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관세 협상 숨은 주역에 대한 'K-예우'

 박기호 산업1부 차장
박기호 산업1부 차장

(서울=뉴스1) 박기호 기자

한미 통상·안보 협상 과정에서 기업인들이 가장 애를 많이 쓰셨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성공적인 한미 관세 협상을 타결한 직후인 지난달 16일 민관 합동회의에서 감사를 전한 대상은 기업이었다. 이 대통령은 "우리 기업이 마음껏 도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 성과를 모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도 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처럼 대한민국 기업은 정부가 어려운 관세 협상에서 미국을 설득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기업들은 계획에도 없었던 대규모 대미 투자를 하기로 했고 핵심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제조업 역량도 공유한다. 주요 기업 총수들은 직접 미국에서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정부를 지원 사격했다. 우리 기업의 대규모 투자는 미국 의원들이 트럼프 행정부에 한국의 입장을 전달하게 한 원동력이기도 했고 이는 어떤 로비보다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후속 조치도 깔끔했다. 대규모 대미 투자로 우리나라 제조업 공동화에 대한 우려가 나오자 기업이 다시 해결사로 나섰다. 이 대통령과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국내 주요 기업 6곳의 기업인들은 향후 5년간 1301조 원이 넘는 초대형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고율의 미국 관세 부담을 덜어내며 잠시나마 안도했던 우리 기업들이 최근 비명을 지르고 있다. 여당이 연내 추진을 예고한 상법 개정 때문이다. 올해 들어서만 두 차례나 상법을 개정했는데 이번에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고 있어 재계는 '1·2차 개정안 보다 더 독하다'고 아우성친다. 재계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로 기업의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본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상법뿐 아니라 노란봉투법 등의 입법 과정에서 입장조차 관철하지 못했던 터라 저지 자체도 포기한 모습이다.

분명, 자사주가 대주주 이익을 위한 꼼수로 활용된 사례도 있지만 재계의 우려가 과장된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차등의결권, 포이즌필 등과 같은 경영권 방어 장치가 없다. 부득이하게 자사주가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상법 개정으로 방어 수단을 상실하면 우리 기업들은 행동주의 펀드 등 외부 공세에 취약해진다. 과거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에 국내 대표기업마저 흔들렸던 트라우마 역시 여전하다. 경영권 불안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제대로 경쟁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주주가치 제고라는 3차 상법 개정안의 취지에 다수의 기업도 공감하고 있다. 주가 부양에도 단기적인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 제대로 성장해야 주주 권익도 지킬 수 있는 법이다. 우리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경영을 위축시킬 소지가 있다면 시간을 두고 원점에서부터 논의를 다시 해보는 것이 순리다. 여당에선 성공적인 관세 협상 이후 '정부와 기업이 원팀으로 만든 성과'라고 자평했다. 상법 개정에 대한 '원팀'의 의견을 제대로 다시 들어보길 권한다.

goodda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