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이어 주4.5일제 논의 돌입…경제계 난색 '이유 있다'

韓 노동생산성 OECD에서도 최하위…기업 비용 증가 불가피
글로벌 스탠더드 대비 과도한 규제…연전연패 재계 '우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광화문네거리에서 열린 민주노총 2024 세계 노동절 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5.1/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서울=뉴스1) 박기호 기자 = 정부가 주 4.5일제로 대표되는 실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입법을 추진하고 일부 업종 노동조합이 가세하면서 경제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노동생산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의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지고 인력 확보 부담이 가중될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해외 사례 분석 및 노동시간 축소에 따른 부작용을 점검하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노동 현안에 있어서 노조에 연전연패를 거듭했던 만큼 노동시간 단축 문제도 공론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도 엿보인다.

정부, 주 4.5일제 입법 드라이브…노조에 연전연패 경제계의 '불안감'

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는 22일 박정수 서강대 교수와 공동으로 연구, '임금과 노동생산성 추이, 그리고 근로시간 단축의 영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최근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한 노동시간 축소의 파장을 분석하고자 이뤄진 연구다.

법제처가 발표한 '123개 국정과제 입법 계획'에 따르면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국정과제인 실노동시간 단축 및 국가 지원 근거 마련을 위한 가칭 '실노동시간 단축 지원법' 등이 연내에 국회에 제출될 계획이다. 주 4.5일제를 도입한 기업에는 세액공제 등의 혜택을 제공하고 신규 인력을 채용할 경우 인건비를 지원하는 등의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노동시간 단축 사안은 의원 입법으로 추진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주 4.5일제의 연내 입법에 추진하면서 노조 역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주 4.5일제 도입, 임금 5% 인상 등을 요구하면서 오는 26일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평균 연봉이 1억 원이 넘는 은행원들이 주 4.5일제 도입을 요구한 데 대한 사회적 시선이 싸늘하지만 금융노조를 시작으로 다른 업종 노조에서도 4.5일제 도입 요구가 거세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우리나라 경제계의 고심이 깊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韓 낮은 노동생산성·인력 확보도 부담…기업 경쟁력 저하 우려

경제계는 우리나라의 낮은 노동생산성으로 노동 시간을 단축할 경우 기업 경쟁력이 저하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대한상의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연간 노동생산성은 6만 5000달러로 2023년 기준 OECD 36개국 중 22위에 해당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4.4 달러로 OECD 평균인 56.5달러에 못 미친다. 미국은 77.9달러, 독일은 68.1달러, 프랑스 65.8달러, 영국 60.1달러, 일본은 49.1달러였다.

노동 시간을 단축하면 인력 확보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생산성을 높이지 못할 경우 인력 충원을 통해 기존의 생산량을 확보해야 하지만 인력을 충원하지 못하는 기업은 일감이 줄고 설령 인력을 확보하더라도 추가되는 인건비는 부담스럽기만 하다. 게다가 현재도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는 중소기업은 납기 차질은 물론 일감 축소의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사회 양극화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근로자들은 임금보전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중소 영세기업 근로자들은 임금이 저하되고 결국 소득 보전을 위해선 추가적인 노동을 해야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는 노동시장 양극화를 더욱더 심화시킬 것이라는 설명이다.

기업들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해서 과도한 규제라고도 지적한다. 주요국은 근로시간 상한 기준이 우리 현행법과 같이 주 40시간 기준을 보편적으로 운용하고 있고 주 40시간 미만으로 정한 국가는 호주·벨기에(38시간), 프랑스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나라는 더 이상 과도한 장시간 근로 국가로 보기 어렵다는 해석도 있다. 우리나라 1인당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2008년~2023년 동안 2200시간대에서 1800시간대로 줄어 감소폭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크다는 것이다.

경제계는 우리나라의 경우 성과보다 연공과 근로시간에 기반을 둔 임금 체계로 실근로시간 단축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노동생산성 향상 방안 강구와 함께 불필요한 연장 근로 근절, 연차휴가 사용 촉진 등을 통한 실근로시간 단축 로드맵을 제시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경제계의 한 관계자는 노란봉투법 등 기업의 경영 환경을 악화하는 주요 정책이 추진되면서 기업의 경영 환경이 나날이 악화하고 있다며 "근로 시간 단축 문제에 있어서 경제계의 우려와 의견을 잘 반영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goodda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