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르네상스]④K-방산, 일감만 '100조' 글로벌 시장서 존재감
유럽 넘어 중동·동남아까지…방산 수주잔고 100조 육박
현지생산·기술이전 전략…AI·무인체계로 경쟁력 강화 시도
- 박기범 기자
(서울=뉴스1) 박기범 기자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중동 지정학 리스크 확대가 글로벌 방산 수요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면서 한국 방위산업이 '제조업 르네상스'의 한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폴란드 등 유럽 시장에서 성공 신화를 쓰고 있는 K-방산은 중동·아프리카·아시아로 수출 영토를 넓히며 '총성 없는 수출 전쟁'의 판도를 바꿔놓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 현대로템(064350), LIG넥스원(079550), 한국항공우주산업(047810)(KAI) 등 한국 방산기업의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3조4928억 원으로 지난해 연간 합산 영업이익(2조6589억 원)을 약 8000억 원 웃돌았다.
이들 4사의 수주잔고는 100조 원에 육박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3분기 기준 방산 수주잔고 30조9959억 원을 기록했다. 한화시스템(272210) 수주잔고는 8조1850억 원이다.
KAI와 LIG넥스원은 같은 기간 각각 26조2700억원, 23조4271억원의 수주잔고를 쌓았다. 현대로템은 지난 8월 폴란드 군비청과 K2 전차 2차 수출 계약(65억달러)을 체결하면서 방산 수주잔고 10조7897억원을 달성했다
K-방산의 글로벌 약진은 2022년 폴란드와의 초대형 패키지 계약이 기폭제가 됐다. 폴란드는 △KAI FA-50 경공격기 48대 △현대로템 K2 전차 180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K9 자주포 212문·천무 다연장로켓 218대 등 총 124억달러(약 17조7000억 원) 규모의 무기 도입을 결정하며 '한국산 무기 대량 도입' 시대를 열었다.
루마니아 역시 K9자주포 54문과 K10 탄약운반장갑차 36대 등 약 9억2000만달러(약 1조3000억 원) 규모 계약을 체결하며 유럽 내 K-방산 확산에 힘을 보탰다.
러-우 전쟁을 목격한 유럽은 군 현대화를 서둘렀고 K-방산의 '빠른 생산·납기'는 최고의 매력 포인트가 됐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병력·장비 공백 상황에서 한국산 무기는 '즉시 공급 가능한 유일한 옵션'"이라고 평가한다.
K-방산 지도는 넓어지고 있다. 2022년 아랍에미리트(UAE)를 시작으로 2023년 사우디아라비아, 2024년 이라크는 차례로 중거리 지대공 유도 무기 체계 '천궁-Ⅱ'(M-SAM2)를 수입했다. 수출 규모는 UAE 1조 3000억 원, 사우디 1조 2000억 원, 이라크 3조 7000억 원에 이른다. KAI는 이라크에 다목적 기동헬기 '수리온'을 수출하며 '헬기 수출' 길을 열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UAE를 방문해 150억 달러 이상의 방산 분야 협력을 약속하면서 중동으로의 추가 수출 기대도 커지고 있다. UAE는 현재 운용 중인 지상 및 항공 무기체계 대부분이 노후화돼 대규모 교체가 시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KF-21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UAE와 협업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지역의 수출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교보증권 분석에 따르면 사우디·UAE·카타르 등 중동 6개국의 전력 교체 수요는 687억달러(약 96조원)에 달해 국내 기업들에 새로운 수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동남아도 공략하고 있다. 베트남은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제작하는 K9 자주포를 정부 간 계약(G2G) 방식으로 20대 구매하기로 우리 정부와 합의했다. 공산권 국가의 첫 무기 수출로, 정확한 액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약 2억6000만 달러(약 3500억 원) 규모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한국산 전투기를 수입한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도 최근 추가 도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 페루 등 아프리카와 남미 시장도 K-방산의 주요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K-방산은 '현지화'와 '기술력 향상'을 통해 수출 경쟁력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루마니아에서 K9 자주포뿐만 아니라 장갑차도 만들어 판매할 계획이다. 현대로템은 K2 전차 2차 실행계약을 체결하면서 폴란드 현지에서 K2 전차(K2PL·폴란드형)를 생산한다.
현지법인 설립도 늘어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사우디·미국·브라질·인도 등에 신규 법인을 세웠고, 미국에도 화약이나 탄약 공장 건설을 검토하며 포트폴리오를 다각화를 준비 중이다. LIG넥스원은 사우디 현지 사무소를 무기체계 통합·정밀유도무기 등 맞춤형 설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연구·사업 조직으로 확대했다.
업계는 현지화를 통해 각 지역의 핵심 거점을 만들어 추가 수주를 노린다. 방산 수입국들은 장기적으로 자국 기술력 확보를 위해 기술이전과 현지 생산을 주요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K-방산 역시 과거 선진국으로부터의 기술이전을 바탕으로 성장해온 만큼, 이번에는 한국 기업들이 '기술 공급자'로 전환하는 것이 과제다.
유럽의 경우 K-방산에 대한 견제가 높아지는 것도 현지 생산이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국내 기업들은 무기 수출에 그치지 않고 부품 국산화, 인공지능(AI) 도입 등 신기술 도입으로 경쟁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K-방산의 부품 국산화 비율은 65% 수준으로 평가된다. 부품 국산화는 수출 전략과 직결된다. 핵심 부품을 수입할 경우 해당 국가의 수출 허가가 필요해 제3국 수출 시 승인이 지연되거나 불허될 수 있다.
기술 고도화도 시급한 과제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발간한 '2024 국가별 국방과학기술 수준 조사서'에 따르면 한국의 기술 수준은 1위인 미국(100)을 기준으로 82% 수준으로, 8위 권이다. 특히 레이더, 합성개구레이더(SAR), 회전익, 우주무기 분야에서 격차가 크다는 평가다.
업계는 기술력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화는 유무인 지상·해상·공중 무기체계를 통합한 AI 기반 전장관리 체계를 준비 중이다. 소버린AI를 적용해 실시간 상황 인지–판단–결심 지원이 가능한 '전장의 참모' 역할로 확장한다는 구상이다.
현대로템은 4세대 HR-셰르파에 인공지능·자율주행·전동화 기술을 결합해 감시·정찰·전투·구호 등 다목적 임무 수행이 가능한 무인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KAI는 AI 파일럿 'K-AILOT'을 중심으로 유무인 복합 전투체계(NACS)를 개발 중이다. AI가 표적 식별·전투 수행·전술 판단까지 수행하는 개념으로, AAP(다목적 무인기)·UCAV와 결합해 KF-21과 편대 운용하는 미래 전장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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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인공지능(AI) 시대와 미중 무역 갈등이 한국 제조업 르네상스 시대를 열고 있다. AI 구현을 위한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특수를 누리고 있다. 또 막대한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소형모듈원자로(SMR)와 변압기, 전선 등을 생산하는 기업들도 슈퍼사이클(초호황)에 진입했다. 특히 미국이 중국산 제품을 공급망에서 제외하면서 기술력과 신뢰성이 보장된 한국 제조업으로 특수가 쏠리고 있다. 디지털의 정점인 AI가 ‘아날로그’ 제조업 부흥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조선, 전기·전력기기, 방산,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우리나라의 핵심 제조업의 강점을 집중 조명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