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이어 국민 안전까지"…첨단 방산 기술, 공공분야로 영역 확장
현대차 무인로봇 KAI 수리온 등 민수 전환 가속…방산 신성장 기회
정부 "정밀 기술 재난 현장 투입 확대"…운용 실적 수출 마중물
- 박기범 기자
(서울=뉴스1) 박기범 기자 = 방위산업 기술이 군(軍) 안보 영역을 넘어 국민 안전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전동화·무인화 등 첨단 방산 기술이 산불 진화와 재난 대응에 활용되면서 안보를 넘어 공공 서비스라는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005380)그룹은 계열사인 현대로템(064350)이 개발한 전동화 다목적 무인차량 'HR-셰르파'를 기반으로 무인소방로봇을 제작해 소방청에 4대를 기증했다. 향후 100대 규모로 공급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HR-셰르파는 원격·자율 주행이 가능한 전동화 플랫폼으로 군 작전 지원을 위해 개발된 무인차량이다. 이를 산불·대형 화재 현장에 투입 가능한 소방로봇으로 전환함으로써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고위험 지역 진입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이 같은 흐름은 정부 정책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열린 '방위산업 발전 토론회'에서 "국내 방산 무기의 정밀타격 기술을 활용하면 산불 진화 시 원점 타격 확률도 높아질 것"이라며 "방산 기업이 관련 기술을 개발할 경우 정부가 적극 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인공지능(AI) 기반 감시정찰 장비 등 첨단 방산 기술이 산불 예방·발견·진압 등 재난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지 관계 부처에 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밀 유도, 실시간 영상 분석, 무인 운용 체계 등 군사용으로 축적된 기술을 재난 대응 체계에 접목할 경우 초기 진압 성공률을 높이고, 인력 투입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게 정부와 업계의 공통된 판단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전날 무인소방로봇 기증식에서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 기술이 더 들어가야 한다.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며 "현대로템이 더 좋은 장비를 개발해 소방관들의 안전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방산 기술의 재난·안전 분야 확장이 산업 전반에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무기 체계 중심의 수요에서 벗어나 재난 대응, 인프라 보호, 공공 안전 등으로 적용 분야가 넓어질 경우 안정적인 내수 기반과 추가 수출 시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기 체계 양산이 끝난 뒤에도 민간 수요를 통해 생산 라인을 유지할 수 있고, 이는 부품 공급망 안정화와 단가 절감으로 이어져 방산의 가격 경쟁력 유지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방산 기술이 대형 재난 등 비군사적 위기 대응에 활용될 경우, 글로벌 안보 환경 변화 이후에도 산업 기반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정부가 방산 기술의 민간 활용에 적극적인 점은 향후 수출 전선에도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방산 기업들이 재난 대응용 기술을 개발할 경우 공공 부문에서 선제적으로 도입해 실적을 축적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기업에는 기술 개발 유인을, 정부에는 검증된 국산 장비 확보라는 이점이 동시에 돌아가는 구조다.
방산 수출은 통상 자국 군에서의 운용 실적이 중요한 평가 요소로 작용해 왔다. 국내 공공기관에서의 사용 경험 역시 해외 시장에서 신뢰도를 높이는 지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에서는 한국항공우주산업(047810)(KAI)의 다목적 기동헬기 '수리온' 사례가 대표적이다. 수리온은 방위사업청 주관 아래 국방과학연구소(ADD)와 KAI 등이 2006년부터 개발한 국산 최초 기동 헬기다. 2012년 육군에 실전 배치된 이후 기동·의무 헬기로 운용돼 왔다.
이후 파생형 개발을 통해 상륙기동, 의무후송, 경찰·해경·소방·산림 등 10개 기종 300여 대가 군·관용 헬기로 운용되고 있다. 특히 산불 진화용 헬기로 개조돼 2018년 국내에 처음 도입된 이후 운용 성과를 축적했고, 그 결과 지난해 이라크에 2대가 수출됐다. 수출액은 약 1357억 원으로 국산 헬기 수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군에서 성능을 입증하고, 국내 공공 분야에서 운용 경험을 쌓은 뒤 해외 시장으로 확장한 전형적 사례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국가기관이 실제 현장에서 운용한 데이터와 성과는 해외 바이어 설득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며 "재난 대응 분야는 글로벌 수요가 꾸준한 만큼 새로운 수출 시장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기증이 군용 다목적 무인차량(MUGV) 양산 사업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방위사업청은 다목적 무인차량 도입 사업의 최종 사업자 선정을 올해 상반기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2024년 4월 입찰을 시작한 이번 사업은 약 500억 원을 투입해 군인을 대신해 감시·정찰·전투·물자 이송 등 임무를 수행할 미래형 지상 플랫폼을 양산하는 것이 목표다. 사업에는 현대로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참여했다.
당초 방위사업청은 지난해 상반기까지 사업자 선정을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무인차량 성능 평가 기준을 둘러싼 논란과 업체 간 이견으로 일정이 지연됐다. 지난해 12월까지 완료하겠다는 수정 계획도 무산되면서 사업은 장기간 표류해 왔다.
업계 관계자는 "실제 공공기관 운영 사례는 기술 성숙도를 보여주는 지표"라며 "입찰 평가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pkb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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