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형 빅딜' 시작…석화 구조조정, 설 이후 TF 가동 등 '본격화'
석화 업계 1.5조 적자…구조조정 '골든타임', 대산 1호 분수령
"몸집만 줄여선 안돼"…고부가 스페셜티 전환·상생 모델 구축 필요
- 원태성 기자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국내 석유화학 구조조정 작업이 설 연휴 직후 본격화한다. 기업들이 마련한 자율구조조정 방안에 정부의 지원 방안이 더해져 구체적인 실행에 들어갈 전망이다. 이해관계가 엇갈려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빅딜'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주요 8개 석화사가 중국발 공급 과잉과 글로벌 수요 둔화로 인해 지난해 합산 영업손실이 1조 5000억 원에 달하는 등 기존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이에 정부와 업계는 설 연휴 직후 '범정부 위기대응 TF'를 가동하고 한계 사업 매각과 설비 통폐합을 골자로 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 로드맵을 본격화할 전망이다. 이번 개편은 단순한 감산을 넘어 범용 제품 중심의 사업 구조를 첨단 소재로 완전히 탈바꿈하는 체질 개선의 마지막 기회로 평가받고 있다.
18일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LG화학(051910), 롯데케미칼(011170), 한화솔루션(009830) 등 국내 주요 8개 석유화학사의 지난해 합산 영업손실은 약 1조 5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도 적자 규모인 1조 1000억 원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로 업계의 수익성 악화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임을 보여줬다.
세부 지표를 살펴보면 위기감은 더욱 뚜렷해진다. 롯데케미칼이 지난해 9436억 원의 막대한 영업손실을 기록했으며, LG화학 석화 부문과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 역시 각각 1652억 원과 2491억 원의 적자를 냈다. 범용 나프타분해시설(NCC)을 운영하지 않는 금호석유화학만이 상대적으로 선방했을 뿐, 업계 전반의 자산 손상이 가속화되며 미래 현금흐름 창출 능력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하는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에틸렌 생산능력을 최대 370만 톤 감축한다는 목표 아래 산업 재편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사례는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추진 중인 '대산 1호 프로젝트'다. 대산 공장을 물적분할해 합병하고 중복 설비를 조정하는 이 프로젝트는 향후 진행될 구조조정의 가이드라인이자 정부 지원의 기준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여수와 울산 등 다른 산단에서는 기업 간 이해관계 차이로 인해 논의가 공전하고 있다. 설비 노후도와 재무 부담이 제각각인 탓에 감축 규모 합의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향후 과제의 핵심은 구조조정의 실행력이 될 전망이다. 우선 산단별 NCC 통합 운영이 얼마나 구체화하느냐가 관건이다. 설비를 클러스터 단위로 묶어 가동률을 조정하고 중복 투자를 줄이는 방안은 방향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감축 규모와 자산 처리 방식에 대해서는 기업 간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설비 일부를 재생에너지나 수소 관련 시설로 전환하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이는 사업성 검토와 추가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업계에서는 지금이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인 만큼 설 연휴 이후 발표될 세부 집행 계획에 따른 시장 재편의 속도가 국내 석화 산업의 사활을 결정지을 것이란 평가를 내놓고 있다.
다만 구조조정의 성공은 단순히 설비를 폐쇄하는 '몸집 줄이기'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궁극적으로는 범용 중심 구조에서 고부가 스페셜티 중심으로의 전환 속도가 구조조정의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다.
롯데케미칼이 율촌 산단에 연산 50만 톤 규모의 슈퍼 EP(고기능 소재) 공장을 완공하고 AI용 회로박 사업을 강화하는 것은 '스페셜티 전환'의 대표적 사례다. 정부 역시 2026년 R&D 예산을 고부가 소재 분야에 우선 배정해 체질 개선을 뒷받침할 계획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범용 제품의 감산은 고통스럽지만, 이를 통해 확보한 재원을 스페셜티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대대적인 사업 개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여전한 난제다. 특히 인력 재배치와 지방 경제 위축 문제는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뇌관이다. 설비 통폐합은 필연적으로 고용 불안을 야기하며, 이는 석화 산업 비중이 높은 지역 사회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따라서 기업과 정부는 외환위기 당시의 자산 맞교환을 넘어서는 고용 승계 보장과 지역 상생 모델을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설비 통폐합은 결정 자체보다 실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산 손실과 노사 갈등을 어떻게 상쇄하느냐가 더 큰 과제"라고 강조했다.
k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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