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초호황인데 기판 업계 '울상'…원자재 급등에 수익성 악화
납품 단가 '제자리'…공장 풀가동에도 수익 악화
차세대 패키징 '유리기판' 부상…"선점시 사업 구조 전환 계기"
- 원태성 기자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급증으로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초호황 국면에 진입했지만, 국내 반도체 인쇄회로기판(PCB) 업계는 울상을 짓고 있다. 금·구리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지만 이를 납품 단가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수요 증가로 공장 가동률은 최고 수준에 이르렀지만, 수익성은 오히려 나빠지는 상황이다. 반도체 호황의 과실이 기판 업계에는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 셈이다.
기판 업계는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소재로 주목받는 '유리기판'이 돌파구가 돼 줄 것으로 기대한다.
PCB 업계는 반도체 호황에도 불구하고 금과 구리 등의 가격이 상승하며 원가 압박에 직면해 있다.
31일 KPCA(한국전자회로산업협회)가 국내 주요 기판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올해 들어 금과 구리 구매 가격은 각각 연초 대비 약 50%, 30% 급등했다. 하지만 이를 납품 단가에 반영하지 못한 기업이 응답 업체의 절반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금과 구리는 반도체 기판 제조 원가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자재다. 특히 AI 반도체용 고사양 기판일수록 미세 회로 구현을 위해 금 도금층과 동박 사용량이 늘어나 원가 부담은 더욱 커진다. 원자재 가격 변동이 곧바로 수익성에 직결되는 구조다.
AI 데이터센터와 서버용 반도체 수요 확대로 국제 금·은·동 가격이 급등하고 고환율까지 겹치면서 업계에 가해지는 원가 부담은 한층 가중되고 있다.
문제는 생산 원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납품 단가 인상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반도체 제조사 입장에서는 기판 가격 인상이 완성품 가격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어 인상 요구를 최대한 방어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반도체 호황으로 기판 공장 가동률은 100%에 육박하지만 운영비조차 확보하지 못해 적자 전환을 우려하는 기업도 상당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기존 PCB 사업 구조의 한계가 분명해지면서 업계의 시선은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소재인 '유리기판'으로 옮겨가고 있다. AI 반도체 수요 폭증과 맞물려 유리기판 시장이 본격적인 개화 국면에 접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유리기판은 기존 플라스틱 기반 기판보다 열에 강하고 휘어짐이 적어 초미세 회로 구현에 유리하다. 데이터 전송 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고 전력 효율도 30% 이상 개선돼, 고발열·고집적이 필수인 AI 반도체에 최적화된 기판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기술 진입 장벽이 높아 시장을 선점한다면 단순 단가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도 기존 PCB와의 차별화 요소다.
유리 기판은 AI 시대가 요구하는 초고집적·초고속·저전력 특성에 가장 잘 부합하는 차세대 기판이란 평가다. 기술 난제를 조기에 해소하고 대형 고객을 선점하는 기업은 향후 AI·HPC 패키지 수요를 흡수하며 막대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전략적 사업 영역을 확보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시장 전망도 밝다.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유리기판 시장은 이르면 내년부터 초기 양산 단계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들은 유리기판 관련 시장이 향후 연평균 50% 이상 성장해 2035년에는 42억 달러(약 6조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005930)와 삼성전기(009150), LG이노텍(011070), SKC(011790) 등 국내 주요 IT 부품 기업들도 조직 개편과 인력 보강, 글로벌 협력을 통해 유리기판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기는 이르면 내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유리기판 개발과 생산 체제 구축에 나섰고, 삼성전자는 장기적으로 실리콘 인터포저를 유리 인터포저로 대체하는 기술을 준비 중이다. SKC와 LG이노텍 역시 북미 고객사 대응과 시제품 개발을 통해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유리기판이 단순한 신사업을 넘어, 원자재 가격 급등과 단가 압박에 시달리는 기판 산업 구조를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AI 반도체 시대가 본격화될수록 고부가·고기술 패키징 기판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며 "유리기판 사업이 당장 수익성 담보를 보장하지 못하겠지만 시장을 선점한다면 사업 구조 전환의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k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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