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방어 무장 해제'…'자사주 소각 의무화'에 비상 걸린 재계
민주, 연내 3차 상법 개정 마무리…재계 "자사주 활용 전략 어려워"
"경영 활동 위축·자본시장 부정적 영향…선진국 대비 과도한 조치"
- 박기호 기자
(서울=뉴스1) 박기호 기자 = 여권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3차 상법 개정을 연내에 마무리하기로 하자 재계에 비상이 걸렸다. 자사주를 활용한 다양한 경영 전략이 어려워지고 경영권 방어 수단도 상실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재계에선 자사주 소각 의무화 대신 신규 취득 자사주 처분 공정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5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상법 개정을 통해서 자사주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고 자사주 마법을 우리 자본시장에서 퇴출하겠다"며 자사주 소각 의무 등을 담은 3차 상법 개정을 연내에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당 코스피5000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오기형 의원은 전날 자사주를 취득일로부터 1년 내 소각하도록 하는 내용의 3차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회사가 자기 주식을 취득하는 경우 취득일로부터 1년 내 소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법 시행 이전에 취득한 자사주에 대해서는 법 시행 후 6개월의 추가 유예 기간을 두기로 했다.
또한 임직원 보상 목적, 우리사주제도 시행, 신기술 도입 및 전략적 제휴, 재무구조 개선 등 일정 요건에 해당할 경우 '자기주식 보유·처분 계획'을 작성하고, 이를 주주총회에서 승인받을 경우 보유를 허용하도록 예외를 뒀다. 이 같은 승인 없이 자사주를 1년 이내에 소각하지 않으면 이사 개인에 대해 5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재계에선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잔뜩 긴장하고 있다. 민주당이 그간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예고하자 경제계는 꾸준히 반대 입장을 펼쳐왔다.
경제계는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면 적대적인 경영권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기업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고 자본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사주를 통한 다양한 경영 전략 활용이 어려워진다는 점도 재계가 문제로 삼는 대목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로 기업들이 사업재편부터 구조조정, 자금 조달 등 활용할 방법이 있었는데 이 같은 수단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라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승재 세종대 법학과 교수는 "소각 의무화보다는 처분 공정화에 방점을 두면서 사업재편과 구조조정 등을 위해 자유롭게 (자사주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상법 개정안에서 임직원 보상 목적 등 일정 요건에 해당할 경우 '자기주식 보유·처분 계획'을 작성하고, 이를 주주총회에서 승인받을 경우 보유를 허용하도록 예외를 둔 데 대해서도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예외 사유가 들어간 것은 다행이지만 임직원 보상 목적 등에 대해 과연 주주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되겠느냐"고 꼬집었다.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서도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과도한 조치라는 비판도 나온다. 주요국의 자사주 소각 의무화 상황을 비교하면 미국과 영국, 일본의 시총 상위 30위 기업 중 58개 사(64.4%)가 자기주식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평균으로 비교한 경우에도 미국(24.54%), 일본(5.43%), 영국(4.93%)에 비해 우리나라의 자사주 보유 비중(2.95%)이 낮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규정이 있는 독일에서도 자사주 보유 비율이 자본금의 10%를 초과하면 3년 이내 처분을 의무화하고 있다.
경제계에선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현실화하면 다수의 기업이 자기주식 취득을 하지 않거나 축소할 것으로 예상되기에 되레 자본시장 활성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자기주식 취득 후 1~5일간의 단기 주가수익률은 시장 대비 1~3.8%p 높고, 자기주식 취득 공시 이후 6개월, 1년의 장기수익률도 시장대비 각각 11.2~19.66%p, 16.4~47.91%p 높아 주가 부양 효과가 확인됐다. 신현한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소각에 의한 단발적 주가 상승 기대에 매몰될 경우, 오히려 장기적으로 기업의 반복적인 자기주식 취득을 통한 주가 부양 효과를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게다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 올해 들어서만 두 차례의 상법 개정이 이뤄졌는데 3차 개정까지는 너무 부담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재계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보다는 '신규 취득 자기주식에 대한 처분 공정화'를 추진하자는 입장이다. 현재 신주발행 시 신기술 도입과 재무구조 개선 등 경영상 필요가 인정되는 경우에만 제3자 배정을 허용하는데, 자기주식 처분도 이에 준해 제3자에 대한 처분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경제계는 조만간 정부와 여권에 자사주 소각 의무화에 대한 우려를 재차 전달하면서 대안 수용을 요청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기업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자본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경제계의 요구를 얼마나 수용해 줄지는 미지수다. 김남근 코스피5000특위 위원은 "재계 요구를 충분히 반영했다"고 말했다. 다만 "경영권 방어 문제와 관련해선 의무 공개매수제도 등 재계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입법을 후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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