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팀이 앱 만들고 총수까지 나섰다"…韓 산업계 'AX 특이점'

[AX 일잘러]①LGD·GS파워, 비개발자가 만든 AI로 생산성 향상
'AI 드리븐 컴퍼니' 속도내는 삼성·SK…'실체' 드러내는 AI 전환

편집자주 ...바야흐로 '인공지능(AI) 전성시대'다. 국민 4명 중 1명이 생성형 AI를 경험하고, 기업 절반이 AI로 업무를 본다. 삼성·SK·현대차·LG 등 선도기업들은 'AI 드리븐 컴퍼니'를 기치로 인공지능 전환(AX)을 가속하고 있다. 선언적 구호에 머물렀던 AX는 이제 손에 잡히는 '실체'가 됐다. 실험실 밖으로 나와 현장을 바꾸고 있는 AX 현주소를 들여다본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인공지능(AI)을 잘 활용하고 이해한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마저 위협받고 있다."

구글이 만든 바둑 AI '알파고'와 2016년 세기의 대결을 벌였던 이세돌 9단의 말이다. 충격적인 패배로부터 AI의 가능성을 엿봤던 그는, 9년이 흐른 오늘날 울산과학기술원(UNIST) 특임교수로서 사람과 AI의 협력을 강조하는 'AI 전도사'로 변신했다.

바둑계를 뒤흔든 'AI 혁명'은 한국 산업계로 번지고 있다. 삼성·SK·현대차·LG 등 주요 기업에선 AI를 업무와 현장에 도입하는 '인공지능 전환'(AX)이 한창이다. 급기야 비(非)개발 출신 직원이 AI를 활용해 프로그램을 개발, 생산성을 높이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구호에 머물던 AX가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인사팀이 개발자 제치고 '우승'…들썩인 LG그룹

16일 업계에 따르면, LG전자가 지난 9월 개최한 'LG 소프트웨어 개발자 콘퍼런스(SDC) 2025' 프롬프톤 챌린지에서 이변이 벌어졌다. LG 계열사 구성원들이 직접 개발한 AI 설루션 프로그램의 완성도와 사업성을 겨루는 대회에, 비개발부서 출신들로 구성된 LG디스플레이 인사팀(에듀플로)이 최종 우승을 차지하는 이변이 일어난 때문이다.

LG디스플레이 HRD 담당 글로벌 인재개발팀 최원석 팀장과 백수연 책임, 전문역량개발팀 방인영 선임이 주인공이다. 총 51개 팀이 출전한 대회에서 비개발자팀은 단 3팀이었다. 세 사람이 뭉친 '에듀플로'(eduflow)팀은 맞춤형 베트남어 학습 애플리케이션 '주비엣'(JuViet)으로 챌린지 대상을 거머쥐었다.

'주재원'과 '베트남'의 합성어인 주비엣은 LG디스플레이 베트남 사업장에 파견된 주재원이 현지 언어와 문화를 빠르게 학습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LG디스플레이는 서버 확보와 보안성 강화를 거쳐 주비엣을 현업에 도입할 예정이다. 향후 중국 등 해외법인과 타 LG 계열사에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코딩의 '코'자도 모르는 비개발부서 출신 직원들이 AI 앱을 개발한 비결은 '바이브 코딩'(Vibe Coding)에 있다. 사용자가 코드를 입력하지 않아도 AI 플랫폼이 프론트앤드부터 백앤드까지 AI 설루션을 완성해 주는 도구다. 에듀플로팀은 "바이브 코딩으로 개발 기간은 6개월에서 6주로, 비용은 2억2000만 원 절감했다"고 말했다.

'LG 소프트웨어 개발자 콘퍼런스(SDC) 2025' 프롬프톤 챌린지에서 우승한 베트남어 학습 애플리케이션 '주비엣'(JuViet)(LG디스플레이 제공)
총수가 AI 강조하는 GS, 직원이 만든 AI 툴만 140개

비개발자 출신 실무자가 AI 설루션을 만든 사례는 GS그룹에도 있다. GS에너지의 자회사 GS파워가 부천열병합발전소에 도입한 AI 위험성 평가 시스템 'AIR'가 주인공이다. AIR는 직원이 작업 내용만 입력하면 공정 생성→단계별 잠재 위험 요인 분석→안전대책 수립→위험등급 도출까지 생성형 AI가 원스톱으로 처리한다.

AIR는 지난해 GS그룹이 개최한 '제3회 해커톤'에서 처음 제안됐다. 허태수 GS그룹 회장이 "그룹사 전반에서 현장의 모든 임직원이 생성형 AI 도구를 익숙하게 사용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문했던 날, 공교롭게도 실제 현장에 도입될 만한 'AI 설루션'이 탄생한 것이다.

GS그룹은 총수가 한국경제인협회 AI혁신위원장을 맡을 만큼 AX에 진심인 기업 중 하나로 손꼽힌다. GS그룹은 노코드 기반 AX 플랫폼 '미소'(MISO)를 전사에 도입, IT 지식이 없는 직원도 필요에 따라 AI 앱을 스스로 개발하는 등 업무 방식이 자리 잡았다. GS그룹 계열사 직원들이 직접 만들어 현장에 적용한 AI 툴만 140여개에 달한다.

GS그룹 관계자는 "과거엔 AI 에이전트를 개발하려면 통상 8~12주 기간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현업이 AI 프로토타입을 스스로 개발하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생산성이 향상되고 있다"며 "생산 공정 외에도 세무 가이드, HR 서비스, 콘텐츠 제작 등 다양한 업무에 걸쳐 AI를 적용하는 방식이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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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K도 'AI컴퍼니' 가속…AI 갖고 노는 '일잘러' 뜬다

삼성전자와 SK그룹도 AX 고삐를 죄고 있다. 노태문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 직무대행(사장)은 2030년까지 전 업무영역의 90%까지 AI를 적용하는 'AI 드리븐 컴퍼니'를 천명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AI를 친숙하게 가지고 놀 수 있어야 혁신과 성공을 이룰 수 있다"며 AI 교육 대상을 C레벨(사장급)까지 넓혔다.

자체 AI 모델 '가우스'를 활용 중인 삼성전자는 올해 5월 AI 생산성 혁신 조직을 설치하고, 9월에는 사내 생성형 AI 모델의 업무 생산성을 평가하는 '트루벤치'를 공개했다. 업무 생산성 극대화에 최적인 AI 모델을 가려내는 지표로,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AX를 구현하겠다는 전략이다.

SK하이닉스는 8월 사내 반도체 업무에 특화된 AI 플랫폼 '가이아'(GaiA)를 개발했다. 임직원들은 사내 보안망 내에서 가이아를 활용해 부서·업무별 맞춤형 AI 에이전트를 개발할 수 있다. 궁극적으론 AI 에이전트끼리 소통하며 문제를 풀어가는 'A2A'를 구현한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 기술을 연내 개발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AX가 고도화할수록 'AI 설계자'가 주목받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AX는 필연적으로 '노동의 대체'를 동반한다. AI를 활용해 새로운 AI 도구를 만들 수 있는 'AI 일잘러'가 요구받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이세돌 교수의 조언을 곱씹어볼 시점이다.

dongchoi8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