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 바뀌는 유통가, 2020년 주목할 5가지 트렌드는?

[터닝포인트]유통공룡 '롯데'의 온라인 실험 성공할까…배송전쟁 어디까지?
초저가·뉴트로 열풍 더 거세질 듯

편집자주 ...'사실 앞에 겸손한 정통 민영 뉴스통신' 뉴스1이 뉴욕타임스(NYT)와 함께 펴내는 '뉴욕타임스 터닝 포인트 2020'이 발간됐다. '터닝 포인트'는 전 세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별 '전환점'을 짚어 독자 스스로 미래를 판단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지침서다. 올해의 주제는 '도전의 시대 새로운 희망: 시험대 오른 민주주의'이다. 격변하고 있는 전 세계 질서 속에서 어떤 가치가 중심이 될 것인지를 가늠하고 준비하는데 '터닝 포인트'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서울시내 한 다이소 매장. 2017.8.2/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정혜민 배지윤 기자 = 2019년은 유통업계에 그 어느 해보다 각박했던 한 해였다. 불경기로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는데도 쇼핑의 중심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가는 '전환기'를 맞으면서 시장을 점령하기 위한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오프라인 대형마트들은 온라인 쇼핑몰과도 가격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 결과 2019년 2분기 이마트는 분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내며 업계에 충격을 안겼다. 치열한 경쟁 속에 실적이 부진하기는 온라인 쇼핑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불황형 소비'의 상징격인 다이소만 웃을 수 있었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가 발간하는 유통 전문지 리테일매거진이 유통업계 종사자 275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74%가 2020년 소매시장의 성장률을 2~3%대로 점쳤다. 21%는 0~1% 성장을 내다봤다. 전반적으로 소매 경기가 회복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2020년에는 유통 패러다임 변화가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2019년 유통 산업을 결산하고 새해 주목해야 할 5가지 트렌드를 정리했다.

ⓒ 뉴스1

1. 롯데의 전진, 쿠팡의 후퇴?…온라인 유통업계 지각변동 예고

2019년 유통업계의 화두는 단연 '온라인 장보기몰'이었다. '아마존마저 실패했다'고 알려진 온라인 장보기몰 시장에서 마켓컬리, SSG닷컴, 쿠팡, 기타 스타트업 등 국내 유통기업들은 성과를 냈다. 그만큼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이 고도화 한 것이다.

신선식품 시장은 온라인화의 마지막 단계로 여겨진다. '신선함'이 관건인 신선식품은 주기적으로 장을 봐야 하기 때문에 고객 유입 효과가 크다. 유통업체들이 너무나도 탐내는 시장이지만 신선식품에 대한 고객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는 서비스 수준이 높아야 한다.

많은 국내 이커머스 기업들이 매우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중국 알리바바나 미국 아마존처럼 확실한 승기를 잡은 사업자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은 앞으로도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오늘 지배적으로 보였던 사업자가 내일 사라져 있을 지도 모른다.

2020년은 온라인 유통시장 격변의 해가 될 전망이다. 국내 1위 유통기업 롯데가 이커머스 사업을 본격적으로 가동한다. 그간 유통 대기업들은 이커머스 사업에 소극적이었다. 2019년에서야 신세계그룹이 이마트와 신세계의 온라인 사업을 물적 분할해 통합한 신설법인 '에스에스지닷컴'(SSG닷컴)을 출범시켰다.

롯데에서는 2020년 상반기 중 백화점, 마트, 슈퍼, 홈쇼핑, 하이마트, 롭스, 롯데닷컴 등 7개 유통계열사의 온라인몰을 통합한 애플리케이션 '롯데ON'을 선보일 예정이다. 현재 롯데ON은 롯데 7개 유통계열사 온라인몰의 로그인만 통합한 상태다.

