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균열, 전자적 빛…아모레퍼시픽 소장전 가보니 [르포]
백남준 '콘-티키', 이불 '비밀공유자' 등 40여 명 작가 90여 점 전시
8월 2일까지 진행…고미술 넘어 현대미술로 확장한 아모레퍼시픽의 수집
- 최소망 기자
(서울=뉴스1) 최소망 기자 =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090430) 본사에 위치한 미술관을 찾았다. 아모레퍼시픽의 다섯 번째 소장전인 '현대미술 소장품 특별전'(APMA, CHAPTER FIVE)이 진행 중이다.
미술관 로비에서 전시실이 있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가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공간은 제4전시실이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 가장 먼저 시선을 붙든 것은 멀리서 번져 나오는 전자적 빛이었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불리는 백남준 작가의 '콘-티키'(Kon-Tiki·1995)는 전시장 안에 놓인 작품이라기보다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는 설치작품처럼 다가왔다.
마치 거대한 배를 형상화한 듯한 비디오와 TV 모니터, 앤티크 TV 케이스, 오브제, 네온관, 나무 프레임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여러 화면의 빛은 서로 다른 속도로 깜빡이며 벽과 바닥으로 번졌고, 작품 앞으로 갈수록 관람객들의 움직임도 느려졌다. 지나치던 이들까지 하나둘 걸음을 멈추고 화면과 구조물을 번갈아 바라봤다.
TV 모니터 영상 속에는 거북선과 미켈란젤로의 배 등 배를 소재로 한 영상이 흐르고, TV 박스 안에는 국적과 문화를 초월한 인형과 불상, 흑백사진 등의 오브제가 배치돼 있었다. 백 작가는 이를 통해 동양과 서양, 과학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예술·기술·인간의 상호작용을 보여줬다.
같은 제4전시실의 또 다른 공간으로 들어서자 크리스털과 빛이 어우러진 눈부신 장면이 펼쳐졌다. 처음에는 반짝이며 아름답다고만 여겨졌던 작품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불편한 감각으로 바뀌었다. 애완견 형상의 동물이 입을 통해 몸 밖으로 파편을 쏟아내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 작품은 1980년대부터 실험적 작업을 이어온 이불 작가의 '비밀공유자'다. 작가는 이를 통해 자신과 반려견 사이의 추억과 교감을 표현했다.
제1전시실 한가운데에는 병풍을 연상시키는 대형 작품이 자리하고 있었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카브리해의 티타임'(1987)은 색채 석판화에 아크릴과 종이를 더해 콜라주한 작품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인 호크니는 회화와 드로잉, 사진, 판화, 무대디자인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어 왔다. 석판인쇄로 제작된 병풍 형태는 오페라 무대디자인을 떠올리게 했고, 강렬한 이미지와 색채는 긴 여운을 남겼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었던 작품은 알바로 배링턴의 '하늘은 한계가 없다'(2023)였다. 카리브해 지역과 뉴욕을 오가며 성장한 배링턴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문화와 역사, 정체성이 교차하는 지점을 회화로 탐구해 왔다.
회화 중심의 작업을 하면서도 삼베, 바느질, 직물, 기성 오브제 등 비전통적 재료와 기법을 적극 활용해 이미지가 형성되는 조건을 확장해 왔다. 작품에는 하늘을 연상시키는 색조 위로 "Sky's the Limit"라는 문구가 교차하며 회화적 긴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회화뿐 아니라 조각과 사진 작품도 다수 전시돼 있었다. 조각 작품 가운데서는 산업 재료를 활용해 조각의 구조와 물질성을 확장해 온 캐럴 보브의 '침엽수림 프리즘'(2025)이 눈에 띄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나 현재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캐럴 보브는 산업 재료의 조형적 재해석에 집중해 온 작가다. 물질 자체뿐 아니라 물리적 성질과 문화적 의미를 함께 탐구해 왔으며, 이날 전시된 조형물 역시 점토처럼 보이지만 금속을 활용해 부드러운 곡선과 유영하는 형태의 프리즘을 만들어냈다.
이 밖에도 20여 년 만에 미술관에서 처음 공개되는 백남준의 대규모 작품 '절정의 꽃동산'(TV Vertical Flower), 베를린과 서울을 기반으로 개념적 설치 작업을 이어온 양혜규의 신작 '겹쳐진 모서리-환기하는 주황과 파랑의 사각형'도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았다.
생명과 죽음·여성성·신화와 자연의 관계를 탐구해 온 키키 스미스, 일상의 이미지를 통해 회화의 언어를 새롭게 구성하는 영국 작가 로즈 와일리, 인간 중심의 역사 서술을 넘어 사물과 장소에 축적된 시간의 층위를 탐구하는 갈라 포라스-김, 이우환 등 40여 명 작가의 90여 점 작품이 전시 중이다.
손유경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는 지역과 세계,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지점을 입체적으로 드러내며,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표현을 통해 새로운 연결과 해석을 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서성환 회장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1979년 태평양박물관으로 출발했으며, 2009년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으로 명칭을 바꿨다. 2018년 서울 용산 신본사에 새롭게 문을 연 뒤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전시와 연구, 출판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somangcho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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