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갈등 몸살앓던' 미국과 일본, 파업 사라진 이유

[노동리스크 해법없나⓸] 해마다 반복되는 갈등 '언제까지'
"성장없는 분배 없다"...산업규모 위축되면 일자리도 줄어

이경훈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이 6일 오전 울산공장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장시간 노동, 저임금체계 개선과 통상임금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다. 2014.2.6/뉴스1 © News1 노화정 기자

(서울=뉴스1) 최명용 기자 = 올해 노사 관계는 어느 해보다 심각한 갈등 양상을 보일 전망이다. 극단적인 요구를 하는 노동계와 갑작스런 비용 증가를 우려하는 경영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될 조짐이다. 현재로선 노사 갈등에 대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민주노총 등 강성 노조는 최대 규모의 투쟁을 예고하고 있고, 경영계도 비용 부담을 모두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 강경하다.

과연 해법은 없는 것일까. 해외사례를 살펴보면, 두가지 해결책을 엿볼 수 있다.

하나는 관련 산업이 쪼그라들어 나눠가질 파이가 적어지는 경우다. 나눠먹을 파이가 없으면 서로 더 갖기 위해 싸울 필요도 없다. 단적인 예가 일본과 미국 자동차 노조다. 매년 봄마다 극심한 춘투를 벌였던 일본 노동계는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지면서 협력적인 노사 관계로 돌아섰다. 1970년대 한해 1만건이 넘었던 쟁의는 현재 100건 미만으로 줄었다. 강성으로 유명했던 미국 자동차노조는 GM 등 이른바 빅3 자동차 메이커의 몰락 이후 자진해서 월급을 삭감하고 복지를 줄였다.

다른 하나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으로 임금을 안정적으로 상승시키는 경우다. 중국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최근 성장률이 7%로 떨어져 침체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고성장을 하고 있다. 때문에 중국 기업들도 치솟는 임금 인상률을 수용하고 있다. 1980년대 고성장을 이어가던 우리나라 모습과 닮았다. 당시 우리나라는 호봉제 임금체계로도 임금 인상을 수용할 정도로 성장률이 높았다. ◇일본 노동계, 30년새 파업 사라졌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12년 일본에서 발생한 노동쟁의는 75건이다. 노동쟁의가 가장 많았던 1974년엔 한해 1만462건의 노동쟁의가 발생했지만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 반나절 이상 파업을 동반한 노동쟁의 건수는 2012년 38건에 그쳤다. 1974년 5197건의 노동쟁의와 비교하면 파업도 거의 없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노사 관계를 상징하는 표현은 '춘투'(춘계투쟁)였다. 춘투는 1955년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총평)에서 처음 제창한 일본 노조의 독특한 임금인상 방식이다. 해마다 극렬한 시위를 동반한 임금 협상을 통해 산업별로 전체 근로자의 임금을 끌어올렸다. 명목임금 인상엔 도움이 됐다고 하지만 일본 경제는 봄마다 몸살을 앓았다. 일본의 춘투는 우리나라로 건너와 한국식 춘투와 하투란 이름으로 자리잡았다.

일본 노사 갈등은 1975년 석유 위기를 고비로 잦아들기 시작한다. 뒤이어 일본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져들었다. 이 시기부터 일본내에서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가 산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일본 노동계는 여전히 '춘투'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지금은 기업별로 임금 협상을 칭하는 표현일 뿐 과거와 같이 극렬한 투쟁을 동반하지 않는다. 기업별로 노사 협상을 벌이며 비교적 협력적인 노사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극심한 갈등 뒤 극심한 불황을 겪은 뒤에야 협력 관계를 찾은 셈이다.

자동차 공장에서 조립 중인 미국 노동자들 © 로이터=News1

◇빅3 파산하자, 美자동차노조 임금 절반으로

강성 노조의 역사는 미국이 먼저다.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산업은 강성노조로 유명했다. 미국 자동차 노조가 급변한 것은 2009년 GM의 파산 신청이 계기다.