국내 이커머스 공룡으로 거듭난 쿠팡은 새해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동안 쿠팡에 자금을 지원했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해서다. 소프트뱅크는 위워크 투자 실패로 14년 만에 반기 손실을 기록했다. 쿠팡의 경우 대규모 투자로 인해 적자가 지속되고 있어 자금지원이 끊긴다면 큰 어려움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간 쿠팡은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적자를 감수하면서 저렴한 가격, 차별화된 서비스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했다. 하지만 이제 쿠팡도 수익성을 개선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수익성 개선은 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유통을 잘하는 롯데가 진입하니 주목하긴 하지만 이미 쟁쟁한 사업자들이 경쟁하는 온라인 유통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낼지는 의문"이라며 "쿠팡도 수익성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네오002 센터 내부 ⓒ 뉴스1(SSG닷컴 제공)

2. 배송 전쟁 "계속? 더 거세진다"

온라인 유통업체들은 특히 소비자와의 유일한 접점인 배송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빠르고 정확하고 친절한 배송이 고객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2020년 롯데의 온라인 유통시장 본격 진출로 배송 전쟁은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우선 이베이코리아가 2019년 10월 경기도 동탄에 대규모 물류센터를 준공하고 가동에 들어갔다. 쿠팡과 비슷한 방식으로 직매입을 통해 배송 품질과 속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국내 이커머스 기업 중 유일하게 전국에 대규모 물류시설을 이미 확보한 쿠팡은 대구에 초대형 물류센터를 짓는다. 늘어나는 배송량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SSG닷컴은 2019년 12월 경기도 김포에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네오 003을 열었다. 롯데는 물류 계열사 롯데글로벌로지스가 2022년 준공을 목표로 충북 진천에 택배 메가허브터미널을 건설 중이다. 2019년 롯데슈퍼에서는 300~400평짜리 소규모 도심 온라인 물류센터를 8곳 지었다. 2020년에도 꾸준히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새벽배송 경쟁도 지속할 전망이다. 새벽배송 시장을 개척한 마켓컬리는 서울 장지에 이어 경기도 남양주와 김포에 물류 센터를 확보하고 배송 권역과 물량을 확충하고 있다.

SSG닷컴은 2025년까지 온라인 물류센터를 수도권 6곳, 지역권 5곳에 짓고 새벽배송 권역을 넓혀나갈 방침이다. 새벽배송과 더불어 업계에서 유일하게 야간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롯데도 지속적으로 권역을 넓히고 있다.

3. '국경' 사라지는 쇼핑

방탄소년단(BTS) 등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산 제품에 대해 호감을 느끼는 외국인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기초화장품, K뷰티는 한국을 대표하는 수출 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2019년에는 세계 각국의 온라인 쇼핑몰들이 한국 브랜드 모시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미 해외의 품질 좋고 저렴한 물건을 국내에서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직구'는 보편화한 상태였다. 2019년부터 '역(逆)직구' 시장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해외에 법인을 설립하거나 중간에 무역업체를 끼지 않아도 한국 사무실에서 전 세계에 나의 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으로 온라인 쇼핑의 국경은 점점 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아마존은 한국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 시장에 내다 팔 한국의 좋은 제품을 발굴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 중국 알리바바도 국내에서 각종 행사를 개최하며 국내 브랜드를 발굴하고 있다. 동대문에 가면 한국의 옷을 실시간으로 판매하는 왕훙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1~3분기 해외 직접 판매액(면세점 제외)은 533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 증가했다. 다만 국내 사업체만을 조사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아마존, 알리바바 등 해외 쇼핑몰의 수치를 합친다면 역직구 시장 규모는 엄청나게 성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4. 경제 불황에 유통가에 부는 '초저가' 바람

새해에는 '초저가' 바람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경제 불황으로 잔뜩 움츠러든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다. KDI(한국개발연구원)도 2019년 10월 경제동향보고서에서 경제 상황에 대해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경기 침체가 지속되며 소비 심리가 얼어붙자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알뜰족’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알뜰족을 잡기 위한 초저가 경쟁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마트의 상시적 초저가 행사인 ‘에브리데이 국민가격’이 대표적이다. 이마트는 수입물량 선 확보, 대량 매입 등으로 유통 원가를 절감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불경기로 소비심리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온라인 채널로 소비자들이 돌아서자 초저가 전략을 내세운 것이다.

