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르네상스]①AI 특수·미중 갈등, 제조업 '성장 엔진' 부활
'AI 시대' 제조업의 재발견…대미 협상에서 '히든 카드'
中 제조업 대체 가능한 나라 '한국'뿐…美 '구애' 이어져
- 박기호 기자
(서울=뉴스1) 박기호 기자 = 사양 산업으로 취급받던 제조업이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화려하게 귀환하고 있다. 바야흐로 '제조업 르네상스'다. 제조업은 AI로 대체할 수 없는 산업인 데다 미국이 중국 제조업을 배제한 때문이다.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진행 중인 관세 전쟁에서도 K-제조업은 우리나라의 핵심 협상 카드이기도 했다. 중국과의 패권 경쟁 중인 미국이 우리나라 제조업에 기댈 수밖에 없어 K-제조업 부흥기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조선, 방산, 반도체, 전기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 제조업이 '코스피 4000시대'를 주도하고 있다.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한 산업으로 홀대받았지만 우리나라 경쟁력의 핵심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올해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 신용매수는 조선·방산·전력 인프라 등의 자본재와 반도체에 집중됐다. 이보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올해 10월 말 기준 코스피 신용융자 잔고는 조선·방산·전력 인프라 등이 포함된 자본재(3조 9000억 원) 업종에 전체의 27.7%가 집중됐고 반도체 역시 2조 2000억 원으로 15.8%로 집계됐다. 이들 업종에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빚투 자금이 유입된 셈인데 전통적인 제조업에 대한 시장의 현재 기대치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 최근 주요 제조업체의 실적 역시 상승세다. 대표적인 제조업인 조선업종의 경우 국내 조선 3사 모두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 3사의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은 3조5000억 원을 돌파했다. 수주잔고는 135조 원에 이른다.
HD한국조선해양의 올 3분기 매출은 7조 5815억 원, 영업이익은 1조 538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1.4%, 164.5% 증가했다. 분기 영업이익이 1조 원을 돌파한 것은 2017년 지주회사 체제 전환 이후 처음이다.
한화오션은 올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032% 증가한 2898억 원을 기록했고 매출액은 11.8% 늘어난 3조 234억 원이었다. 삼성중공업은 3분기 영업익이 전년 동기 대비 99% 증가한 2381억 원이었으며 매출액도 13% 늘어난 2조 6348억 원이었다.
방산업종 역시 상승세다. 방산 '빅4'의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은 3조 5000억 원에 육박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3분기 매출은 6조 4865억 원, 영업이익은 8564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46.5%, 79.5% 상승했다. 분기 최대 실적이다.
현대로템의 매출은 1조 6196억 원, 영업이익은 2777억 원으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48.1%, 102.1% 증가했다. LIG넥스원의 매출액은 1조 492억 원, 영업이익은 896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41.7%, 72.5% 증가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1.1% 줄어든 602억 원에 그쳤지만 육군 소형무장헬기(LAH) 납품 일정이 일부 순연된 영향으로 4분기에는 개선될 것으로 관측된다.
반도체 업종 역시 최고의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디바이스솔루션(DS, 반도체) 부문에서만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고용량 D램 등의 판매 확대로 7조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이를 바탕으로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2.5% 증가한 12조 1661억 원으로 집계됐다. SK하이닉스 역시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61.9% 증가한 11조 3834억 원을 기록, 사상 최고 실적 기록을 냈다.
제조업의 위상 변화는 미중 패권 경쟁 심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 AI의 확산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제조업을 위협했던 주요 리스크가 역설적으로 반등의 요인이 됐다. 특히, 미국이 중국과 치열한 패권 경쟁을 벌이면서 우리나라 제조업은 때아닌 호황을 맞고 있다. 미국이 대중 제재를 추진하면서 중국을 대체할 첨단 제조 능력이 있는 국가가 필요해지자 우리나라 제조업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있는 까닭이다. 첨단 제조업 부문에서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국가는 사실상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미국의 제조업 회귀(리쇼어링) 정책 여파로 제조업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기도 하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제조업 부흥을 한창 시도 중인 미국은 한미 관세 협상을 통해 우리나라의 주요 제조업체들이 미국 내 투자를 강화하고 우리의 기술 이전을 요구했다. 미국에선 한미 양국이 팩트시트를 발표하자 미국 제조업 부흥에 있어서 우리나라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당장 미국 주요 인사들이 우리나라 제조업 현장을 찾아 협력에 대한 의지를 전하기도 했다. 한미 협력의 상징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와 관련, 대릴 코들(Daryl Caudle) 미국 해군참모총장이 최근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조선소를 찾기도 했다. 삼성그룹, SK그룹, 현대차그룹 등은 AI 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엔비디아와 대규모 협력에도 나섰다. 우리의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들은 엔비디아로부터 AI 인프라 구축의 핵심인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대량 확보하기로 했고 AI 생태계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AI가 전 산업 부문에 확산하고 있지만 일부 제조업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점도 제조업 르네상스의 또 다른 배경이기도 하다. AI는 단순한 조립생산 부문에선 활용도가 높지만 복잡한 설계개발, 돌발 상황이 빈번한 일부 제조업 현장에선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상당하다는 반응이 업계에서 나온다.
제조업의 호황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게다가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우리 주요 기업들은 대규모 국내외 투자도 계획하고 있다.
미국 관세 정책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수출액은 역대 10월 중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10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10월 수출액은 595억 7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미국 관세 정책 탓에 대미 수출이 16.2% 줄었고 추석 연휴 영향으로 조업일수가 20일로 줄었지만 수출 실적은 호조를 보였다. 또한 15대 주력 수출 품목 중 반도체, 컴퓨터, 선박, 석유 제품의 수출이 증가세를 기록했다.
우리 기업들의 투자 역시 계속될 예정이다. 삼성, SK, 현대차, LG 등 국내 주요 기업 6곳은 향후 5년간 1260조 원이 넘는 초대형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미 투자 증가에 따른 국내 투자 축소를 우려하자 재계가 내놓은 선물 보따리다. 또한 한미 관세 협상에 따라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도 이뤄질 예정이다. 제조업에서의 막대한 투자는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창출할 수 있는 창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우리나라의 수출을 견인하는 주요 제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는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의 상태로는 조만간 중국에 우리 주요 제조업이 모두 추월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반도체, 디스플레이, 모바일, 가전, 자동차, 조선, 바이오 등 10대 수출 주력업종을 영위하는 주요 기업 200곳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2030년을 기점으로 모든 주력 산업의 경쟁력이 중국에 뒤질 것으로 전망됐다.
현재는 10개 주력 업종 중 중국이 5개 업종에서만 우리나라를 추월했는데 중국의 거센 위협이 예상된다는 우려다. 이에 대외 리스크 최소화, 핵심 인력 양성 시스템 구축, 세제 및 규제 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 등 경제 효율성 제고, 미래 기술 투자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goodday@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편집자주 ...인공지능(AI) 시대와 미중 무역 갈등이 한국 제조업 르네상스 시대를 열고 있다. AI 구현을 위한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특수를 누리고 있다. 또 막대한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소형모듈원자로(SMR)와 변압기, 전선 등을 생산하는 기업들도 슈퍼사이클(초호황)에 진입했다. 특히 미국이 중국산 제품을 공급망에서 제외하면서 기술력과 신뢰성이 보장된 한국 제조업으로 특수가 쏠리고 있다. 디지털의 정점인 AI가 ‘아날로그’ 제조업 부흥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조선, 전기·전력기기, 방산,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우리나라의 핵심 제조업의 강점을 집중 조명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