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진 좋으니 높은 관세? 반도체 업계 "손실 나면 관세 환급해 주나"

반도체 품목관세 100%까지 언급…업계 불안 지속
韓 주력 메모리, 업황 변동성·투자비용↑…2년 전 조단위 손실

1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국 국빈방문을 위해 백악관을 떠나기 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09.16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지완 기자

(서울=뉴스1) 박주평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또 다시 반도체 품목 관세를 언급하면서 반도체 업계가 얼어붙었다. 관세 부과 기준이나 관세율에 대한 언급이 없는 상황이어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이 때문에 반도체 업체들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반도체 산업은 이익의 상당 부분을 설비, 연구·개발(R&D)에 투자해야 하고, 업황에 따른 손익 편차가 크다는 설명이다. 특히 최종 소비재인 자동차보다 관세 부과 영향이 광범위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반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영국 방문을 위해 워싱턴DC 백악관을 나서며 일부 국가의 자동차 품목별 관세를 15%로 타협한 것에 우려가 나온다는 질문에 "어떤 것은 더 많은 관세를 낼 수 있다. 반도체는 더 낼 수 있고, 의약품도 더 낼 수 있다. 반도체와 의약품은 이익률(margin)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 관세를 적게 내거나 내지 않던 국가에 관세를 부과해 큰 이익을 거두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반도체·의약품 관세를 재차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에 최대 100%, 의약품에 대해선 150~250% 관세 부과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2주 내 수입산 반도체에 대한 관세를 발표하겠다고 밝혔지만 발표가 지연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관세를 산출하는 기준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업계의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인공지능(AI) 호황으로 반도체 기업이 너무 많은 이익을 낸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면서도 "반도체, 특히 메모리는 부침이 있기 때문에 적자를 낼 수도 있는데, 그럴 때도 관세를 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메모리는 수요에 민감하지만, 공급은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호황기에 가격이 높게 뛰어도, 공급 과잉 상황에는 가격이 폭락하는 사이클을 보인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최근 AI 수요가 폭발하면서 기록적인 실적을 내고 있지만, 지난 2023년에는 7조 7303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보다 시장 점유율이 높은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역시 영업손실이 14조 8800억 원에 달했다.

또 반도체 기업은 끊임없는 기술 혁신을 요구하는 산업 특성상 천문학적인 시설투자와 R&D 비용이 수반된다. 적정 수준의 유보금을 보유해야 적정한 시기에 대규모 투자를 실행할 수 있다.

핵심 중간재인 반도체는 최종 소비재인 자동차보다 관세 발효 시 파급력도 크다. 자동차는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되는 상품이기 때문에 관세에 따른 가격 영향을 예측하기 쉽다. 반면 반도체는 IT기기, 가전, 자동차 등에 들어가 '산업의 쌀'로 불리는 만큼, 관세가 부과되면 전방 산업의 생산 비용이 모두 증가할 수밖에 없다.

반도체는 1997년 세계무역기구(WTO)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회원국 간 무관세가 적용돼 왔기 때문에 미국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경우 그 충격이 더 클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관세가 어떻게 부과될지 예상할 수 있는 기준이 없는 상황"이라며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가정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익률이 높다는 이유로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관세는 무역 불균형과 산업 보호를 위해 부과하는 정책 수단이고 이익률에 따른 세금은 조세 논리라는 설명이다.

jup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