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식 한일 경제 통합 구상 또 강조한 최태원…日 주목한 이유

지리적인 이점에 규모의 경제 가능…제조업 중심 산업 구조도 유사
최대 7조 달러 신시장…최태원, APEC 계기 한일 협력 논의도 구상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열린 제조AX 얼라이언스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제조업(Manufacturing)과 AX를 결합해 M.AX(맥스)라고 이름 지어진 이번 얼라이언스에는 우리 제조업의 구조적 위기를 정면 돌파하고 제조 AX 1등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1000여개의 국내 기업과 연구기관, 학계 등이 참여한다. 2025.9.10/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서울=뉴스1) 박기호 기자 = 최태원 SK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일본과 유럽연합(EU)과 같은 형태의 경제 협력 방안을 재차 제언하고 나섰다. 한·일 경제 공동체는 우리나라의 성장 동력 회복을 위해 최 회장이 올해 초부터 제시한 청사진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면서 한·일 양국에서 재조명받고 있는 모양새다.

한·일 양국은 지리적인 이점과 경제·인구 규모, 유사한 산업 구조 등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최적의 파트너라는 게 최 회장의 생각이다. 과거사 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지만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야 한다는 데 양국 경제인들의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다.

최태원 "한일, EU 같은 완전한 경제 통합 연대 필요" 재차 제언

23일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최근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일 경제 연대가 필요하다"며 "힘을 합쳐 산업을 크게 키워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사회적 비용이나 경제안보에 드는 비용도 줄일 수 있고 미국, EU, 중국에 이어 세계 제4위 경제권이 될 것"이라며 "(한일 경제 연대는) 국제사회에서 룰세터(표준을 주도하는 측)가 될 수 있고 많은 시너지가 생겨날 것"이라고도 했다. 양국의 경제 연대 방안에 대해선 "느슨한 연대가 아니라 EU와 같은 완전한 경제 통합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경제 연대 대상으로 규모의 경제를 창출할 수 있는 인구·경제 규모를 먼저 고려했다. 물론 신흥 강국으로 부상 중인 인도와 같은 국가도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지리적인 이점이 떨어진다고 봤다. 일본의 인구는 지난해 기준 약 1억 2310만 명으로 세계 12위 수준이다. 경제 규모로 볼 때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4조 1864억 달러다. 우리나라의 GDP가 1조 7903억 달러인 점을 감안할 때 양국의 GDP를 합하면 약 6조 달러에 이르게 된다. 미국, 유럽연합, 중국에 이은 세계 4위의 경제 공동체가 탄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6조 달러는 현재의 양국 GDP를 단순히 합산한 수치인데 최 회장은 시너지 효과까지 감안하면 7조 달러까지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대한상의가 최 회장의 발언 등을 심층 연구해 제언집 형태로 발간한 '새로운 질서 새로운 성장'에선 "세계 4위 경제권을 형성하면 규칙 제정자로의 역할 전환이 가능하다는 논리"라며 "LNG 수입 2·3위국이 공동 구매하면 가격 협상력도 높아지는 등 저비용 구조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양국이 처한 위기가 비슷하다는 점도 한일 경제 연대 제안의 또 다른 근거다. 양국은 저성장, 저출생, 고령화라는 공통의 사회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를 방치할 경우 국가의 경쟁력 저하는 물론 향후에는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는데 양국이 경제 공동체를 추진하면 충분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양국이 경제 구조가 제조업 중심으로 유사하다는 점도 '일본'을 연대의 대상으로 구상한 배경이기도 하다. 중국 기업의 거센 추격에 한일 양국의 제조업은 위기에 놓인 상황이다. 그렇지만 최 회장은 우리나라의 반도체, 일본의 소재·부품·장비가 손을 잡으면 이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최 회장이 이번 인터뷰에서 양국 협력의 대표적인 분야로 인공지능(AI), 반도체를 꼽은 이유이기도 하다.

최태원의 제언에 한·일서 호응…APEC 계기 탄력 여부 '주목'

최 회장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한일 경제 연대에 대해 양국에서 호응이 나오면서 재차 주목받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일 관계에 대해 "경제 분야에 대한 새로운 협력 틀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에서 미래산업 분야 협력 확대에 합의하기도 했다.

이시바 총리가 퇴진하면서 일본의 정치 상황은 한일 관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양국의 관계가 경제 협력에 무게를 두고 있기도 하다. 최 회장은 "제가 만난 웬만한 일본 재계·정계 지도자들은 (한일 경제연대에) 반대라고 말한 사람은 없다"며 "일본도 다른 옵션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전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오는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경제 연대에 더욱 힘을 줄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인터뷰에서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기업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미래 협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회의 개최도 생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goodda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