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4도 삼파전? 이번엔 다르다"…'HBM 반전' 삼성전자의 자신감

'후발주자' 오명 벗고 HBM4 최초 양산…"기술의 삼성 돌아왔다"
견제 나선 SK, 건재한 마이크론…삼성전자, 기술·캐파 동시 투자

삼성전자가 업계 최고 성능의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를 세계 최초로 양산 출하를 시작했다고 12일 밝혔다. 사진은 삼성전자 HBM4 제품 사진. (삼성전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기술의 삼성이 돌아왔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엔비디아에 HBM4를 납품하며 반전의 고삐를 죄기 시작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의 게임체인저로 꼽히는 HBM4 시장도 글로벌 메모리 '빅3'(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의 삼파전으로 전개될 것으로 전망돼 누가 승기를 잡을지에 이목이 쏠린다.

삼성전자(005930)는 이전 세대인 HBM3E(5세대)까지 재설계에 애를 먹으며 HBM 경쟁에 후발주자로 참전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올해 최대 격전지가 될 HBM4에선 업계 최고 성능을 만족, 가장 먼저 고객사 인도에 성공하며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잃어버린 3년' 절치부심…HBM4 '세계 최고·최초'로 화려한 복귀

삼성전자가 엔비디아향(向) HBM4 초도 물량 인도를 시작한 지난 12일 삼성전자 천안캠퍼스. '세계 최초 HBM4 양산 출하' 문구가 적힌 대형 무진동 트럭이 갓 패키징을 마친 HBM4를 싣고 공장을 빠져나갔다. 단순한 고객사 납품을 넘어, '잃어버린 3년'의 굴레를 끊어낸 상징적 순간이었다.

HBM은 삼성전자에 '영욕의 대상'이다. 삼성전자는 2019년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막을 내리고 다운사이클이 시작되자, 경영 방점을 '기술'에서 '관리'로 옮겼다. 선행기술 연구개발(R&D)은 사실상 멈췄고, HBM 전담 조직도 해산됐다. 대신 원가 절감이 최우선순위가 됐다. 첫 번째 실수였다.

사소해 보였던 오판(誤判)은 삼성 반도체를 3년간 옭아맸다. 경쟁사 SK하이닉스가 빈틈을 파고들며 2022년 HBM3 시장을 선점했고, 엔비디아의 독점적 공급자가 됐다. 삼성전자가 뒤늦게 추격에 나섰지만 격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급기야 'HBM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젠슨 황)는 지적까지 받으며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반전의 물꼬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3월 '독한 삼성'을 주문하며 터졌다. 삼성전자는 HBM3E를 재설계하는 동시에, 차세대 HBM4의 선제 개발에 역량을 총결집했다. 사실상 HBM3E 경쟁을 건너뛰고 HBM4에서 판을 뒤집겠다는 '역발상'이었다.

승부수는 적중했다. 삼성전자는 HBM4에 1c D램(6세대 10나노급)과 4나노(㎚) 파운드리 공정을 동시 적용해 최대 11.7초당 기가비트(Gbps) 속도를 구현했다. 국제반도체 표준협의기구(JEDEC) 표준인 8Gbps를 37% 초과하는 세계 최고 성능이다. 메모리 대역폭은 초당 최대 3.3TB(테라바이트)에 달한다. 수율도 업계 최고 수준을 만족했다.

송재혁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 사장은 지난 11일 HBM4에 대한 고객사 반응을 묻는 말에 "아주 만족스럽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기술력으로 대응했던 삼성의 모습을 다시 보여드리게 됐다"고 말했다. '기술의 삼성' 복원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장면이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5일(현지시각) 미국 산타클라라의 한 식당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오른쪽)와 만났다.(SK하이닉스 뉴스룸)
HBM4도 '삼파전' 예고…삼성전자, 기술·캐파 초격차 '총력'

갈 길은 멀다. HBM4 시장도 이전 세대처럼 글로벌 메모리 3사의 무한 경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HBM 시장 점유율 과반을 장악한 SK하이닉스는 올 상반기 HBM4 양산 출하를 시작하고, 마이크론도 '공급 탈락설'을 정면 반박하며 건재함을 알린 상황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달 초 미국 출장길에 올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브로드컴,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 CEO들과 연쇄 회동하며 'HBM 세일즈'에 직접 나섰다. SK하이닉스가 한발 먼저 구축해 놓은 '동맹 전선'을 담금질하며 HBM 주도권 굳히기에 들어갔다는 평가다.

특히 SK하이닉스(000660)는 지난달 콘퍼런스콜에서 삼성전자의 추격을 의식한 듯 "고객사들과 인프라 파트너사들은 당사의 제품을 최우선으로 요구하는 상황"이라며 "단순히 기술을 앞서는 수준을 넘어 우리가 쌓아온 양산 경험과 품질에 대한 고객 신뢰는 단기간에 초월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견제에 나서기도 했다.

마이크론도 HBM4 경쟁을 예고한 상황이다. 마크 머피 마이크론 최고재무책임자(CFO)는 11일(현지시각) "우리는 이미 HBM4 대량생산에 돌입했으며 고객 출하를 시작했다"며 '‘엔비디아 공급망 탈락설'을 부인했다. 그는 "HBM 생산능력은 순조롭게 확대되고 있으며 올해 HBM 물량은 이미 전량 솔드아웃(판매완료)"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로직부터 메모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패키징을 아우르는 유일한 종합반도체기업(IDM)만의 '원스톱 설루션'을 앞세워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파운드리-HBM 설계를 잇는 '설계 기술 공동 최적화'(DTCO)를 통해 최고 수준의 품질과 수율을 달성한다는 로드맵이다.

압도적인 캐파(CAPA)도 강점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인 이익잉여금 402조 원, 장기차입금 23조 원을 비축하며 '투자 체력'을 다져놨다. 당장 내년 1분기 준공을 목표로 경기도 평택 4공장(P4)에 월 10만~12만 장의 웨이퍼를 생산할 수 있는 D램 생산 라인을 구축 중인데, 증설이 완료되면 HBM 월간 생산량은 15만 장에서 25만 장으로 확대돼 경쟁사(SK하이닉스 15만 장·마이크론 5만5000장)를 훌쩍 넘어선다.

HBM5(8세대)부터 커스텀 HBM(cHBM), 3D 적층 HBM(zHBM) 등 차세대 라인업의 선제 개발도 재촉하고 있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 연말 삼성 반도체 선행기술의 산실(産室)인 NRD-K를 찾아 "과감한 혁신과 투자로 본원적 기술 경쟁력을 회복하자"며 초격차 경쟁력을 당부했다.

dongchoi8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