GM 등 미국 자동차업계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른 경기침체 여파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는다. 2008년 GM의 손실은 310억달러(32조원) 규모였다. GM의 부실은 미국 경기불황에 따른 여파가 결정적인 원인이지만 강성 노조도 한몫했다.

GM 근로자들이 속한 전미자동차노조(UAW)는 매년 실질임금 인상과 의료비 지급 확대를 요구했다. 판매와 상관없이 공장 가동률을 80% 이상 유지해야 했고 근로자 해고시 5년간 평균임금의 95%를 지급해야 했다. 퇴직자와 가족의 의료보험과 연금을 종신 지급하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전미자동차 노조는 GM의 파산 등에 임박해서 임금 동결, 상여금 포기, 의료지원 혜택 축소 등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미 여러 공장은 폐업했고 수많은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어야 했다. GM에서만 9만명에 달하던 근로자는 6만9000명으로 줄였고 47개 생산 공장을 31개로 줄였다. 결국 전미자동차노조는 시간당 평균 임금을 78달러에서 45달러로 깎는 안에 대해서도 동의했지만 너무 늦었다.

◇중국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은 15%…비결은?

중국은 각 지방성이 최저임금을 고지한다. 지방성별로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올 중국 최저임금 인상폭은 약 15%에 달할 전망이다. 올해 우리나라 민주노총이 제시한 임금 인상률 8%와 비교하면 중국은 여전히 2배에 가까운 임금 인상률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 최저임금 인상률은 지난해엔 평균 17.6%였고 2012년엔 20.2%, 2011년엔 22%에 달했다.

중국의 가파른 인건비 인상 탓에 외국 기업의 중국 투자가 주춤거리고 중국 경제성장률도 둔화될 것이라는 우려다. 그러나 지금까지 중국 기업 및 현지에 투자한 외국 기업이 가파른 임금 인상률을 견딘 것은 그만큼 가파른 경제 성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2000~2011년 사이 중국의 평균 임금은 3배로 뛰었다. 중국은 앞으로도 5년동안 최저 임금을 연평균 13% 올릴 계획이다.

중국은 20년 넘게 두자릿수 성장률 행진을 했다. 지난 2007년만해도 14.2%의 높은 국민총생산(GDP) 성장률을 보였다. 이후 성장률이 하락했다곤 하지만 여전히 7%대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도 7% 중반대 성장률은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경제 성장률이 둔화되면 이처럼 가파른 임금 인상은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임금 인상에 앞서 생산성과 경제 성장이 우선이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성장둔화된 한국, 여전히 호봉제가 대세?

우리나라도 1970~1980년대 두자릿수 경제성장률을 이어갔다. 대학교를 졸업하면 입사할 기업을 골라서 입사할 수 있을 정도로 고용의 문은 넓었다. 한번 입사하면 정년까지 근무하는 '종신 고용'을 당연시 여겼고, 근무연수에 따라 매년 꼬박꼬박 임금이 올라가는 '호봉제'가 보편적이었다. 여기에 물가상승률에 준하는 임금인상을 요구해도 기업들은 대체로 수용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호봉제는 성과급 체제로 전환되기 시작했고, 기본급과 상여금의 비중이 역전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제 성장률을 넘어서는 인건비 상승률을 감당할 수 없는 기업들이 임금체계 방식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기업의 통상임금 부담을 줄이기 위한 해법으로 '연봉제 도입'을 권유하고 있다.

그러나 통상임금 확대와 근로시간 단축을 목표로 임금단체협상을 준비중인 노조들이 연봉제를 수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노사 갈등을 봉합하거나 회피하기 위해 기업들이 노조의 요구를 계속해서 수용한다면 종국에는 우리나라도 일본과 미국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기업들은 노사 갈등을 피하기 위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길 가능성도 없지 않다. 어느 쪽이든 일자리는 줄어들게 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분배를 우선할지, 성장을 우선할 지에 대한 학계의 논란은 여전하다"며 "하지만 노사갈등 탓에 기업들이 해외로 이전하고 경제 침체로 나눠가질 파이가 줄어든다면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xpert@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