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AI 시대, 제조업 기반 탄탄 韓에 찾아온 새로운 기회

‘기술 선점’ 각축전 시작되다

메타 휴머노이드 ‘마스크봇’의 모습

(서울=뉴스1) 박기호 이동희 기자 = #. 출근길에 나선 이미래 씨. 자신의 제네시스에 타자마자 ‘회사’라고 말한 후 책을 꺼내 들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주차장까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30분 동안 정독했다. 이 씨가 현대차 스마트팩토리에 들어서니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분주하게 차를 생산하고 있었다. 무인 수송 차량이 부품을 챙겨다 주면 각 생산 라인에선 인간을 닮은 로봇들이 정밀하게 끼워 넣는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조립 완성 라인에선 또 다른 로봇이 곳곳을 들여다보며 제품 검수를 꼼꼼하게 하면서 불량률을 계산하고 있었다. 로봇의 등에 달린 모니터에는 ‘불량률 0%’라는 점검 결과가 곧바로 떴다. 이 공장은 과거 수많은 노동자들이 매달려 차를 생산했던 공장인데 지금은 생산 라인에 사람은 잠시 들른 미래 씨뿐이었다. 미래 씨는 공장을 잠시 둘러본 후 보고서를 쓰러 사무실로 이동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지만 조만간 현실이 될 스마트팩토리와 출근길 모습이다. 그간 단순히 데이터 처리 영역에 머물렀던 인공지능(AI)이 피지컬 AI를 통해 로봇과 자율주행 기술을 최고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생성형 AI 다음은 피지컬(Physical) AI 시대가 온다"

AI 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한 말이다.

디지털 공간에 머물던 AI가 로봇과 만나 피지컬 AI를 통해 현실 세계로 본격 확장하고 있다. 그간 단순히 질문에 답하던 수준에서 생산·물류·헬스케어 등에서 작업을 수행하는 단계로 진화했다. 새로운 시대에 피지컬 AI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국가 간, 글로벌 기업 간 각축전도 시작됐다. 제조업 기반이 탄탄한 우리나라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피지컬 AI 시대, 공상과학 영화 장면이 현실로

'AI'는 우리의 일상과 산업 현장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챗GPT 등의 생성형 AI는 개인 비서 역할을 하고 있고 AI 연관 기업은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생성형 AI가 등장하자 주요 기업들이 AI 분야에 뛰어들었고 AI를 앞세워 구축한 산업 생태계는 막대한 이익도 창출하고 있다. 다수의 기업은 대대적으로 AI 전환(AX)을 추진 중이다.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선 AI 전환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는 까닭이다. AX는 선택이 아닌 필수 생존 요소가 됐다.

단순히 데이터를 처리하거나 언어 및 이미지를 생성하는 데 그쳤던 ‘디지털 AI’는 이제 실제 세계에서 인지하고 추론하며 계획하고 작동할 수 있는 지능형 시스템으로 변신한다. 바로 피지컬 AI로의 진화다.

피지컬 AI로의 진화는 숙련된 근로자가 줄어드는 현실, 비용과 위험한 환경을 줄이고 효율성의 극대화가 필요한 산업 현장, 기술의 발전이 맞물리면서 이뤄졌다.

피지컬 AI 구현을 위해선 현실 세계의 물리적 법칙에 대한 학습과 시뮬레이션, 추론이 필요하다. 이에 실제 현장과 똑같이 조성한 가상 환경인 디지털 트윈에서 인지, 추론, 행동을 반복하는 시뮬레이션을 거쳐 데이터를 학습시킨다.

피지컬 AI가 현실화하면 현 수준의 AI 시대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예를 들어, 기존의 AI는 빈 페트병을 보여줬을 때 보이는 그대로 '빈 페트병'이라고 인식을 하거나 이미지 생성 혹은 '빈 페트병이니 분리수거하라'고 설루션을 제시한다.

피지컬 AI는 한 발 더 나아가 직접 분리수거를 실행한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이 현실이 되는 셈이다.

미국 자율주행 기업 웨이모에 공급된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 5
피지컬 AI, 로봇·자율주행 중심으로 기술 개발 속도

피지컬 AI는 주로 로봇, 자율주행, 스마트팩토리 등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간 산업용 로봇은 정형화된 하나의 작업을 단순하게 반복하는 식으로 수행했다.

