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값 오르면 납품가 올리라는 법…레미콘 "우린 못해요" 울상

납품단가연동제 내달 4일 시행…'중소기업' 레미콘업체들, 건설사 눈치 봐야
시멘트값 인상 반영시 거래처 변경 우려…정부 "거래처 선택 자유 제한은 어려워"

5일 오후 경기도 안양의 한 레미콘 공장에서 믹서트럭이 콘크리트 혼합물을 나르고 있다. 2023.6.5/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한재준 김도엽 기자 = 내달 4일부터 납품단가연동제가 시행되지만 레미콘 업계에서는 벌써부터 제도의 실효성이 없을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레미콘 업체 대부분이 중소 업체인 데다 업체 수도 많아 시멘트 가격 인상에 따른 단가 인상을 요청할 경우 건설사가 거래처를 바꿀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22일 정부에 따르면 납품단가연동제 도입 근거를 담은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및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내달 4일 시행된다.

납품단가연동제는 수급사업자가 원사업자에게 공급하는 제품의 주요 원재료(비용이 하도급 대금의 10% 이상인 원재료) 가격이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가 정한 비율(10% 이내)보다 큰 폭으로 변동할 경우 그에 연동해 대금을 조정하도록 하는 제도다.

다만 △소액(1억원 이하) 계약 △단기(90일 이내) 계약 △원사업자가 소기업인 경우 △원·수급사업자가 연동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그 취지와 사유를 서면에 분명히 적시한 경우 등은 예외로 했다.

레미콘 업계는 시멘트사로부터 시멘트를 공급받아 물과 골재를 섞어 제품을 생산한 뒤 건설사에 납품한다. 레미콘 제조 원가에서 시멘트가 약 30%를 차지하는 만큼 시멘트 값이 인상되면 건설사에 대금 조정을 요청할 수 있다.

제도 취지대로라면 시멘트 값 인상분이 레미콘 가격에도 온전히 반영돼야 하지만 산업 특성상 적용이 힘들다는 게 레미콘 업계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시멘트 산업은 주요 7개사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과점 산업이다. 반면 레미콘 업계는 대부분이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레미콘)이 대기업(시멘트)으로부터 원자재를 납품받아 다시 대기업(건설사)에 제품을 판매하는 구조다.

시멘트 업계는 원가와 관련한 정보 제공을 하지 않기 때문에 중소 레미콘사는 통보 받은 시멘트 값 인상분에 따른 대금 조정 요청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럴 경우 건설사에서는 대금 조정을 요청하지 않은 업체나 조정 폭이 작은 업체로 거래처를 변경할 가능성이 생긴다.

건설사가 거래처를 바꾸더라도 현행 납품단가연동제에서는 제재할 방법이 없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제도상 거래 상대방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제한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건설사들은 공사 현장 인근 레미콘 업체에서 제품을 조달받는다. 그래서 건설업계에서는 거래처를 쉽게 바꿀 수 없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원자재 값이 오르면 지역 레미콘 업체가 다같이 가격을 올리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레미콘 공급은 거리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지역 레미콘사가 가격을 올린다고 해서 시공사가 다른 지역 레미콘사로 거래처를 변경하긴 어렵다"며 "결국 시공사가 인상된 비용을 다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레미콘 업계에서는 지역 업체들이 제품 가격을 일괄 인상하더라도 건설사와의 공급 협상은 개별 업체가 하기 때문에 공동 대응이 어렵다고 주장한다.

한편 주요 시멘트 기업 7개사는 수요업계에 시멘트 가격을 12~13% 인상하겠다고 통보한 상태다. 국내 최대 업체인 쌍용C&E(003410)는 지난달 인상된 가격으로 세금계산서를 발행했으며, 한일시멘트(300720)·한일현대시멘트(006390)도 내달 인상분을 반영한 세금계산서를 발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시멘트 업계는 가격 인상 통보 후 세금계산서를 발행한 뒤 2~3개월 뒤 판매대금을 받는다. 국토교통부 주관으로 시멘트·레미콘·건설업계가 시멘트 가격 인상 관련 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레미콘 업계 관계자는 "건설사의 분양가는 이미 정해져 있는데 인상된 시멘트 가격을 레미콘 가격에 온전히 반영해주겠냐"며 "현장에서는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hanantwa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