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비 끄떡없는 콘크리트, 대리석 강판"…시멘트·철강의 '재발견'
혁신 기술로 '불황' 극복…"미래 먹거리" 발굴 박차
- 양새롬 기자, 최동현 기자
(서울=뉴스1) 양새롬 최동현 기자 = 경쟁 심화와 수요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멘트와 철강이 혁신적인 '신기술'로 불황을 돌파하고 있다. 특히 오래된 업력 때문에 더 이상 혁신이 불가능할 것이란 편견을 깨고 세상에 없던 제품을 내놓으며 재도약 계기를 만들고 있다.
34년래 최악의 내수 부진을 겪고 있는 시멘트 업계는 한겨울에도 타설·양생이 가능한 내한 콘크리트와 장마철에도 시공이 가능한 우중(雨中) 타설 콘크리트 등 고부가 프리미엄 제품으로 수익성을 높이고 있다.
철강 업계는 글로벌 공급 과잉과 중국산 저가 공세, 미국 등의 고율 관세 여파를 고부가 소재 개발로 활로를 찾고 있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시멘트 업계 대표 혁신 사례로는 유진기업과 동양이 국내 레미콘 업계 최초로 개발한 '라텍스 누름 콘크리트'가 꼽힌다. 콘크리트 내부에 라텍스 입자를 혼합해 연속적인 필름 막을 형성시켜 건조·수축에 따른 콘크리트의 미세 균열을 억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옥상 바닥, 기계실, 지하 주차장 등 균열에 취약한 장소에 특효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라텍스 누름 콘크리트는 올해 1~9월에 전국 90여 개 현장에서 총 8만㎥ 이상 출하됐다. 지난달 27일에는 한국콘크리트학회로부터 '콘크리트 기술인증(KCIC 25-009)'도 획득했다.
시멘트 업계 혁신의 원조는 삼표산업이 2018년 국내 최초로 출시한 동절기 내한 콘크리트 '블루콘 윈터'다. 블루콘 윈터는 영하 15도에서도 사용 가능한 특수 콘크리트로 별도의 보양 및 급열양생 없이 표면 비닐 양생으로만 타설 36시간 내에 압축강도 5메가파스칼(㎫)을 구현할 수 있다.
건설업계는 겨울철 콘크리트 타설을 금기시한다. 기온이 4도 아래로 떨어지면 시멘트가 굳는 '양생' 잘 일어나지 않는데, 부실 양생은 아파트 붕괴 등 중대재해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업계 숙제를 해결한 것이 블루콘 윈터다.
블루콘 윈터의 납품량은 출시 직후인 2019년 4199세제곱미터(㎥)에 그쳤지만, 지난해 18만 4769㎥로 무려 44배 넘게 급증했다. 올해 예상 납품량은 23만㎥로 전년보다 24.5% 증가할 전망이다. 누적 납품량은 63만 5786㎥로, 이는 국민평형인 84타입 기준 8500세대를 지을 수 있는 규모다.
삼표산업 관계자는 "블루콘 윈터는 출시 초기 업계의 부정적 인식과 기술 우려로 시장 진입에 난항을 겪었지만, 현재는 겨울철 콘크리트 양생의 '뉴노멀'로 자리매김했다"고 말했다. 블루콘 윈터는 지난해 7월 국토교통부 건설신기술 제995호로 지정됐다.
한일시멘트도 영하 10도 추위에도 타설이 가능한 '내한 콘크리트', 35도 폭염에도 콘크리트의 작업성을 3시간 이상 유지할 수 있는 '초유지 콘크리트'를 개발하며 특수콘크리트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초유지 콘크리트는 90분 이내 타설하지 않으면 굳는 일반 콘크리트보다 두 배 이상 작업 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 수요가 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특수 콘크리트는 기존 제품보다 가격대가 30~40% 높지만, 극한 환경에서도 안전한 공사가 가능해 틈새시장을 여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수익성 향상과 생산성 증대라는 두 효과를 모두 잡고 있다"고 말했다.
동국제강그룹은 냉연이나 후판을 재압연해 색을 입혀 만드는 컬러 강판으로 중국의 저가 제품과 차별화에 성공했다. 동국제강은 오는 2030년까지 컬러강판 매출 2조원, 100만 톤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내용의 'DK 컬러비전 2030'을 추진하고 있다.
컬러강판은 프리미엄 제품으로 일반 강재 대비 수익성이 높아 글로벌 철강사들이 미래 먹거리로 꼽는 분야다.
실제로 동국씨엠의 3분기 판매량은 전 분기 대비 약 1만 7000톤 감소했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미국의 철강 관세 강화 여파가 판매량 감소로 이어졌다. 하지만 같은 기간 컬러강판 판매 비중은 오히려 4%p 증가했다. 회사 IR 보고서에 따르면 내수·수출 전반의 수요 부진 속에서도 고부가 컬러 제품 비중을 확대해 수익성 하락을 방어했다는 평가다.
동국씨엠은 최근 천연석과 같은 질감·패턴을 구현하는 '듀얼스톤'(Dual Stone)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차별화 전략도 강화하고 있다. 이 기술이 적용된 '더블스톤'과 '마블스톤' 등 신제품 2종은 현재 특허 출원 중이다. 회사 관계자는 "관세 장벽과 저가 범용재 공세를 동시에 극복할 수 있는 전략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세아그룹은 항공·방위·해상풍력 분야를 중심으로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소재 사업을 확대하는 전략을 택했다. 고강도 알루미늄 소재를 내세운 세아항공방산소재는 3분기 누적 매출 989억 원, 영업이익 203억 원 등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올렸다. 별도 기준 매출·영업이익도 각각 전년 대비 37.3%, 25.9% 증가했다.
세아항공방산소재는 일반 산업용 알루미늄 대비 월등히 높은 강도와 가공 정밀도를 요구하는 2000계 및 7000계의 고강도 알루미늄 소재를 공급 중이다. 특히 7000계 알루미늄 소재는 가벼우면서도 연강(Mild Steel)에 준하는 강도를 가지고 있어 항공, 우주 발사체 등에 많이 활용되는 스페셜티 금속 소재다.
세아항공방산소재는 항공기용 초경량 알루미늄 수요가 늘어나는 점에 주목해 경남 창녕에 연 770톤 규모의 고강도 알루미늄 소재를 생산하는 공장도 짓고 있다. 2027년 준공 후에는 보잉·엠브라에르·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 등 글로벌 항공기 제작사에 이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박광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리포트에서 "(세아베스틸지주는) 단순 철강업이 아닌 '고성능 특수금속 소재' 기업으로 재평가될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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