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모든 정부 실패한 규제완화, 이번엔 다를까
(서울=뉴스1) 서명훈 산업1부 부국장 = 이재명 정부의 청사진을 담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이 발표됐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비전을 완성하기 위한 123대 국정과제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AI(인공지능)와 바이오헬스 등 국가 핵심산업에 대해서는 규제를 제로화하고 네거티브 규제 전환을 추진한다는 내용은 반가움이 앞섰다. 지금의 경제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시급하고 절실하다는 경제계의 목소리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또한 벤처투자시장을 확대하고 중소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성장사다리를 구축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대한민국의 경제정책에서 규제 완화와 중소기업 육성은 매 정권이 빼놓지 않고 강조해 온 단골 메뉴다. 이명박 정부의 '규제 전봇대 뽑기', 박근혜 정부의 '손톱 밑 가시 제거', 문재인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까지 이름은 요란했지만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중소기업 정책도 마찬가지다. 벤처 투자 확대, 성장사다리 구축 같은 비전이 반복됐지만, 실제 기업들은 "현장은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한다.
왜 이런 실패가 반복될까.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규제 완화가 숫자 게임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부처별로 규제 완화 건수를 집계하고, 규제 비용 분석을 의무화했지만 정작 핵심 규제는 그대로 남았다. 문서상으로만 존재하던 규제를 없애며 성과를 부풀렸고, 규제 비용 분석이 필요 없는 의원 입법을 통해 각종 규제를 신설하는 꼼수까지 등장했다.
또 기업들은 규제가 풀려도 움직이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가 600여 개 규제를 폐지·완화했지만 중소기업 투자 증가율은 2%대에 머물렀다. 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규정 적용에 따른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더 크게 보였기 때문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유진 파마(Eugene Fama)는 "정책 입안자들은 나쁜 결과에 대해 비난받는 것을 피하고 싶어하며,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만들더라도 그것을 피하려고 한다"며 "사람들이 나쁜 결과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안전한 선택'을 선호하는 리스크 회피 경향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사람은 동일한 크기의 이익보다 손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손실 회피)'고 지적한다. 공무원은 규제를 풀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더 크게 느낀다는 얘기다. 반면 규제 완화로 얻을 이익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위험은 남고 보상은 없는' 상황에서 관료들이 적극적으로 규제 혁신에 나설 리 없다.
중소기업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자기결정이론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사람과 조직은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 충족될 때 스스로 변화한다. 지원금을 받으면 그 대가로 실적 보고와 인증 절차에 묶이고, 정부가 만든 틀 안에서만 움직여야 했다. 스스로 길을 찾고 혁신할 수 있는 자율성, 성과를 내는 과정에서 인정받는 유능감, 정부와의 신뢰를 통한 관계성은 뒷전이었다. 결과적으로 제도는 바뀌었지만 기업은 여전히 수동적인 위치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규제 제로화와 네거티브 규제 전환 등 새로운 접근을 내세웠다. 그러나 성공을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우선 규제 완화의 리스크를 정부가 제도적으로 흡수하거나 완화해 공무원과 기업 모두가 안심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중소기업 정책은 단순한 자금 지원이 아니라 성장형 인센티브로 전환해야 한다. 신기술 도입, 연구개발, 해외 진출 같은 장기 성과를 기준으로 평가하고 보상하는 방식이다.
규제를 없애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규제 완화 → 기업 자율성 강화 → 신뢰와 협력 구축 → 내적 동기 촉발의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 예컨대 규제를 없애는 대신 기업 스스로 규범을 설정하고, 정부는 그 성과를 투명하게 인정하고 보상하는 방식이다. 이는 단순한 '규제 축소'가 아니라 기업의 심리적·제도적 자율성을 함께 보장하는 전략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규제를 줄였다'는 숫자가 아니라, 기업이 체감하는 자유와 성장 경험이다. 5년 뒤, 이재명 정부가 그 첫 성공 사례로 기록되기를 기대한다.
mhsu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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