송 기간은 최소 3일 이상 늘고 비용 역시 추가된다.
중동 지역에 진출한 우리 기업 직원들의 안전 문제도 경제계가 가장 크게 고민하는 대목이다. 경제계는 현지의 우리나라 공관에서 사전적인 예보를 중요하게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 현재 우리 기업들은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네옴시티 등 대규모 중동 지역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중동 지역에 체류하는 우리 기업의 주재원들 역시 상대적으로 안전이 확보된 곳으로 대피하거나 재택근무를 진행 중인데 공기, 납기 등의 계약 문제로 쉽사리 철수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전쟁이 장기전으로 진행되면 우리 주력 산업인 반도체 업종 역시 악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반도체 생산 과정에 있어 증착과 냉각 공정의 핵심 소재인 헬륨은 UAE 등에서 조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90%를 중동 지역에서 헬륨을 조달하고 있는데 전쟁 장기화로 수급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업계에선 단기적인 영향은 없고 장기화할 경우에 일부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그간 공급망 다변화 등을 추진해서 단기적으로는 문제가 안 된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미 비축 물량도 있고 공급망 다변화를 했다"며 "전쟁이 장기화했을 때 영향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창범 수석부회장은 "당장의 이슈로 설명해 드릴 것은 아니지만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를 우려해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차원"이라고 전했다.
또한 전 세계에서 건설 중인 데이터센터 40기 가운데 중동에서만 7~8기를 건설 예정인데 미국·이란 전쟁 확전 여파로 프로젝트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데이터센터에 반도체를 공급 예정인 우리나라 기업에도 불똥이 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협회 관계자는 "중동향 물류 관련 해상운임 및 할증료 급등과 더불어 호르무즈 통항 금지로 선복 확보 자체가 잘되지 않고 있다"며 "단기적으론 수출 지장의 영향 범위가 해당 지역으로 국한될 것으로 보이나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유가 상승이 제조 원가 상승으로, 결국 글로벌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goodda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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