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하이닉스, 비메모리 반도체 "못하나 안하나"

(서울=뉴스1) 최명용 기자 =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점유율 1위. "한국 반도체 산업을 일컫는 말이다. '세계 1위'란 타이틀은 붙지만 항상 '메모리 반도체'에 한정됐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진출한지 불과 몇 년만에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했다. 대만·일본의 경쟁사들을 쓰러뜨리고 독주체제까지 갖췄다.

문제는 비메모리 반도체다. 반도체 산업에서 비메모리 반도체와 메모리 반도체는 8대2의 비율로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더 크다. 삼성전자는 수십년간 꾸준히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을 투자했지만 메모리에 비하면 여전히 부진하다. SK하이닉스는 과거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을 매각한 뒤 다시 시작하는 단계다.

한국 반도체 업체들이 유독 비메모리 반도체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과 몇년 만에 세계 1위로 올라선 메모리 반도체 산업과 무엇이 다를까.

업계에선 '초기에 뛰어들지 못해 생긴 격차'라고 설명했다. 선진국 비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공고한 성벽을 갖춘 뒤 뒤늦게 뛰어들면서 벌어진 격차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기술에 큰 변화를 보이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십여년 늦은 격차를 메우기가 매우 어렵다.

정형화돼 있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분야별로 나뉜 비메모리 반도체의 특성도 한 이유다. 로직, 이미지, 센서, 마이크로컴포넌트 등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분야가 다양하다. 삼성전자가 특정부문에선 성과를 내도 비메모리 반도체 전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어려운 이유다. 특히 비메모리 반도체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마이크로컴포넌트 반도체 시장은 인텔의 아성이 워낙 두텁다.

업계에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제조기술 격차는 거의 따라잡았지만 인텔이나 퀄컴이 쌓아놓은 표준절차, 브랜드 가치, 네트워크 등을 따라잡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다. 삼성이나 SK하이닉스는 공략 가능한 분야부터 비메모리반도체 산업을 진출하고 있다. 전체 시장에서 수위를 차지하기 위해선 더 시간이 필요하다.

◇삼성·SK하이닉스 반도체 호황..메모리만의 잔치

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발표한 삼성전자 4분기 실적에서 DS사업부는 매출 17조7100억원에 영업이익 3조1300억원을 올렸다. 삼성전자 DS부문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사업을 담당한다. DS사업부 중 반도체 부문은 매출 10조6600억원, 영업이익 2조7000억원을 올렸다. 반도체 부문 매출에서 메모리사업부가 차지한 비중은 80%가 넘는다. 메모리사업부는 8조18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 2조7000억원 중 대부분을 메모리사업부가 차지했다. 비메모리 반도체를 책임지는 시스템LSI 부문의 이익은 미미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도 마찬가지다. SK하이닉스는 4분기에 매출액 5조1480억원, 영업이익 1조6670억원을 올렸다. 매출 대부분은 메모리반도체가 차지했고 비메모리 사업은 거의 없었다.

SK하이닉스는 비메모리사업을 담당하던 사업부를 떼어내 매그나칩을 분사, 매각한 바 있다. 비메모리사업은 최근 다시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시스템 IC는 수익성 중심 체제를 구축하고 고화소 CIS시장 진입을 위한 기술 개발을 성공시켜 성장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엑시노스 5260.(삼성전자 제공)ⓒ News1 2014.02.26/뉴스1 ⓒ News1

◇반도체 80% 차지하는 비메모리...장벽 높아

반도체 산업은 크게 비메모리와 메모리로 나뉜다. 시장규모는 비메모리 반도체가 전체 시장의 80%, 메모리 반도체가 20%를 차지한다. 가트너에 따르면 2014년 반도체 산업규모는 3398억달러 수준이며 이중 메모리 반도체는 804억달러, 비메모리 반도체는 2462억달러 규모였다.

