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4 양산 시작, 필수 장비 ‘TC본더' 판도 변곡점…승자는?

한미반도체, SK하이닉스 '독점' 깨져…한화 추격에 실적 감소
한미 '해외 다변화·브랜드 강화' vs 한화 '차세대 하이브리드 선점'

(한미반도체 제공)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이 올해 상반기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양산에 들어가면서 '열압착(TC)본더'를 둘러싼 장비업체 간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현재 TC본더 시장은 한미반도체(042700)가 주도하고 있지만 한화세미텍이 존재감을 키우는 상황이다. 특히 그간 견고했던 한미반도체 독주 체제에 균열이 생기면서 업계의 시선은 차세대 공정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에 쏠리고 있다.

양사는 단순한 장비 납품을 넘어 특허 분쟁과 기술 로드맵 경쟁까지 벌이며 HBM 시장의 '슈퍼 을(乙)' 자리를 놓고 정면 승부를 예고했다. 사실상 HBM4가 두 회사의 향후 10년 운명을 가를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깨진 SK하이닉스 '독점 납품'…한화 추격에 한미 매출 실적 급감

그동안 HBM용 TC본더 시장은 한미반도체의 '무주공산'이었다. 10일 시장조사업체 테크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한미반도체의 시장 점유율은 71.2%로, 사실상 시장을 장악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SK하이닉스가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한화세미텍을 신규 협력사로 낙점하면서 견고했던 독점 구조가 무너졌다.

영향은 즉각 실적으로 나타났다. 한미반도체의 지난해 4분기 매출은 830억 원, 영업이익은 276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4.5%, 61.6% 급감했다. 반면 같은 기간 한화세미텍의 매출은 1357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94.7% 폭증했고, 영업이익 역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SK하이닉스라는 거대 고객사를 공유하게 되면서 한미반도체의 '파이'를 한화세미텍이 나눠 가진 결과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업계 최초로 HBM4 양산 및 출하 일정을 구체화하면서 경쟁 구도는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가 자회사 세메스 외에 공급망 다변화를 검토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유성만 리딩투자증권 연구원은 "HBM4는 이전 세대보다 공정 난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져 장비 경쟁력이 곧 메모리 제조사의 수율과 직결된다"며 "삼성전자의 본격 가세로 TC본더 시장은 2030년까지 연평균 13%의 고성장을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TC본더 \'SFM5-Expert\'(한화세미텍 제공). ⓒ 뉴스1 ⓒ 뉴스1 박주평 기자
한미 '해외 다변화·브랜드 강화' vs 한화 '차세대 하이브리드 선점'

경쟁이 격화하면서 양사의 생존 전략은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

우선 한미반도체는 '수성'과 '다변화'에 방점을 찍었다.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미국 마이크론을 핵심 고객사로 확보하며 해외 매출 비중을 8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또한 굿즈 스토어를 개설하는 등 B2B 기업으로서는 이례적인 브랜드 마케팅을 펼치며 '본더 시장의 절대 강자'라는 정체성을 각인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기존보다 생산성을 높인 '와이드 TC본더'를 통해 후발주자의 추격을 따돌리겠다는 구상이다.

반면 한화세미텍은 '기술 역전'을 노리고 있다. 한화는 기존 TC본더를 넘어 차세대 적층 기술인 '하이브리드 본더' 시장을 선점해 판을 뒤집겠다는 전략이다. 하이브리드 본더는 칩 사이에 범프(돌기) 없이 직접 붙이는 방식으로, 20단 이상의 고적층이 요구되는 HBM4E(7세대) 이후 공정의 핵심 장비로 꼽힌다. 한화세미텍은 올해 1분기 중 2세대 하이브리드 본더의 고객사 평가를 준비 중이다.

이러한 기술 경쟁의 이면에는 날 선 법정 공방도 자리 잡고 있다. 양사는 1년 넘게 특허 침해 소송을 진행 중이며 오는 4월 9일 변론 기일을 앞두고 있다. 업계에서는 소송 결과에 따라 특정 장비의 공급 안정성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이번 판결이 고객사들의 수주 물량 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화세미텍은 전공정 전문가 김재현 대표 영입을 통해 장비 경쟁력을 한 단계 격상시킨 상황"이라며 "4월 특허 분쟁의 법적 리스크를 해소하고 기술적 완성도를 입증한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내 핵심 공급업체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kha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