하지만 이제는 피지컬 AI가 결합한 로봇이 정형화되지 않은 다양한 작업을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스마트팩토리 역시 피지컬 AI가 접목하면 차원이 작업 환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기존 스마트팩토리는 데이터로 자동화하는 공장 수준이다. 그러나 피지컬 AI로 진화하면 AI와 로봇이 직접 배우고 움직이는 자율 공장으로 변신한다.

자율주행은 핸들 조작이 아예 필요 없을 정도가 된다. 인간처럼 생긴 로봇이 다른 로봇에 지시하고 조작하는 모습도 현실이 된다. 피지컬 AI는 일상과 산업을 통째로 바꿀 수 있기에 주요 국가와 기업들은 기술 선점을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AI 시대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여러 선진국에서 기술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AI 시대를 이끌고 있는 미국은 피지컬 AI 기술을 국가적 전략자산으로 보고 육성 중이다. 또한, 미국에 위치한 글로벌 기업들의 피지컬 AI 기술 강화는 계속되고 있다.

딥시크 등을 통해 AI 시대에 자신감을 얻은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피지컬 AI에 대한 투자와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훈련에 4족 보행 로봇인 늑대로봇을 투입하기도 했다.

AI 세계 3강을 목표로 하는 우리나라 역시 피지컬 AI를 전략 분야로 설정하고 대대적으로 기술 축적을 추진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젠슨 황 CEO와 만나 피지컬 AI 협력 방안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엔비디아가 우리 정부를 비롯한 국내 주요 기업에 공급하기로 한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장이 확보되면, 우리나라의 피지컬 AI 연구 속도도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치킨 회동을 하고 있다.
미중, 피지컬 AI 시대 패권 경쟁…3강 도전에 나선 대한민국

산업 현장에선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피지컬 AI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완성차 업계가 공들이는 피지컬 AI 분야는 크게 자율주행차와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자율주행차는 피지컬 AI의 가장 대표적인 응용 분야로 ‘바퀴달린 로봇’으로 불린다. 휴머노이드 로봇 역시 같은 원리로 향후 자동차 생산 현장 등 광범위하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주목받는 곳은 테슬라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은 완전자율주행(FSD) 소프트웨어의 진화를 기반으로 한 AI 컴퓨팅 역량이 핵심이다. 차량에 탑재된 다중 카메라, 레이더, 초음파 센서와 AI 칩이 실시간으로 방대한 환경 데이터를 처리하며, 도심과 고속도로를 아우르는 복잡한 주행 환경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조향, 제동, 가속을 수행한다.

지난해 FSD 기능의 커버리지가 미국 전역과 유럽 일부 주요 도시에 확장되면서 상용화 단계에 한층 가까워졌다. 또한, 테슬라는 AI 데이터센터 '도조(Dojo)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방대한 운행 데이터를 딥러닝 방식으로 학습, 자율주행 알고리즘의 정밀도와 안전성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우리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운전자가 전혀 개입하지 않는 FSD 구현"이라며 "도로 위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교통 흐름을 최적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역시 FSD와 유사한 구조다. 자율주행차에 적용된 AI·컴퓨터 비전, 모션 플래닝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됐다.

머스크 CEO는 "옵티머스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인간의 지능과 신체능력을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AI의 결정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옵티머스는 22개의 손가락 자유도를 포함해 인간과 유사한 움직임을 구현하며, 주변 환경 인식을 위한 다중 카메라 및 촉각 센서를 탑재해 경량 산업 현장 작업부터 물류 지원, 점검 작업까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계했다. 현재는 테슬라 공장 내 시범 운용 단계에 있다.

테슬라는 향후 옵티머스를 가정용 및 서비스용 로봇으로 확장,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미래사회를 견인하려는 비전을 공개했다. 이 같은 자율주행과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의 발전은 테슬라의 대규모 AI 컴퓨팅 데이터센터가 밑바탕이다. 텍사스에 위치한 도조 데이터센터는 현재 130MW 수준의 연산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20만 개 이상의 최신 AI 칩을 활용해 실시간 데이터 처리 및 머신러닝 연산을 수행 중이다.