비메모리와 메모리 반도체를 통합해 시장점유율 추이를 따지면 인텔이 압도적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인텔의 지난해 매출은 513억달러로 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는 뒤를 이어 372억달러, TSMC는 250억달러, 퀄컴은 191억달러로 뒤를 잇는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다양한 분야로 나뉜다. 컴퓨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중앙처리장치(CPU) 등을 만드는 마이크로컴포넌트나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바꾸는 아날로그 반도체, 이미지센서 등 다양한 형태로 나뉜다. 각 영역마다 글로벌 강자들이 다 다르다.

비메모리 반도체 중 난공불락인 분야는 '마이크로컴포넌트'를 담당하는 비메모리 반도체다. 컴퓨터 CPU는 인텔이 강력하다. 모바일 기기에 필요한 AP칩은 퀄컴의 프로세서가 가장 앞서 있다.

인텔이나 퀄컴이 시장독주 체제를 굳힐 수 있었던 것은 이 회사들이 만든 비메모리가 시장에서 표준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인텔은 CPU를 만들며 컴퓨터 시스템의 기초를 만들었다. 인텔 CPU에 다른 컴퓨터 부속물이나 메모리 반도체, 센서 반도체 등이 연동해야 한다. 메모리 반도체나 컴퓨터에 부가되는 다양한 시스템은 인텔 CPU에 맞는지 검증을 받아야 한다. 인텔이 기준이 되는 셈이다.

인텔을 대신해 CPU 시장에 진출하려면 수많은 컴퓨터 부속물들의 표준을 다시 정립하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수많은 자본과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이동통신칩 시장에서 절대 강자 역할을 하는 퀄컴도 마찬가지다. 이동통신의 표준과 시스템을 주관하며 일종의 표준 역할을 하기 때문에 퀄컴을 대신해 통신칩 시장에 뛰어들기가 만만치 않다.

◇비메모리 반도체 꽃 '로직'은 이제부터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는 쉽게 접근이 가능한 부문부터 사업을 벌였다. 디지털 카메라에 꼭 필요한 이미지센서 등 주변기기용 비메모리 반도체를 주력으로 개발했다.

삼성전자는 DDI나 CARD 반도체 시장은 이미 선두를 차지했다. DDI는 이미지 영상 신호를 받아 디스플레이로 재현할 때 필요한 반도체칩이고 CARD는 신용카드 등에 내장돼 있는 칩이다. 시장규모가 크지 않고 수익성이 높지 않아 시장 선두를 차지하고도 큰 수익을 내진 못한다. 사진을 찍어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는 CIS 반도체도 초기에 도전한 분야다. SK하이닉스가 비메모리반도체 사업을 준비하며 공략을 선언한 분야도 CIS 반도체다.

뒤를 이어 준비한 비메모리 반도체는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다. 삼성전자는 2002년부터 AP사업을 시작해 기술력과 브랜드를 축적하고 있다. 2009년 세계 최초 저전력 1GHz 모바일AP를 출시하는 등 기술력을 축적했다.

삼성전자가 AP칩을 본격화한 것은 2011년 '엑시노스'라는 반도체 칩 브랜드 론칭 시점이다. 삼성전자는 엑시노스 시리즈를 매년 업그레이드하면서 자체 스마트폰과 외부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기술력은 선두업체를 거의 대부분 따라잡았다. 엑시노스 옥타5 시리즈는 저전력에 고사양 칩으로 프리미엄급 스마트 기기에 적합하다.

제조공정은 오히려 앞서기 시작했다. 퀄컴이 만드는 스냅드래곤은 대만 TSMC 공장에서 20나노 공정으로 생산된다. 삼성전자는 14나노 공정으로 엑시노스 칩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14나노 공정을 활용한 AP칩을 애플에 공급할 것을 알려졌다. 애플과 특허 분쟁이 벌어지며 TSMC에 넘겨줬던 물량을 다시 확보했다. 기술력으로 다시 시장을 만회했다. 삼성전자 갤럭시 신제품에도 엑시노스가 탑재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는 최근 시스템LSI부문에 지속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실적설명회에서 "올해 시스템LSI부문은 14나노 공정을 중심으로 성장을 예상한다"고 밝혔다. 다만 비메모리 시장을 압도하기까진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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