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자원 화재, 전문가 "'내구연한 초과'보다 관리 부실에 무게"

정기 점검 '정상' 판정…"내구연한만으로 원인 단정 어려워"
관리 중요성 '부각'…관련 예산 확보 필요

29일 오전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3일차 합동감식이 시작된 가운데, 감식반이 화재 현장에서 반출한 리튬이온 배터리를 운반하고 있다. 2025.9.29/뉴스1 ⓒ News1 김종서 기자

(서울=뉴스1) 박기범 기자 =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에서 발생한 무정전전원장치(UPS) 배터리 화재 사고에 대해 전문가들은 배터리 노후화보다는 안전 관리 부실이 원인이 됐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설치된 배터리의 내구연한이 10년이지만 정기 점검에서 배터리 자체에 큰 문제가 없었고 성능 저하가 화재로 곧바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사용 연한 초과' 직접적 화재 원인 단정 어려워…관리 부실 가능성에 무게

29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화재가 발생한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이 2014년 생산해 LG CNS를 통해 국정자원에 납품된 제품이다. 보증기간은 10년으로 이미 만료됐으며, LG CNS는 지난해 교체를 권고했지만 실제로는 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사용 연한 초과'를 화재 원인으로 지목하지만, 업계에서는 직접적 연관성이 낮다고 본다. 배터리의 성능 저하는 있을 수 있지만, 곧바로 폭발이나 화재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해당 배터리는 지난해와 올해 정기 검사에서 모두 정상 판정을 받았다. 리튬이온 배터리 UPS의 수명은 약 15년 이상으로 알려졌다.

한 대학 교수는 "배터리 상태는 사용 조건과 관리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며 "단순히 연한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화재 원인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휴대전화 배터리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배터리 기능에 떨어지지만, 화재로 이어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부연했다.

이날 정부 역시 브리핑에서 배터리를 교체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지난해 '권장 기한이 지나 교체를 권고한다'는 메시지가 있었는데 그 외의 배터리는 전부 내구연한이 도래하지 않았다"며 "일상적 기간 경과에 따른 권고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와 유사한 사례로 꼽히는 지난 2022년 10월 발생한 판교 SK C&C 데이터센터 화재 원인 역시 배터리가 아닌 전기 안전장치 중 과전류 차단 장치 회로 문제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업계는 이번에도 배터리보다는 관리·시공 과정의 문제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국정자원은 이날 브리핑에서 "(서버 등) 시스템과 이격을 위해 지하로 이동 작업 중이었다"고 밝혔다.

이전 작업 때 방전·이동식 수조 미비…美 ESS 90㎝ 이격 의무화

업계 일각에서는 공사가 최저가 입찰 또는 배터리 설치 비전문 업체가 수주해 안전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작업 당시 비전문 업체가 선정되고, 아르바이트생이 다수 투입됐다는 의혹도 나온다.

작업 전 안전을 위해 배터리 시스템을 방전(20% 이하)하거나, 유사시 대응을 위한 이동식 수조 등을 준비하는 등 기본적인 안전 절차가 미흡했다는 지적도 있다. 경찰은 현재 화재 원인 규명을 위해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 중이다.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경우 화재 발생 시 열폭주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좁은 공간에 배터리와 서버를 같은 공간에 둠으로써 사전에 화재 안전 대비가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백승주 열린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미국의 경우 ESS(에너지저장장치)를 설치하면서 배터리 화재가 열폭주 현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90㎝의 이격 거리를 두고 있다"며 "배터리는 화재 위험을 안고 있는 만큼, 화재가 열폭주로 이어지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ESS를 설치할 때 관리 비용도 일정 비율로 예산에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관리 예산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화재는 지난 26일 저녁 대전 국정자원 본원 5층 전산실에서 발생했다. UPS용 배터리 한 개에서 불이 시작돼 10시간 만에 진화됐지만, 정부 행정정보시스템 647개가 중단되며 홈택스, 건강보험 등 주요 전자정부 서비스가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pkb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