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만으론 한계"…장애인 영화관람권, 콘텐츠 제작부터 바뀌어야

CGV·롯데시네마 "극장 단독 해결 어려워"…제작·배급사 협조 필요
접근성 영화 매년 70편 안팎…비용 분담·기술 표준 마련도 과제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서 한 시민이 키오스크를 이용하는 모습. 2025.3.27 ⓒ 뉴스1 김성진 기자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대법원이 영화관 사업자의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화면해설·자막 제공 의무를 인정하면서 영화관 업계의 대응에 관심이 쏠린다. 영화관의 상영 환경을 개선하는 것뿐 아니라 영화 제작·배급 단계부터 장애인의 콘텐츠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3일 영화관 업계에 따르면 CGV와 롯데시네마는 대법원 판단과 관련한 법적 절차를 검토하는 한편 장애인 관람 편의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다만 영화관 측은 화면해설과 자막 제공이 극장만의 노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입장이다. 영화 콘텐츠에 자막이나 화면해설을 적용하려면 별도의 접근성 콘텐츠가 필요한 만큼 제작·배급사의 협조와 기술 표준 마련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CGV는 "화면해설 및 자막 서비스의 제공은 당사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콘텐츠 제작·배급사의 협조, 기술 표준 정립, 관련 제도적 기반 마련이 선행돼야 하는 구조적 과제"라고 밝혔다.

롯데시네마 역시 "향후 법적 절차에 성실히 임하고 장애인 고객의 관람 편의 개선을 위한 노력도 지속하겠다"면서 콘텐츠 제작 단계에서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3일 CJ CGV·롯데컬처웍스·메가박스중앙이 시·청각장애인에게 화면해설과 자막, 이를 수신할 기기 등을 제공하지 않은 것은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2심이 제공 범위를 제한하면서 영화관 사업자의 재정적 부담을 지나치게 고려했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매년 70편 안팎 제작…상업영화 확대가 관건

국내에서도 장애인의 영화 관람을 위한 접근성 콘텐츠가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화면해설 등이 제작된 영화는 총 79편으로 일반 상업 장·단편 영화가 54편, '가치봄 영화제' 출품작이 25편이었다.

올해는 총 68편이 제작될 예정으로 상업 장·단편 영화 41편, 가치봄 영화제 작품 27편이다. 매년 약 70편 안팎의 영화에 접근성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제작을 담당하고 자막 제작과 사업 전반은 한국농아인협회가 맡고 있다. 사업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다.

다만 별도의 지원사업을 통해 일부 영화에 접근성 콘텐츠를 추가하는 방식만으로는 장애인이 원하는 영화를 자유롭게 선택해 관람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 상업영화의 제작 단계부터 자막과 화면해설 등 접근성 콘텐츠를 함께 만들고 이를 배급·상영 단계까지 안정적으로 전달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시·청각장애인 영화관람 보조기술시연이 이뤄지고 있다. 2021.12.2 ⓒ 뉴스1 민경석 기자
제작부터 상영까지 연결해야…비용·표준화 과제

이번 대법원 판단을 계기로 영화관의 편의 제공 범위가 다시 논의될 예정인 가운데 제작·배급 단계의 역할도 함께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극장이 수신기기와 상영 시스템을 갖추더라도 영화 자체에 화면해설이나 자막 콘텐츠가 없다면 별도의 제작 과정이 필요하다. 반대로 제작 단계부터 접근성 콘텐츠가 만들어지면 배급사는 이를 공급하고 극장은 안정적으로 상영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식의 역할 분담이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접근성 콘텐츠 제작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어떤 기술 규격을 적용할지 등은 풀어야 할 과제다.

미국에서도 영화관에 일정 요건에 따라 폐쇄자막과 화면해설을 제공하도록 하는 제도를 운영하는 등 장애인의 영화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를 두고 있다.

영상 콘텐츠 접근성에 대한 국제적인 기준도 마련돼 있다. 월드와이드웹컨소시엄(W3C)의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WCAG)은 사전 제작된 영상 콘텐츠에 자막과 화면해설 등을 제공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장애인 영화관람권을 극장의 시설과 기기 문제에만 맡기기보다 제작·배급·상영으로 이어지는 영화산업 전반에서 접근성 콘텐츠를 공급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장애인의 실질적인 영화 선택권을 확대하려면 극장 설비뿐 아니라 접근성 콘텐츠가 안정적으로 제작·공급돼야 한다"며 "제작 비용과 기술 표준 등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youm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