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 치이고 韓에 발목…'끼인 새우' K-반도체, 실기론 '엄습'

美 100% 관세로 투자 압박…국내선 '새만금 이전론'
"투자체력 바닥, 현실성도 낮아"…골든타임 전전긍긍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가 연초부터 때아닌 '내우외환'을 만났다. 역대급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기)에 올라타 힘껏 노를 젓기도 바쁜 시기에, 트럼프 행정부는 100% 고율 관세를 들이밀며 '미국 투자'를, 국내에선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의 '새만금 이전론'이 고개를 든 것이다.

美 "공장 짓던가 100% 관세"…국내선 "호남 이전론"

20일 업계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최근 뉴욕주에서 열린 마이크론 신규 공장 착공식에서 "모든 메모리 생산 기업에는 두 가지 선택지만 존재한다"며 "100% 관세를 지불하거나,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가 '메모리 반도체'를 콕 짚어 현지 투자를 압박한 것은 이례적이다. 앞서 미국은 14일(현지시각) 미국에 수입돼 제3국에 재수출되는 특정 첨단 반도체(H200·MI325X)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이튿날엔 대만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에 2500억 달러 규모 반도체 라인을 신규 투자를 대가로 관세를 면제하는 합의를 타결했다.

지난해부터 예고했던 '반도체 관세'가 실체를 갖춰가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해 11월 발표한 공동 팩트시트에서 '경쟁국(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이라는 큰 틀의 최혜국 대우에만 합의한 상태다. 트럼프 정부는 대만과의 합의를 기준점으로 기존 투자액(3500억 달러)과 별개의 추가적인 '반도체 투자'를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K-반도체를 흔드는 변수는 국내에도 현재진행형이다. 삼성전자(국가산단)와 SK하이닉스(일반산단)가 각각 360조 원과 600조 원을 투입해 신규 팹(fab·반도체 생산시설)을 짓고 있거나 부지를 조성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산업단지)가 여권발(發) '새만금 이전론'에 휩싸인 것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CBS 인터뷰에서 수도권 전력 부족 우려를 언급하며 "꼭 거기(용인)에 있어야 할지, 지금이라도 전기가 많은 쪽으로 옮겨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 있다"고 한 발언이 시발점이 됐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득실셈법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9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공사현장에서 분주하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공동취재) 2026.1.9/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노 젓기도 바쁜데"…정치 셈법에 난감한 삼성·SK

업계에선 K-반도체의 '실기(失期)론'이 대두하고 있다. 국내 메모리 반도체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합산 영업이익만 200조 원을 돌파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 나오는 배경에는 인공지능(AI) 산업의 폭발적 확산에 따른 시장의 '쇼티지'(공급부족) 현상이 작동하고 있다.

누가 먼저 생산시설을 지어 시장 수요를 장악하느냐에 업계의 초점이 맞춰지면서 '캐파(CAPA·생산능력) 경쟁'이 불붙었다. 당장 삽을 떠도 일분일초가 아쉬운 판국에, 공장 부지 재검토에 발이 묶였다간 경쟁력만 갉아먹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 체력'이 한계치라는 점도 문제다.

삼성전자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370조 원, 평택 5공장(P5)에 60조 원,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370억 달러(54조 원) 등 490조 원에 육박하는 투자 계획을 수립·집행 중이다. SK하이닉스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600조 원, 청주 첨단 패키징 공장(P&T7)에 19조 원,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7000만 달러(약 5조6000억 원) 투자를 계획 중이다.

현재 진행 중인 미국 설비투자를 메모리 생산라인으로 전환하는 것도 쉽지 않다. 삼성전자의 테일러 1공장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로 라인 구축이 대부분 완료됐다. 김동영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문연구원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더라도 (현지엔) 양질의 노동력이 부족하다"며 "실제 생산이 이뤄질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선 '새만금 이전론'도 현실 가능성이 작다고 본다. 당장 SK하이닉스의 4개 팹 중 1호는 내년 상반기 준공을 목표로 상당 부분 공사가 진척됐다. 반도체 공정의 '생명줄'인 산단 용수 공급 문제도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속이 타는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dongchoi8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