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vs 36000" 숫자의 함정…로보락·다이슨 로청 흡입력 '꼼수'
소비자원 ‘와트(W)’ 적용 권고에도 파스칼(Pa) 고수
"파스칼 절대적 흡입력 단위로 보기 어려워"…숫자 마케팅 논란
- 원태성 기자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이 과장된 파스칼(Pa) 수치를 앞세운 중국 등 외산 업체들의 '숫자 마케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가 실제 청소 성능을 반영하는 '와트(W)'로 표기 단위를 일원화했음에도 로보락과 DJI 등 중국 기업들은 여전히 단위가 커 보이는 파스칼 표기를 고수, 소비자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이는 단순한 단위의 차이를 넘어 기술적 실체보다 시각적 효과에 치중해 시장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거세다. 단위 통일이 단순 표기 문제가 아니라 시장 질서를 바로 잡고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을 장악한 로보락을 포함해 최근 진출한 중국의 DJI, 영국 다이슨까지 글로벌 제조사들은 신제품 출시 때마다 흡입력을 수만 단위의 파스칼(Pa)로 여전히 표기하고 있다. 로보락의 신제품 'S10 맥스V 울트라'는 3만6000Pa, DJI의 '로모'는 2만5000Pa라는 압도적인 숫자를 강조한다. 다이슨이 선보인 '스팟앤스크럽 Ai 로봇청소기' 역시 흡입력을 1만8000파스칼로 표기하고 있다.
국가기술표준원은 이미 지난해 11월 KS표준(KS B 7303) 개정을 통해 로봇청소기 흡입력 시험 및 표기 방식을 '와트'로 일원화했지만 외국 기업들은 준수하지 않고 있다. 강제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005930)와 LG전자(066570) 등 국내 기업들은 이런 외산 업체의 행태를 '과장된 마케팅'이라며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2세대 올인원 로봇청소기를 출시하며 정부 권고에 맞춰 흡입력을 '10W'라고 명확히 제시했다.
문종승 삼성전자 부사장은 "흡입력이 진공도와 유량의 곱(W)으로 나타나야 실제 먼지를 빨아들이는 성능을 뜻한다"며 "진공도(Pa)는 유량이 없는 막힌 상태에서 모터의 압력을 측정하는 것으로 흡입력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매우 낮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로보락 등 외산 업체들은 국내 표준 도입에 여전히 미온적이다. 지난달 26일 열린 신제품 론칭쇼에서 장유정 로보락 한국 마케팅·PR 매니저는 "중국 본사도 표기 가이드라인을 인지하고 규제 취지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한국을 포함한 모든 글로벌 시장에서 동일하게 Pa 표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내부적으로 준비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언제 W 표기를 반영할지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당장 표기를 바꿀 계획이 없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파스칼은 공기 흐름이 없는 상태에서의 압력, 즉 진공도를 뜻한다. 모터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 압력에 가깝다. 반면 와트는 진공도에 실제 공기 유량을 곱해 산출하는 '흡입 일률' 개념으로 흡입구에서 먼지를 빨아들이는 실질 성능을 반영한다.
비유하자면 빨대 입구를 손가락으로 막고 빨 때 느껴지는 압력이 파스칼이라면 와트는 빨대로 실제 들어오는 '공기의 흐름(유량)'까지 포함한 수치다. 진공도만 높고 공기 흐름이 원활하지 않다면 실제 청소 성능은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
한 시험 기관 관계자는 "파스칼은 참고 지표일 뿐 절대적 흡입력 단위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숫자 마케팅 논란도 제기된다. 와트는 통상 한 자릿수 또는 두 자릿수로 표시되지만 파스칼은 수만 단위로 표기된다.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더 강력하다고 오인할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단위를 잘 보지 않기 때문에 흡입력 숫자가 크면 성능이 더 좋은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며 "외국 업체들이 이런 소비자 심리를 악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문제는 기술 경쟁의 방향이다. 파스칼 수치 경쟁이 과열되면 모터 출력만 키운 비효율 설계 제품이 양산될 수 있다. 전력 소모는 늘고 실제 청소 효율은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는 우려다. 반면 와트 기준은 흡입구에서의 최종 성능을 평가하기 때문에 설계 완성도와 에너지 효율 개선을 유도한다는 설명이다.
국내 업계에서는 글로벌 제조사들도 국내 표준에 맞춰 와트 표기로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흡입력 단위 논쟁은 단순한 숫자 싸움이 아니라 소비자 보호와 공정 경쟁을 가르는 문제라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을 공략하는 기업이라면 국내 기준을 따르는 것이 최소한의 책임"이라며 "흡입력 단위 통일은 단순한 표기 문제를 넘어, 기술 경쟁의 방향을 올바르게 잡고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한 필수적인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k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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