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쩔수가없다' 그 맥주, 이 수도원에서 만든 거다
전세계 10여 곳 수도원만 인증받은 트라피스트 에일(ATP)
노동·자급자족 삶 가치를 브랜드에 담아…영화 속 미장센에 활용
- 박혜연 기자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지난 9월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미국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예비후보에 오른 가운데 영화 속에 등장한 네덜란드산 맥주 '라트라페'(La Trappe)가 눈길을 끈다.
25일 라트라페 공식 수입사 윈비어에 따르면 영화 속에서 배우 이병헌(유만수 역)이 박희순(최선출 역)을 염탐한 뒤 들른 펍에서 사과주스를 마시는 장면 배경으로 라트라페가 등장한다.
라트라페는 수도원에서 만들었다는 '트라피스트 에일' 인증을 받았다는 ATP 로고가 붙어 있다.
트라피스트 맥주는 국제 트라피스트 협회(ITA)가 부여하는 인증으로 수도사가 직접 양조하거나 수도사의 관리·감독을 받아야 하고 그 수익금은 수도원 운영과 자선활동에 쓰여야 한다는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전통과 품질이 보증된 수도원 10여 곳만 ATP 인증을 받았다.
라트라페는 1884년부터 네덜란드 남부 틸부르흐 외곽에 있는 코닝슈벤(Koningshoeven) 시토회 수도원에서 생산하기 시작한 맥주다. 당시 수도사들은 자급자족을 위해 농작물을 경작하거나 양을 키웠지만 척박한 토양 탓에 쉽지 않자 맥주를 생산하며 수도원을 운영했다.
시토회 모토는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다. 수도사들은 매일 새벽 4시 30분 기도로 시작하는 일과 속에서 8시간의 노동과 8시간의 기도, 8시간의 휴식 루틴을 지킨다. 자급자족을 통한 공동체 수호와 사색적인 삶은 140여년간 라트라페 맥주 브랜드가 지켜온 가치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제작진이 배경 소품으로 라트라페를 찾은 이유도 이같은 브랜드에 담긴 노동과 자급자족, 장인 정신을 높게 샀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은 평소 벨기에 맥주 애호가로 알려지기도 했고, 특히 영화의 미장센을 위해 미술과 디테일한 소품에 신경을 많이 기울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 속에서 라트라페 맥주는 당초 배우 박희순이 자신의 팀원들과 맥주를 마시는 장면에 포함될 예정이었으나 이후 편집 과정에서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다른 장면에서 짧게나마 등장하는 식으로 영화의 한 귀퉁이를 차지했다.
라트라페는 1999년 한때 트라피스트 인증을 박탈당한 사연이 있다. 수도사 고령화로 인해 현실적으로 양조에 직접 참여하기 어려워지면서 수도원이 네덜란드의 유서 깊은 맥주 양조기업 바바리아 브루어리에 양조 기술을 넘기자 ITA가 인증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본 것이다.
다만 수년 후 수도사들이 맥주 양조 관리·감독에 다시 참여하고 ITA가 제시한 기준을 충족하면서 라트라페 맥주는 2005년부터 ATP 인증을 되찾았다.
윈비어는 2023년부터 지금까지 라트라페 맥주를 국내에 한정 수량으로 공식 수입해 왔다. 라트라페 맥주는 △밝은 금색에 가볍고 상쾌한 위트 △달콤한 과일과 향신료의 스파이스 풍미가 더해진 듀블 △은은한 꽃향과 달큰한 복숭아 향이 더해진 트리펠 △브랜드에서 가장 높은 도수(10%)에 견과류, 대추 향이 나는 강렬한 쿼드루펠 등 크게 4종이 있다.
라트라페 750mL병은 코르크 마개로 마감돼 맥주가 병입된 후 내부에서 재발효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 때문에 다른 맥주에 비해 탄산이 더 부드럽고 깊은 풍미를 자랑한다.
이 밖에 라트라페 오크에이지드와 쓰리룰즈, 블론드 등 1년에 한 번만 생산되는 한정판 제품도 있다. 윈비어는 25일까지 신세계백화점 각 지점에서 라트라페 맥주를 전용 잔과 함께 판매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윈비어 관계자는 "라트라페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품이 아니다 보니 수도사들의 기도와 사색의 시간이 그 안에 녹아 있다"며 "가격 대비 품질도 좋은 만큼 우리나라 시장에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hy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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