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화 '자구안' 여전히 안갯속…만기 연장·이자 인하 '그림의 떡'
석화기업 자발적 구조조정 논의 제자리…30조 돈줄 압박될 수도
"이해관계 복잡해 연말까지 어려워…정부 추가 지원책 나와야"
- 원태성 기자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정부에 이어 금융권까지 나섰지만 석유화학 업계의 구조조정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석유화학 기업들은 매일 자구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업체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탓이다.
정부와 금융권은 '선 자구 노력' 전제로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자구안 마련이 늦어지면 전체 구조조정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 결국 정부와 금융권의 지원책이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지난달 30일 17개 은행 및 정책금융기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과 함께 '산업 구조혁신 지원 금융권 협약식'을 개최하고 석화 기업을 대상으로 만기 연장, 이자유예, 이자율 조정, 추가 담보취득 제한 등이 포함된 금융지원 방안을 마련했다.
조용병 은행연합회 회장은 이번 협약 배경에 대해 "석유화학 산업이 글로벌 공급과잉과 경쟁력 약화라는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권도 범정부 차원의 석화 산업 구조개편 지원에 발맞춰 자율 협약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단 금융권의 지원 방안도 업계의 '자구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었다. 자율협의회는 외부 공동실사를 통해 사업재편계획 타당성을 점검하고 사업재편 과정에서 필요한 금융지원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금융당국도 지난달 21일 '석유화학 사업재편 금융권 간담회'를 열어 석유화학산업의 사업재편 방향을 공유하고 기업과 대주주의 철저한 자구노력과 책임이행을 전제로 사업재편 계획의 타당성이 인정되는 경우 채권금융기관 공동 협약을 통해 지원키로 협의했다.
업계에서는 채권단의 금융 지원 조건이 오히려 금융권의 금융 지원 조건이 석화 기업에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주요 석유화학기업들에 대한 금융권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는 약 30조 원대로 추정된다. 당장 만기 연장 등 유동성 지원이 필요한 석화 기업 입장에서 자발적 노력이 선행돼야 하지만 업계에서는 채권단 지원 요건이 정부가 내건 요건만큼 충족하기 쉽지 않다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석화 기업들의 자발적 구조조정 논의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유력한 구조조정 시나리오로 제시한 수직 계열화 모델부터 석유화학 기업 간 수평적 통폐합 논의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지만 답보 상태다.
기초 석화 원료인 에틸렌 생산량이 가장 많은 여수 석화단지의 경우 정유사인 GS칼텍스를 둘러싸고 LG화학과 롯데케미칼, 여천NCC의 카드 맞추기가 시작했지만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대산 석화단지에서도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합작사인 HD현대케미칼의 지분권 조정을 놓고 논의가 진행 중이다.
울산의 경우 정유사인 SK에너지에서 나프타를 공급받는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가 NCC를 통합해 수직 계열화 방안이 논의 중이지만 쉽게 협의가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석화 업계에서는 업체 간 자율적 협의만으로는 정부가 정한 연말까지 구체적인 통합 방안이 나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일반 기업 간 인수합병 과정도 최소 6개월이 걸린다"며 "업체 간 통폐합 논의가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협의 과정은 최소 1년은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런데 현재 정부는 설비를 줄이라고 지시만 한 상황"이라며 "정부의 압박으로 업체들도 통폐합 논의를 진행 중이긴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현실적인 방안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폐합 논의가 빨라지기 위해서는 정부가 추가 지원책을 내놔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정부와 금융권의 '선 노력, 후 지원' 방침보다는 업체 간 자산 통합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 문제 해결이나 공정거래법상 기업결합 심사의 한시적 완화 등 정부 지원 없이는 과감한 자구책 마련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협상 진행 과정을 보면 정부에서 좀 더 구체적인 정책적 지원이 있어야 논의에 탄력이 붙지 않겠냐는 요청이 나오고 있다"며 "체질 개선을 위해 기업들의 진통이 불가피하지만 정부에서도 석화 산업의 재도약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k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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