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물가 안정, 시장에 맡겨야 한다

원자재·환율·물류비가 흔드는 물가, 담합만 막되 시장에 맡겨야
물가 억제 한계 뚜렷…정부 몫은 원자재 수급 안정과 세제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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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배지윤 기자 = 정부가 생활 물가 안정을 위해 라면·빵·커피 등 국민 체감도가 큰 품목의 가격을 촘촘히 들여다보고 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최근 한국식품산업협회와 면담 자리에서 업계에 가격 안정 노력을 당부했다.

검찰도 움직였다. 최근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 등 주요 제당업체 본사를 압수수색하며 설탕 가격 담합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 설탕은 빵·음료·가공식품 전반에 쓰이는 핵심 원재료다. 담합 여부는 철저히 규명돼야 하고 불법이 확인된다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모든 가격 문제를 담합이나 기업의 과도한 이익 추구로만 몰아가는 건 단순한 접근이다. 식품 가격은 국제 원자재 시세와 환율 및 물류비·인건비 등 복합적인 요인이 얽혀 형성된다. 원유·밀·설탕 가격은 글로벌 경기와 기후에 따라 출렁이고 환율 변동은 수입 원가를 순식간에 끌어올린다. 기업 입장에서 가격 조정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박진선 한국식품산업협회 회장도 최근 간담회에서 "원자재와 인건비가 오르고 다른 비용도 올라가는데 기업들이 적자를 보면서 운영할 수는 없다"며 "가격 규제를 지난 정부에서 엄청나게 했는데 이번 정부는 좀 안 그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인위적인 억제만으로는 장기적 물가 안정 효과를 담보하기 어렵다. 기업이 끝내 버티지 못하면 다른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제품 용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추는 방식이다. 실제로 최근 치킨업계에서는 원가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한 마리 중량을 축소하거나 국산 닭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브라질·태국산 냉동 닭을 사용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의 물가 안정 노력이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가격 통제보다는 원자재 수급 안정과 세제 지원 등 구조적인 대책이 병행해야 한다. 담합은 단호히 막되 정상적인 가격 결정은 시장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물가는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이다. 그렇기에 더욱 시장 원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가격은 시장이 정하는 값이라는 단순한 원칙을 잊어서는 안 된다.

jiyounba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