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유통 결산]② 쿠팡, 3370만 명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허술한 보안 체계에 안일한 대응…리더십은 부재
쿠팡 산업재해 등 노동 문제로 확산…시민도 나섰다
- 윤수희 기자
(서울=뉴스1) 윤수희 기자 = 11월 29일 토요일 오후. 국내 최대 유통기업 쿠팡은 3370만 명의 고객 계정이 무단 유출됐다는 공지로 대한민국을 놀라게 했다.
당시 쿠팡은 유출 대상에 이름과 이메일 주소, 배송지 주소록, 주문정보가 포함됐을 뿐, 결제정보, 신용카드 번호, 로그인 정보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알렸으나 불안함을 해소하지 못했다.
오히려 한 달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전국민적인 분노와 우려, 불신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쿠팡에서 탈퇴하는 이른바 '탈팡' 릴레이에 불매운동, 집단 소송까지 벌어지는 중이다.
관계당국의 조사 및 국회 현안질의, 청문회 등의 과정을 통해 밝혀진 바로는, 유출의 장본인으로 알려진 중국인 퇴사자의 쿠팡 재직 당시 신분은 인증 업무 개발자였다. 그는 서명 키를 빼돌려 퇴사한 뒤 지속해서 고객 정보를 유출해 왔다.
해당 직원의 퇴사 시점이 지난해 말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가 업무상 접근 권한을 남용, 로그인이 가능한 서명 키를 복사하고 무려 3370만 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하기까지 과정을 쿠팡이 1년 가까이 몰랐던 셈이다.
게다가 쿠팡 측이 이 사실을 안 건 퇴사자가 쿠팡 측에 '협박' 메일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쿠팡은 11월 19일이 돼서야 문제가 된 서명 키를 폐기했는데, 만일 퇴사자가 유출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면 더 큰 피해를 낳았을 수도 있다.
비밀번호만 넣으면 되는 단순한 로그인 방식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얼굴·지문 등 생체인식이나 핀(PIN) 등을 활용하는 인증 방식인 '패스키'를 도입하지 않고 비밀번호만 활용하면서 보안이 허술했다는 지적이다.
사후 대응 역시 국내에서 한 해에 41조 원(지난해 기준)을 벌어들인 회사라 보기엔 안일하고 무책임했다.
쿠팡은 유출 사실을 인지한 초반 시점인 11월 18일 피해 규모를 4500명으로 파악하고 관계당국에 신고했다. 그러나 추후 조사를 거쳐 밝혀진 실제 피해 규모는 3370만 명으로 늘었다. 7500배가량 차이가 나는 수치로 사실상 거의 모든 회원의 정보가 빠져나간 것이다.
또한 첫 공지문과 사과문에 개인정보 '유출'이 아닌 '노출'이라는 표현을 쓰고, 정작 사과문마저 며칠 지나지 않아 홈페이지에서 내리는 등 사안을 축소하기에 급급했다는 지적까지 받았다.
사태가 확산되는 중에도, 쿠팡의 창업자이자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김범석 쿠팡 Inc.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사과조차 없어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사태의 책임을 지고 박대준 전 대표는 사임했고 쿠팡은 김 의장의 '복심'이라 꼽히는 해롤드 로저스 미국 쿠팡 Inc. 최고관리책임자 겸 법무총괄(CAO & General Counsel)을 신임 대표로 선임했다.
그러나 로저스 대표는 최근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쿠팡을 둘러싼 여러 의혹을 속 시원하게 해명하지 못하고 김 의장을 감싸는 태도로 다시 한번 공분을 샀다. 국회는 청문회에 불출석한 김 의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제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쿠팡을 둘러싼 산업재해·과로사 등의 이슈로까지 확산하며 쿠팡을 향한 전방위적인 압박이 시작되는 모양새다.
이재명 대통령은 택배 노동자의 과로 문제를 지적하는 한편, 개인정보 유출을 두고 경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쿠팡 사태에 대응하는 '범부처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영업정지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와 정무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등 4개 상임위 연석 청문회를 추진할 방침이다.
시민들도 나섰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지난 17일 쿠팡 탈퇴 소비자행동 발대식을 열어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쿠팡의 산재 은폐 사례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김 의장 처벌을 촉구했다.
사면초가에 빠진 쿠팡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1일 방송에 나와 "영업정지 처분"을 언급했고, 국토교통부에서 쿠팡의 택배운송사업자 인허가권을 박탈할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이 경우 쿠팡의 '로켓배송'은 유명무실해지면서 영업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국내는 물론 미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되는 소송 역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국내 다수의 로펌에서 쿠팡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거나 참여자를 모집하고 있으며, 미국 본사 쿠팡 Inc.의 한 주주는 쿠팡 법인과 김 의장 등에 대해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의 현실화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린다. 정다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대통령이 직접 과징금 강화와 징벌적 손해배상 현실화를 주문한만큼 배상 책임 규모가 과거보다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ys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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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올해 유통업계는 격변의 시기를 맞았다. 'K-푸드'와 'K-뷰티'의 글로벌 인기 속에서 세계 시장 확장에 속도를 냈지만, 홈플러스와 1세대 e커머스가 몰락하는 등 업종 간 대비점을 보였다.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배달앱 역시 수수료를 둘러싼 문제가 1년 내내 계속됐다. 식품업계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대내외적 악재에 원가 상승까지 더해져 가격 인상 압박이 심했고, 외식 물가 역시 최고치를 기록해 소비자 부담이 가중된 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