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 10대 뉴스]⑩남양유업 '불가리스 사태'…"소비자는 무섭다"

여론 악화·식약처 행정처분·경찰 압색에 오너 일가 '백기'
한앤컴퍼니와 지분 매각 법적 분쟁…대유위니아 품으로

편집자주 ..."10년간 일어날 변화가 1년으로 축약됐다."
최근에 만난 유통업계 최고경영자(CEO)는 올해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신세계는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했고 쿠팡은 미국 증시 상장에 성공했습니다. GS리테일은 GS홈쇼핑과 합병한데 이어 요기요까지 인수했고 국내 최대 이커머스 업체로 성장한 네이버는 2위와 격차를 더 벌리고 있습니다. 올해 유통가를 뜨겁게 달궜던 10대 뉴스를 정리해 봤습니다.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 모습. 2021.5.9/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불가리스 논란으로 촉발된 남양유업을 둘러싼 후폭풍은 올 한 해 유통업계를 휩쓸었다. 57년 역사의 국내 대표 유업체가 경영권 매각 수순에 나섰지만 갖은 잡음 끝에 결렬되며 결국 법적 분쟁으로 번졌다.

2013년 '대리점 갑질 사태', 지난해 '경쟁사 비방 논란'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오너는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집중 포화를 맞아야 했다.

연이은 사과와 경영권 재매각에 대한 약속에도 한번 돌아선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다. 남양유업이 신뢰를 회복하고 유업계 발전에 일조하는 기업으로 재도약 하기 위해서는 오너 일가의 지분과 경영권 매각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불가리스, 코로나 억제 효과 있다" 발표 후폭풍…오너 일가 물러나

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사태의 시작은 지난 4월 1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양유업은 '코로나시대의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에서 자사의 발효유 '불가리스'에 코로나19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해당 발표는 최종 단계인 임상실험을 거치지 않고 '세포단계' 실험 결과만을 과장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남양유업은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것과 동시에 식품의약품안전처 행정처분과 고발, 경찰의 본사 압수수색 등 '삼중고'를 겪었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불가리스 사태'와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전 인사하고 있다. 홍 회장은 이날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통해 사임 의사를 밝혔다. 2021.5.4/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소비자 여론은 싸늘했고 불매운동으로 번졌다. 사태가 악화되자 5월 3일 이광범 대표가 사의를 표명했다. 곧장 다음날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통해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히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홍 회장은 경영권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도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한 남양유업은 홍 회장에게 소유·경영을 분리하는 지배구조 개선을 요청했다. 이어 같은달 27일 홍 회장과 아내 이운경씨, 손자 홍승의씨가 보유한 보통주식 37만8938주(52.63%)를 국내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한앤컴퍼니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동시에 남양유업은 온라인에 악성 비방을 게재해 피해를 준 매일유업에 사과문을 전달하는 등 이미지 쇄신을 꾀했다. 매일유업도 이를 받아들여 고소를 취하했다.

◇매각 시작부터 파열음…남양유업-한앤컴퍼니 '맞소송전'

오너일가의 경영권 매각 결정에 사태는 일단락 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매각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남양유업이 7월 30일로 예고됐던 임시주주총회를 돌연 연기하면서다. 남양유업은 임시주총에서 신규이사 선임과 정관 변경 등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남양유업 측은 "기존 주주와 한앤컴퍼니 측의 주식매매계약 종결을 위한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며 "처리 예정이었던 안건은 9월 주총에서 다시 다뤄질 것"이라고 명확한 사유를 밝히지 않고 일방적으로 미뤘다. 거래 상대방인 한앤컴퍼니와의 사전 협의도 없어 논란을 키웠다.

한앤컴퍼니는 "경영권 이전 안건을 상정조차 하지 않고 현 대주주인 매도인의 일방적인 의지에 의해 (주주총회가) 6주간 연기됐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어 지난 8월 30일 홍 전 회장을 상대로 거래종결 의무의 조속한 이행을 촉구하는 소송을 냈다.

홍 전 회장 측은 이에 맞서 "매각 결렬, 갈등, 노쇼(NO-SHOW)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한 데 더해, 9월 1일 한앤컴퍼니를 상대로 주식매매계약 해제를 통보했다.

이어 같은달 23일에는 한앤컴퍼니를 상대로 약 310억원 규모의 위약벌 및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계약 해제에 책임이 있는 당사자가 손해배상 책임을 지기로 한 본계약 규정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한앤컴퍼니 역시 법적 대응을 통해 반격에 나섰다. 10월 29일 남양유업 임시주총을 앞두고 서울중앙지법에 홍 전 회장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의결권행사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를 인용했다. 이에 따라 임시주총을 통해 새로운 경영진을 선임하려던 계획이 사실상 무산됐다.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 모습. 2021.5.28/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대주주 측, '법적 분쟁 해소' 전제 대유위니아에 지분·경영권 양도

이후 홍 회장 등 남양유업 대주주 측이 한앤컴퍼니와 소송에서 승리할 경우 지분과 경영권을 대유위니아에 넘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재매각에 대한 의지를 보이는 것과 동시에 돌아선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홍 회장 측은 대유위니아와 경영권 이전 조건부 MOU를 체결하면서 법적 분쟁이 종국적으로 해소되는 경우 대유위니아그룹에 주식을 양도하고 남양유업의 경영권을 이전하기로 하는 약속을 포함시켰다.

다만 한앤코와 법적 분쟁에서 홍 회장이 최종 패소할 경우 홍 회장 일가의 주식은 한앤코에 양도 될 것으로 예상된다. 홍 회장으로서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는 최악의 상황에 놓이는 시나리오다.

남양유업은 김승언 경영혁신위원장을 경영지배인으로 선임한 뒤 회사 내부를 안정시키는 데 주력 중이다. 지난 11월 초 대표 제품인 '맛있는우유GT'의 패키지 디자인을 새단장한 것을 시작으로, 그간 밀려 있던 신제품 출시와 기존 제품 리뉴얼을 본격화하고 있다.

경영권 매각, 법적 분쟁과 별도로 57년 역사의 남양유업을 이어가고 임직원과 낙농업의 안위와 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에서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경영지배인 체제하에서 직원 출신 경영지배인과 다른 임직원들이 열과 성을 다해서 본업에 충실하고 있다"며 "여러 가지 이슈가 있었지만 이번 일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현재는 경영 정상화를 위해 발빠르게 노력하고 있고 안정을 찾아 가는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루한 법적공방이 불가피한 상황인 만큼 남양유업의 매각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재계에서는 남양유업 사태를 두고 '소비자 신뢰'를 잃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까지도 기업 이미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특히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생각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지적도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지루한 법적공방은 더 큰 피로감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며 "남양유업이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빠른 매각으로 '오너 리스크'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mau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