AI5라 불리는 차세대 하드웨어 도입과 함께 성능은 더욱 대폭 증강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테슬라는 차량과 로봇의 인지, 판단, 행동 능력을 고도화하며 자율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머스크 CEO는 "인간과 로봇이 함께하는 미래가 곧 현실이 되며, 이는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대전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피지컬 AI에서도 패권 경쟁을 예고한 중국의 전기차 업체들도 기술력을 과시하고 있다. 샤오펑(Xpeng)은 2025년 '피지컬 AI 전면 자립 시스템'을 구축해 AI 칩, 운영체제, 대형 모델, 지능형 하드웨어를 자체 개발했다. 샤오펑은 2026년까지 고성능 휴머노이드 대량 생산을 예고하며, AI 차량과 인간형 로봇의 기술 융합으로 글로벌 피지컬 AI 리더 등극을 목표로 한다.

BYD도 AI 기반 로봇, 자동 운반 시스템 등을 활용해 스마트 제조 혁신을 선보이고 있다. 이 밖에 BMW는 미국 스파턴버그 공장에 피규어(Figure)사의 휴머노이드 로봇 'Figure 02'를 생산 현장에 투입해 시범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 기업들 역시 피지컬 AI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제조업에 강점이 있는 우리나라는 피지컬 AI 시대가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자율주행과 로봇에 막대한 공을 들이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와 자율주행 AI를 결합한 피지컬 AI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2026년부터 2030년까지 국내에 125조 2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피지컬 AI 등 미래 신사업을 위해 배정한 투자액은 50조 5000억 원으로 전체의 약 40%다.

현대차그룹은 로봇, 자율주행차 등에서 생성되는 AI 학습 데이터 저장이 가능한 AI 데이터센터 건립도 추진한다. 또한 현대차그룹은 현재 엔드 투 엔드(E2E) 딥러닝 모델 기반의 '아트리아(Atria) AI'로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그룹 내부 포티투닷(42dot)과 모셔널 등은 물론 구글의 자회사 웨이모(Waymo) 등과도 협력하고 있다.

AI 자율주행 기술을 적용한 SDV 전환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하반기 SDV 페이스카(시험차)를 공개하고 양산차 확대 적용을 추진한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를 통해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의 상용화도 준비 중이다.

전자업계에서도 피지컬 AI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 드리븐 컴퍼니'를 전면에 내세운 삼성전자는 피지컬 AI 기반 제조 자동화, 휴머노이드 로봇 핵심 기술 개발 등의 과제를 수행하는 이노X 랩을 최근 신설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팩토리의 핵심 기술인 디지털 트윈 설루션, 피지컬 AI 등에서 단기간 내에 성과를 낸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또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고 대표이사 직속의 미래로봇추진단도 신설했다.

LG의 AI연구원은 LG전자 등과 함께 공동 휴머노이드 연구에 착수, 피지컬 AI 영역에서의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LG이노텍은 현대차그룹 계열인 보스턴 다이내믹스와 함께 로봇의 눈 역할을 하는 비전센싱 시스템을 개발하기로 했다.

두산그룹 역시 피지컬 AI 전담 부서인 PAI 랩을 지주 부문에 신설했다. PAI 랩은 로봇, 건설기계, 발전기기 등의 사업군과 관련한 하드웨어의 지능화를 주도할 예정이다.

김익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인공지능(AI)·로봇연구소장은 "기존의 물류, 서비스 로봇은 로봇 친화형 빌딩, 전용 엘리베이터 등 별도 인프라 구축이 필요했지만 휴머노이드는 사람과 동일한 형태를 띠고 있어 기존 인프라를 바꿀 필요 없이 사람 대신 투입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휴머노이드는 아직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이동하거나 물건을 집는 데에 한계가 있다"며 "향후 자율 학습과 강화 학습 기반의 AI 모델을 통해 다양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술 발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위 내용은 뉴욕타임스(NYT)가 발간하는 새해 전망서 '터닝 포인트 어젠다 2026(터닝 포인트)'에 수록된 '피지컬 AI 시대, 제조업 기반 탄탄 韓에 찾아온 새로운 기회'의 기사다. 다채로운 콘텐츠로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는 혜안을 제공하는 '터닝 포인트'는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goodda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