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지분 인수, '급한 불' 인텔 통했지만…삼성·TSMC 다르다
잔여 보조금 대가로 인텔 지분 9.9% 취득 '최대주주'
인텔 조단위 적자·美 반도체 패권…"이해관계 맞은 결과"
- 박주평 기자
(서울=뉴스1) 박주평 기자 = 미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기업 인텔에 잔여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가로 지분 약 10%를 확보해 최대 주주에 올랐다. 이번 지분 인수는 적자 누적으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의 지속 가능성이 불투명해진 인텔의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보조금을 무기로 삼성전자(005930)나 대만 TSMC의 지분을 요구할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인텔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나 TSMC에 지분을 요구할 명분도, 지분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도 작다는 평가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인텔은 지난 22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인텔의 보통주 4억3330만 주를 주당 20.47달러에 매입하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는 인텔 지분의 9.9%에 해당하며, 총 89억 달러 규모다. 이번 계약으로 미국 정부는 미국 자산운용사 블랙록(지분율 8.9%)을 제치고 인텔 최대 주주에 등극했다.
매수 자금 89억 달러는 '반도체 및 과학법'(칩스법) 잔여 보조금 57억 달러와 미국 국방부 반도체 보안프로젝트 지원금 32억 달러에서 충당했다. 인텔은 기존에 지급된 보조금까지 포함해 정부의 총투자액은 111억 달러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미국은 이 주식에 대해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았으며, 현재 이 주식은 약 110억 달러의 가치가 있다"며 "이것은 미국에 위대한 거래이며, 인텔에도 위대한 거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정부의 인텔 지분 인수는 실수다'(The Intel deal is a mistake)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미국은 중국이 되는 방식으로 중국을 이기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인텔이 미국 정부의 투자를 받는다고 해도 이미 뒤처진 파운드리, 인공지능(AI) 반도체 사업에서 경쟁사를 이기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앞서 엔비디아와 AMD에 중국에 대한 칩 판매를 허용하면서 관련 매출의 15%를 받기로 합의하는 등 기업 운영에 개입을 확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칩스법 보조금을 약속받은 다른 기업들에도 인텔과 같은 방식으로 지분을 요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미국 정부의 인텔 지분 인수는 최근 위기에 직면한 인텔의 특수한 사정이 반영된 측면이 있다.
인텔은 지난 2021년 파운드리 사업에 다시 진출하면서 3㎚(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초미세 공정 개발, 해외 생산시설 증설 등을 추진했으나, 외부 고객사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위기에 직면했다. 인텔의 지난해 영업손실은 116억7800만 달러(약 16조 9000억 원)에 달하고, 올해 상반기 누적 영업손실도 37억 달러(약 5조 4000억 원)에 이른다.
이에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직원 15% 감축을 비롯해 오하이오주 최첨단 팹 증설 연기, 독일·폴란드 파운드리 팹 건설 취소 등을 발표했다. 특히 향후 14A(1.4㎚) 공정에 대한 주요 외부 파운드리 고객을 유치하지 못할 경우 개발을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자체 물량만으로는 인텔 파운드리 가동률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와 인텔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 같다"며 "인텔은 특수한 상황에 있고, 인텔은 미국의 자존심이자 반도체 패권을 확보하기 위한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텔의 최대 주주로 등극한 미국 정부가 향후 해외 기업들에 인텔 제품 구매나 파운드리 계약을 요구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외국 기업에 지분 인수를 강제할 수 없을 것"이라며 "삼성전자나 TSMC가 인텔처럼 재무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TSMC나 마이크론과 같이 미국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기업의 지분을 소유할 계획은 없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삼성 파운드리도 외부 고객사 확보에 난항을 겪으며 적자를 내고 있지만, 메모리 사업부를 비롯해 모바일, 디스플레이 등 다른 사업 분야는 견조하다. 삼성 파운드리는 최근 테슬라의 차세대 AI 칩과 애플의 차세대 이미지 센서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반등 신호도 나오고 있다.
다른 관계자는 "우리나라도 과거 힘든 기업들에 공적자금을 투입했고, 인텔도 그런 상황으로 보인다"며 "기존에 체결한 보조금 계약이 유효한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발표할 내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jup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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