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터치]비밀에 싸인 컬트주의 로봇회사 '화낙'을 아시나요

화낙 홈펭지. 화낙 공장이 위치한 후지산 인근 화낙포레스트가 홈페이지 메인 화면이다. ⓒ News1

(서울=뉴스1) 최명용 기자 = '비밀주의, 컬트회사, 숲속의 공장, 도깨비회사, 노란색 성애자..."

일본의 산업용 공작기계 제조회사인 화낙을 지칭하는 말들이다.

화낙은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다. 하지만 기계 관련 업무를 담당한다면 너무 유명한 회사다.

화낙이 유명해진 것은 애플 아이폰을 만드는 데 쓰인 공작기계 덕이다. 애플은 폭스콘을 통해 아이폰을 조립 생산하고 있다. 아이폰의 핵심 중 하나인 알루미늄 케이스는 화낙의 공작기계를 이용해 만든다. 폭스콘이 갖고 있는 화낙 공작기계만 10만대로 알려져 있다. 화낙의 공작기계 1대 가격이 약 1억원이니 폭스콘이 보유한 화낙 기계 규모만 10조원 어치다.

화낙은 공작기계 부문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쓰이는 산업용 기계 중 절반가량은 화낙 제품이다. 산업용 로봇 시장 점유율은 30%, CNC 수치제어장치 시장점유율은 60%에 달한다. 스마트폰 가공기기만 따로 보면 점유율이 80%에 육박한다.

화낙의 CNC는 나노미터 단위로 정밀 제어가 가능하다. 오차가 없고 완벽한 작동으로 유명해 주요 첨단 제품엔 화낙의 로봇이 쓰인다. 삼성전자 갤럭시S도, 테슬라의 자동차도 화낙의 공작기계를 이용해 가공한다. 공장에 노란색 로봇팔이 움직이고 있다면 십중팔구 화낙 제품이다.

화낙은 일본 후지산 기슭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화낙 포레스트라고 불리는 49만평의 공간이다. 말 그대로 숲속에 공장이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 전세계에 공급하는 모든 공작기계를 생산한다.

인건비가 비싸다고 해서 해외로 공장을 옮길 생각도 하지 않는다. 비싼 일본 내에서 공장을 운영하면서도 영업이익률은 40%에 육박한다. 뛰어난 기술력 덕에 비싸게 값을 매겨도 못 사서 안달이다. 관련 기술이나 노하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비밀 유지 전략도 담겨 있다.

화낙은 노란색 성애자라고도 불린다. 공장도 노란색, 기계도 노란색, 유니폼도 노란색이다. 자동차나 구내 식당 식탁보까지 노란색이다. 노란색이 '금'과 관련돼 있다는 설도 있으나 그냥 창업주가 좋아하는 색이란 설명이 더 설득력있다.

화낙의 창업주는 이나바 세이우에몬 씨다. 이나바 창업주는 후지쓰에서 사내 벤처로 공작기계를 만들다가 1972년 화낙으로 회사를 분사했다. 현재 최고경영자는 창업주의 2세인 이나바 요시하루 회장이다.

화낙은 철저한 비밀주의를 깨고 최근 증시에 상장했다. 화낙은 2015년 12월 도쿄거래소에 상장했다. 화낙 주식은 투자자들의 이목을 그리 끌지 않았다. 실적과 기업 가치는 좋지만 주가 관리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초 서드포인트란 헤지펀드가 화낙을 공격하기도 했다. 지분을 매입해 최대주주 자리를 위협하고 자사주 매입 등 주가 관리를 권고했다. 화낙이 보유한 유보금만 1조엔(약11조원)에 달하는 규모인 만큼 이를 주가 관리에 쓰라는 주문이었다. 이나바 요시하루 회장은 "헤지펀드의 공격에 대응할 능력도 없고 필요도 없다"며 "헤지펀드가 나보다 경영을 잘한다면 언제든지 회사를 넘겨줄 것"이라고 말했다. 헤지펀드의 공격은 흐지부지 끝났다. 경영권 공격을 하는 헤지펀드에 '회사를 넘겨주겠다'고 맞대응하니 공격 측에서 먼저 힘이 빠질 일이다.

이나바 요시하루 회장이 갖고 있는 화낙 주식은 '0'주다. 창업 3세인 아들도 한 주도 갖지 않고 있다. 창업주부터 회사를 세습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나바 회장은 도쿄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엔지니어로 입사해 차근차근 승진, 오늘날 회장이 됐다.

화낙은 최근 비밀주의를 벗고 대외 활동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이나바 요시하루 회장은 한국을 찾아 전국경제인연합회 하계포럼에 참석했고 기자간담회도 자청했다. 이나바 회장은 "그동안 B2B 활동만 하다 보니 회사를 알릴 필요도 없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며 "이제부터 회사를 잘 알리겠다"고 말했다.

화낙의 기업전략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화낙은 공작기계에 인공지능과 딥러닝 기술을 접목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기계가 스스로 작업을 하며 오류를 수정하고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도록 한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오류가 발생하기도 전에 체크하고 오류를 수정할 수도 있다. 이같은 인공지능과 딥러닝 기술을 위해 M&A에도 적극 나서고 있으며 한국기업과도 협업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화낙의 변화를 보며 부러움 반, 무서움 반이 느껴졌다.

한국 기업인 중 헤지펀드의 공격 앞에 '나보다 경영 잘한다면 넘겨주겠다'고 자신있게 말할 CEO가 몇명이나 될까. 회사 주식 1주도 없이 회장 역할을 하면서 회사를 세계 최고의 회사로 만들고 책임감을 갖고 공격적인 사업 확장까지 해내는 CEO가 과연 몇이나 될까.

글로벌 경제 위기에 20년 넘게 진행되는 일본의 장기 침체 속에서 화낙은 여전히 글로벌 톱 기업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경제가 어떻든 버티는 것은 화낙과 같은 회사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글로벌 침체를 극복할 해답도 화낙과 같은 기업가 정신에서 다시 찾아야 하지 않을까. 공무원 시험에만 매달리고 편한 일자리만 찾아선 될 일이 아니다. 진짜 기업가 정신을 가진 CEO들이 한국의 어느 숲속에서도 활약하고 있으리라 믿어본다.

xpe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