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인화'의 가치 되새기며…LG家 상속분쟁 이제 멈출 때
- 김민성 기자
(서울=뉴스1) 김민성 기자 = "형제간과 종족 사이에는 서로 좋아할 뿐 따지지 마라."
LG(003550)그룹을 창업한 고(故) 구인회 회장의 경남 진주 생가에 남아 있는 문구다. 구인회 회장의 조부인 '만회 구연호공'의 유훈으로 LG가(家)의 '인화'(人和)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장이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대기업들은 대부분 2세, 3세로 이어지는 경영승계 과정서 적잖은 잡음이 있었다. '형제의 난' 등으로 불릴 만큼 양보 없는 싸움을 펼쳤고, 여론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LG는 유독 경영권 분쟁과는 거리가 멀었다. '동업은 형제끼리도 하지 마라'는 말이 있지만, LG는 창업 후 75년 동안 '아름다운 동행과 이별'이 이어지며 경영권 승계의 '모범사례'로 남아 있다.
1947년 락희화학을 공동 창업한 구인회·허만정 회장 가족들은 2004년 LG와 GS로 분리를 합의했고, 구본무 회장의 별세 이후 구광모 회장이 총수 자리에 오르며 LX 등으로 계열 분리를 거치면서도 별다른 잡음이 나오지 않았다.
'인화' 대신 '불화'(不和)가 드리운 건 올해 3월이다. 구본무 선대회장의 부인 김영식 여사가 두 딸과 함께 아들인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다. 5년 전 구본무 회장의 별세 후 이뤄진 재산 분할을 다시 하자는 주장이다.
김 여사 측의 주장은 지난달 5일 첫 변론기일부터 흔들렸다. 증인으로 나온 하범종 ㈜LG 경영지원부문장(사장)은 "구본무 회장은 '다음 회장은 구광모 회장이 돼야 한다. 경영 재산은 모두 구 회장에게 승계하겠다'는 말을 남겼고 그의 유지가 담긴 문서가 있다고 말한 뒤 (김 여사에게) 보여드렸다"고 증언했다.
'본인 김영식은 고 화담 회장님(구본무 회장)의 의사를 좇아 한남동 가족을 대표해 ㈜LG 주식 등 그룹 경영권 관련한 재산을 구광모에게 상속하는 것에 동의함'이라는 문구와 함께 김 여사의 서명이 담긴 동의서도 공개됐다.
김 여사 측은 구본무 회장의 경영권 지분의 처분에 대한 유언장이 없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고 구 회장이 자신들을 '기망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에서 너무나 구체적인 재산 분할 논의가 있었다는 증거가 나온 것이다. 당시 재판에서 김 여사 측 법률대리인은 이를 보고 당황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LG 안팎에선 역대 회장들의 뜻과 그룹의 승계원칙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김 여사가 소송을 했다는 점에서 더욱 씁쓸하다는 반응이 많다. 상속회복청구소송의 제척기간(3년)이 지나고도 뒤늦은 재산 분할을 주장하는 것도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2018년 LG그룹의 총수가 된 구광모 회장은 올해로 취임 5년을 맞았다. 그간 공개 석상에서 대중을 상대로 단 한번도 마이크를 잡은 적이 없던 그가 LG트윈스가 29년 만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하자, '구단주'로서 지난 13일 잠실야구장 한가운데 섰다.
'은둔형 총수'라는 항간의 소문을 비웃듯 구광모 회장은 자연스레 관중들과 눈을 마주치며 자신감이 담긴 우승 소감을 이어갔다. 그는 "오늘의 승리는 여기 계신 모든 분과 LG를 사랑해준 모든 분이 함께 일군 것"이라고 했다. 취임 이후 줄곧 강조해왔던 '고객(팬) 경영'이 반영된 발언이기도 했다.
구광모 회장의 말처럼 기업에 있어 고객은 어느 가치보다 중요하다. 선대회장들이 남긴 업적을 넘어 구광모 회장은 '고객'에게 다가가기 위해 불편할 수밖에 없는 상속분쟁을 딛고 대중 앞에 섰다.
상속을 둘러싼 진실은 재판 결과로 드러나겠지만 인화를 강조해 온 LG에서 불거진 분쟁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그룹에 적잖은 상처를 줬다. 구본무 선대회장 등 어른들이 공들여 키워온 그 그룹이다.
글로벌 복합 위기,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이라는 먹구름 속에서 사업 전략을 짜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소송을 내려놓고 '인화'의 LG를 되찾는 길이 모두가 이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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