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살린 '효자' 윤활유, AI 열풍 타고 액침냉각유 영토 확장
윤활유, 정유·화학 부진 상쇄…지난해 실적 방어 일등공신
윤활유 공급 과잉 우려…'미래 먹거리' 액침냉각유로 다변화 속도
- 원태성 기자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정유업계가 실적 부진을 만회할 돌파구로 윤활유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윤활유가 실적 버팀목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데다 액침냉각유 등으로 사업이 확장하고 있어서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고발열 환경이 일상화되면서 열 관리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기존 윤활유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액침냉각유 투자를 확대하며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이에 윤활유 사업이 단기 실적 방어를 넘어 정유업계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인지 이목이 쏠린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정유업체들의 윤활유 실적은 '효자 사업'이라는 평가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국제 유가 변동과 글로벌 경기 둔화로 정유와 석유화학 부문의 수익성이 크게 흔들렸지만 윤활유 사업은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유지하며 실적을 지탱했다.
SK이노베이션(096770)은 지난해 윤활유 사업 영업이익이 6076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SK이노베이션의 연간 연결 영업이익 4481억원을 웃도는 규모다. 석유 사업 영업이익이 3491억원에 그쳤고, 화학 사업과 배터리 사업에서 각각 2365억원, 9319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한 점을 고려하면 윤활유 사업이 사실상 실적을 떠받친 셈이다.
에쓰오일(S-OIL(010950))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윤활유 사업에서 5821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정유 부문에서 발생한 1571억 원의 적자와 석유화학 부문 1368억원의 손실을 상쇄했다. 윤활유 사업이 없었다면 연간 실적이 적자로 전환됐던 셈이다.
윤활유 사업의 강점은 낮은 변동성과 고부가가치 구조다. 휘발유나 경유처럼 국제 유가와 경기 변화에 따라 수요가 급격히 출렁이지 않고, 장비 성능과 신뢰성에 직결되는 제품 특성상 한 번 거래가 형성되면 장기 계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고객사 요구에 맞춘 맞춤형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도 가격 경쟁에 휘말리기 어려운 요인으로 꼽힌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4분기 윤활유 사업은 유가 하락으로 인해 마진이 상승했고 그룹3(Group III) 기유 생산 판매 최적화 노력으로 계절적 비수기임에도 판매량이 소폭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정유사 한 관계자 또한 "윤활유는 전체 매출 비중이 10% 미만이지만 경기 변동에 둔감하고 장기 계약 비중이 높아 수익 구조가 매우 탄탄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올해 윤활유 시장 전망은 다소 불투명하다. 중국과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중심으로 윤활기유 생산설비 증설이 이어지며 글로벌 공급 확대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서다. 에쓰오일 측은 2026~2027년 그룹3 윤활기유 증설 규모가 글로벌 공급 대비 약 6% 수준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업계에서는 윤활유 사업 특성상 공급 확대가 국내 정유사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고도화 설비와 품질 관리, 장기 거래 관계가 요구되는 사업 구조상 진입 장벽이 여전히 높다는 이유에서다. 신규 설비 증설도 계획 대비 지연되는 사례가 적지 않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시차를 두고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정유업계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윤활기유 기술 기반 '액침냉각유'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낙점하고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액침냉각은 서버와 전자기기를 비전도성 냉각유에 직접 담가 열을 식히는 방식으로, 기존 공랭식 대비 냉각 효율이 높고 전력 소모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고발열이 불가피한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주요 정유 4사는 이미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SK엔무브는 2022년 국내 최초로 데이터센터용 제품을 개발해 SK텔레콤에 공급한 데 이어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협력해 에너지저장장치(ESS)용 액침냉각유 상용화까지 성공했다. GS칼텍스는 삼성SDS, LG유플러스 등 주요 데이터센터에 '킥스 이머전 플루이드 S'를 연이어 공급하며 보폭을 넓히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004050)는 2028년까지 네이버클라우드에 자체 브랜드 '엑스티어 E-쿨링 플루이드'를 공급하기로 계약을 체결했고 서울대 AI 연구실 서버를 대상으로 안정성 검증에 착수했다. 에쓰오일 역시 고인화점 신제품인 '에쓰-오일 e-쿨링 설루션'을 개발하고 지투파워 등 스마트그리드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상용화 단계에 진입했다.
업계 관계자는 "고발열이 불가피한 AI 시대가 본격화될수록 액침냉각유의 수요는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라며 "윤활유 사업은 이제 전통적인 기계 산업을 넘어 데이터센터와 전기차 배터리 등 미래 첨단 산업을 지탱하는 핵심 전략 사업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전망했다.
k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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