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플레이션'에 노트북·스마트폰 70만 원↑…입학철에도 매장 '썰렁'
메모리 품귀난에 역대급 상승 랠리…메모리外 '도미노 침체' 적신호
- 최동현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대학교 개강일을 닷새 앞둔 지난달 26일, 아버지와 함께 서울 용산전자상가를 방문한 대학 새내기 A 씨는 최신형 노트북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우울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버지 B 씨도 아쉬운 듯 "이런 가격은 처음 본다"고 한마디 했지만, 직원은 "메모리 가격이 올라 어쩔 수 없다"며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인공지능(AI) 호조로 '메모리 하이퍼 불'(초강세장)이 도래하면서 PC·스마트폰 등 메모리 가격 비중이 높은 소비재가 때아닌 유탄을 맞았다. D램 가격이 11개월 연속 폭등하면서 전년보다 무려 10배 가까이 비싸진 탓이다. A 씨는 "노트북이 등록금 수준"이라며 중고 노트북 판매점으로 향했다.
뉴스1이 이날 찾은 서울 용산구 전자상가는 대학교 개강을 앞둔 주간에도 썰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따금 부모님과 함께 노트북을 사러 온 대학 신입생들이 신형 노트북을 둘러봤지만, 적게는 200만 원 중반에서 많게는 400만 원대를 호가하는 비싼 가격 탓에 구매를 망설이는 모습이 연출됐다.
삼성전자의 최신형 모델인 '갤럭시 북6 프로'(16인치·32GB RAM/1TB SSD)의 출고가는 260만~351만 원에 책정됐다. 전작(갤럭시 북5 프로)의 동일 사양 모델이 최고 280만 원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70만 원(25%) 비싸졌다. 프리미엄 라인인 '갤럭시 북6 울트라'는 무려 400만 원 중후반대다. LG전자의 '그램 프로AI 2026' 모델 출고가도 314만원대로 전작 대비 50만 원(20%) 올랐다.
전 국민 필수품인 스마트폰도 사정은 비슷하다. 삼성전자 '갤럭시 S26 시리즈'의 실물이 시내 매장에 깔린 이날 삼성스토어에는 신제품을 보기 위한 인파가 몰렸지만 "비싸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왔다. 플래그십 모델인 갤럭시 S26 울트라는 180만~250만 원, 기본형은 120만~150만 원으로 전작보다 20만 원가량 올랐다.
노트북·스마트폰 가격이 확 뛴 건 '메모리 가격 폭등' 탓이다. D램 익스체인지에 따르면 2월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Gb 1Gx8)의 2월 평균 고정거래 가격은 13.00달러로 집계됐다. D램 고정거래가는 올 1월 들어 사상 첫 10달러를 돌파하더니, 전월(11.50)보다 13.04% 올랐다.
종전 메모리 슈퍼사이클이었던 2018년 최고가(8.19달러)보다도 58.7%, 전년 동기(1.35달러)와 비교하면 무려 862.9%(9.6배) 폭등한 가격이다. 낸드플래시 가격도 14개월 연속 상승하며 지난달 12.67달러를 기록, 전월보다 33.91% 오르며 더 가파른 가격 오름세를 이어갔다.
메모리 가격이 금(金)값이 된 이유는 역대급 '품귀난' 때문이다. 엔비디아·오픈AI·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경쟁적으로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나서면서 고부가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를 빨아들이고 있다. 글로벌 메모리 '빅3'(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가 범용 D램 제조를 줄이고 HBM 생산을 늘리다 보니 D램 물량 자체가 급전직하한 것이다.
메모리 가격 인상은 PC·노트북·스마트폰 등 소비재 전반의 가격을 높이는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을 야기한다. 제조 원가에서 메모리 가격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대형 가전(TV·냉장고·에어컨 등)도 영향권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가전이 트렌드이기 때문에 모든 가전에 반도체 칩이 필수적으로 들어간다"며 "전반적인 가전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최근 '칩플레이션' 여파로 올해 메모리 가격이 전년보다 130%(2.3배) 상승해 PC 가격은 평균 17.3%, 스마트폰 가격은 평균 13%씩 오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반대급부로 PC 출하량은 전년 대비 10.4%, 스마트폰은 8.4%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삼성스토어에는 '고민하는 순간, 가격은 올라갑니다' 문구가 적힌 팻말이 붙었다.
업계는 반도체 제조사를 제외한 타 산업의 '도미노 침체'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메모리는 높아진 가격에도 물량 자체가 부족해 '공급자 상위 시장'이 굳어졌다. 가전·모바일 등 세트업체는 생산량이 줄고 원가 부담은 높아진 만큼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다. 메모리를 제외한 부품업체들은 공급 단가 인하 압박에 직면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가격 인상이 짧게는 올해, 길게는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대체적"이라며 "메모리 회사만 슈퍼사이클의 혜택을 받고, AI 가전 생태계에 엮여있는 다른 산업은 크든 작든 업황 둔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dongchoi8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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