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회의에도 답 안 나온다" 석화 자구안 진통…정부 '최후통첩'
30일 채권단 자율협의회 협약식 개최…자구 노력 전제로 지원 나서
석화기업 자발적 구조조정 논의 제자리…정부 30조 돈줄 압박
- 원태성 기자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벼랑 끝에 몰린 석유화학 업계가 매일 자구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정부에 이어 채권단도 자체 구조조정 방안을 내놔야 지원에 나선다는 방침을 재확인할 예정이다. 사실상 채권단을 통해 '최후통첩'을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채권 금융기관들이 30일 자율협약을 체결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자율협약이 체결되면 채권단이 공동으로 자금 지원에 나서게 돼 신속한 지원이 가능해진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오는 30일 은행회관에서 석유화학 기업의 채권 금융기관이 모여 '자율협약식'을 체결한다. 협약에는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5대 시중은행뿐만 아니라 기업은행, 한국산업은행 등이 참석한다.
지난달 20일 금융위 주재로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금융권 간담회에 이어 자율협약을 체결해 추후 금융 지원 방안을 확정하고, 본격적인 지원에 나서기 위함이다. 특정 금융회사가 지원을 거부할 경우 다른 금융회사도 지원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조치다.
다만 이번 협약식에서도 채권단은 정부의 방침에 따라 석유화학기업의 자구노력을 전제로 한 '채권금융기관 자율협의회 운영협약' 발표가 이뤄질 전망이다.
앞서 8월 21일 권 부위원장은 석유화학사업 재편의 기본 원칙은 △철저한 자구노력 △고통 분담 △신속한 실행이라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당시 권 부위원장은 석유화학기업에 "자기 뼈를 깎는 자구노력과 구체적이고 타당한 사업재편계획 등 원칙에 입각한 '행동'을 보여달라"고 촉구한 바 있다.
이에 무조건적인 지원 방안은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일정 조건을 충족하거나, 구조조정 등 강력한 자구 노력이 담보되는 기업에만 금리 감면, 대출 상환기간 연장, 신규 대출 등 금융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길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채권단의 금융 지원 조건이 석화 기업에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주요 석유화학기업들에 대한 금융권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는 약 30조 원대로 추정된다. 당장 만기 연장 등 유동성 지원이 필요한 석화 기업 입장에서 자발적 노력이 선행돼야 하지만 업계에서는 채권단 지원 요건이 정부가 내건 요건만큼 쉽지 않다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석화 기업들의 자발적 구조조정 논의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유력한 구조조정 시나리오로 제시한 수직 계열화 모델부터 석유화학 기업 간 수평적 통폐합 논의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지만 답보 상태다.
기초 석화 원료인 에틸렌 생산량이 가장 많은 여수 석화단지의 경우 정유사인 GS칼텍스를 둘러싸고 LG화학과 롯데케미칼, 여천NCC의 카드 맞추기가 시작했지만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대산 석화단지에서도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합작사인 HD현대케미칼의 지분권 조정을 놓고 논의가 진행 중이다.
울산의 경우 정유사인 SK에너지에서 나프타를 공급받는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가 NCC를 통합해 수직 계열화 방안이 논의 중이지만 쉽게 협의가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9일 울산 석유화학산업단지를 찾아 조속한 사업재편 계획을 확정해달라고 직접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업계는 정부가 정한 연말까지 구체적인 통합 방안이 나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분위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반 기업 간 인수합병 과정도 최소 6개월이 걸린다"며 "업체 간 통폐합 논의가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협의 과정은 최소 1년은 걸릴 것"이라고 토로했다.
신용평가업계도 정부 주도의 강제적인 구조조정이 아닌 자율 구조조정인 만큼 성과를 도출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봤다.
한국신용평가는 "정부 주도의 강제적인 통합과 구조조정보다는 업계 차원의 자율 구조조정이 먼저 진행되는 만큼, 정유사-석유화학사, 석유화학사-석유화학사 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실질적인 구조조정의 성과가 지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석화 업계에서는 구조조정 논의에 속도를 높이기 위해 적극적인 금융 지원을 요구하는 분위기다. 채권단의 구조조정 압박이 커질 경우 오히려 진행 중인 사업구조 개편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협상 진행 과정을 보면 정부에서 좀 더 구체적인 정책적 지원이 있어야 논의에 탄력이 붙지 않겠냐는 요청이 나오고 있다"며 "정상 기업만 돕겠다는 방침을 고수할 경우 구조조의 의미도 퇴색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k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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