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키운 아버지완 달라"…AI로 경영능력 증명하는 K-패션 2세들
형지·한세·신원·영원무역, AI로 제조·디자인·공급망 혁신
1세대가 브랜드·생산기지 키웠다면 2세는 '기술 경영'으로 존재감
- 최소망 기자
(서울=뉴스1) 최소망 기자 = 국내 패션업계 2세 경영인들이 인공지능(AI)에 대한 감각 앞세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창업주 세대가 브랜드를 만들고 생산기지와 유통망을 넓히는 데 집중했다면 이들은 AI와 3D·로보틱스·스마트팩토리 등을 활용해 다음 성장 공식을 찾고 있다.
패션업계에서 AI가 디자인, 샘플 제작, 공급망 관리, 제조 자동화까지 파고들면서 2세들의 경영능력을 검증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는 평가다.
1일 업계에 따르면 패션·의류 제조기업 2세 경영인들은 최근 AI와 관련한 사업을 잇달아 강화하고 있다.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의 장남인 최준호 부회장은 2021년 까스텔바작 대표이사와 패션그룹형지 사장을 거쳐 2023년 그룹 총괄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2세 경영 전면에 섰다.
형지는 최 부회장 체제에서 AI 전환을 가장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평소 최 부회장이 AI 쪽에 관심이 많고, 데이터와 일부 디자인 영역에도 AI를 적용하고 있다고 형지 측 관계자는 전했다.
최근에는 제조 현장으로도 보폭을 넓혔다. 패션그룹형지는 30일 전북 고창군 흥덕면 일대 2000평 규모 자사 부지에 의류 봉제 로보틱스 실증 및 연구개발(R&D)센터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부드러운 원단을 다루는 봉제 자동화는 섬유·패션 제조업의 오랜 난제로 꼽혀왔는데, 창업인주 최 회장이 강조해 온 '패션은 첨단 산업'이라는 기조를 최 부회장이 AI와 로봇 등으로 구체화하는 상황이다.
김동녕 한세예스24홀딩스(016450) 회장의 차남인 김익환 한세실업 부회장은 2004년 한세실업에 입사한 뒤 2017년 대표이사 사장, 2020년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랐다. 김 부회장은 생성형 AI를 제조자개발생산(ODM) 경쟁력 강화에 접목하고 있다.
한세실업은 2019년 국내 업계 최초로 버추얼 디자인 조직을 꾸리고 3D 가상 샘플 기술을 도입해 연간 실물 샘플 제작 규모를 50만 장에서 30만 장으로 줄였다. 2023년부터는 R&D 조직 안에 AI 전담팀을 두고 생성형 AI를 의류 기획과 디자인 전반에 적용하고 있다. 내부에서는 AI가 부회장의 역점 사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AI는 바이어 제안 방식도 바꾸고 있다. 과거 실물 샘플 의류를 만들어 바이어에게 보냈다면 지금은 AI 모델이 한세가 만든 옷을 입고 특정 장소를 걷거나 생활 장면에 놓인 듯한 영상을 구현한다.
김 부회장은 최근 '웨어 더 퓨처' 기자간담회에서는 휴머노이드 시대를 겨냥한 로봇 의류를 선보이며 "사람이 입는 옷을 잘 만드는 기업이 휴머노이드 옷도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성철 신원(009270)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인 박정주 신원 대표는 2005년 신원 수출업무팀으로 입사해 해외 법인과 수출 부문을 거쳐 2016년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박 대표 체제의 신원은 공급망 투명성과 제조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신원의 인도네시아 꾸닝안 스마트팩토리는 친환경 건축 인증인 'LEED Gold'를 획득한 자동화 의류 생산 시설로, AI·빅데이터 기반 생산관리 시스템을 통해 공정 효율성과 생산 가시성을 높이고 있다.
신원은 AI 기반 분석 시스템과 블록체인 기반 공급망 추적 플랫폼 '리트레이스드'(Retraced)를 도입해 원자재부터 완제품까지 공급망 전 단계의 추적 가능성을 확보하고 있다. 3D 가상 샘플링과 예측 설계 도구를 활용해 자재 낭비를 줄이고 납기를 단축하는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성기학 영원무역(111770) 회장의 차녀인 성래은 영원무역그룹 부회장은 2016년 영원무역홀딩스 사장, 2020년 영원무역 사장을 거쳐 2022년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성 부회장은 회사 경영자이자 한국패션협회장으로서 패션 산업의 AI·DX 전환 담론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글로벌 OEM 사업 특성에 맞춰 바이어 제안력과 디자인 표현력을 높이는 실무형 접근에 가깝다. 영원무역은 최근 '모던 노마드'를 주제로 2028년 SS·FW 시즌 아웃도어 3D 컬렉션을 공개했다. 자체 생산 원단과 부자재를 활용한 21개 스타일을 3D로 구현했고, 올해부터는 3D 디자인 툴에 AI 비주얼 기술을 접목해 소재의 질감·실루엣 착용 시 움직임을 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업계에서는 이런 흐름을 단순한 기술 도입 경쟁으로만 보지 않는다. 2세 경영인들이 AI와 DX를 앞세우는 것은 변화하는 소비·생산 환경에 대응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경영 색깔을 입증하려는 시도로 본다.
업계 관계자는 "2세, 3세 경영인들은 해외 경험이 많고 글로벌 사업을 염두에 두고 있어 트렌드 변화에 더 민감한 편"이라며 "AI와 DX를 얼마나 빠르게 도입했느냐보다 이를 실제 수주와 생산성, 브랜드 경쟁력으로 연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somangcho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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