위기에 빠진 대형마트들도 이마트의 뒤를 이어 초저가 경쟁에 합류했다. 이마트를 비롯해 롯데마트는 지난해 11월 '10년 전 가격‘을 테마로 삼겹살 등 인기 품목을 파격적인 가격에 선보이며 소비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홈플러스도 '가격 그 이상의 파격'이라는 주제로 할인행사를 진행하며 소비자들의 발길을 돌려세웠다.

초저가 제품의 원조격인 다이소도 눈에 띈다. ‘불황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다이소는 1000~5000원대 사이의 가격으로 판매되는 가성비 좋은 상품을 내놓으며 발 빠르게 성장했다. 그 결과 1997년 5개 매장으로 시작한 다이소는 2018년 기준 1300개까지 매장 수를 늘리며 ‘매출 2조 클럽’ 가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속되는 불황에 패션가에서도 저렴한 가격대의 상품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제조 유통을 직접하고 중간 유통 과정을 생략해 재고부담을 던 SPA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국내 패션 업체들의 장기 침체에도 저렴한 가격을 표방하는 이랜드 스파오와 신상통상의 탑텐 등 토종 SPA 브랜드는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유통가에 오프라인 채널 중심의 초저가 경쟁이 지속되는 이유는 매출 상승은 물론 집객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오프라인 채널이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며 시장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온라인 채널에 빼앗긴 파이를 되찾기 위한 것으로 2020년에도 이런 트렌드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민아가 착용한 노스페이스 '1996 레트로 눕시 다운 재킷'.ⓒ 뉴스1

5. 패션도 식음료도, 흥행 보증 수표 '뉴트로' 입었다

심리학에 ‘회고 절정’이라는 용어가 있다. 여기엔 즐거웠던 어린 시절 향수 속에서 현실을 위안 받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불경기가 한창인 요즘 복고 트렌드가 다시금 빛을 발하고 있는 것도 “옛것이 좋았다”며 과거로 회귀하려고 하려는 대중들의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불경기가 지속되자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1990년대 후반 출생) 사이에서 '뉴트로'(신복고주의) 열풍이 한창이다. 이미 우리 생활 곳곳에 뉴트로 트렌드가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복고 감성 물씬 풍기는 패션과 식음료가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유통가 트렌드로 자리매김 했다.

이런 트렌드를 가장 잘 활용한 대표적인 브랜드가 ‘휠라’이다. 휠라는 과거 인기를 끌던 투박한 모양의 운동화인 ‘어글리 슈즈’를 선보이며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실제로 디스럽터2, 휠라레이 등 휠라의 인기 어글리슈즈는 전 세계적으로 1000만족 이상 판매된 것으로 추정되면서 올 한해 패션가를 점령했다.

뉴트로 열풍에 과거 ‘근육맨 패딩’ '신호등 패딩' 등으로 불리며 인기를 끈 노스페이스의 숏패딩 눕시도 재조명받고 있다. 볼륨감을 살리고, 퍼플, 페일 핑크, 카키 등의 색상을 입혀 뉴트로 느낌을 한껏 강조했다. 네파, 내셔널지오그래픽도 등 아웃도어 업체들도 형형색색의 패딩을 선보이며 뉴트로 대열에 합류했다.

식음료 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하이트진로가 하늘색 투명한 병 뉴트로 감성을 입혀 선보인 ‘진로이즈백’은 애주가들을 사로잡으며 출시 72일 만에 1000만병을 달성했다. 2019년 판매 목표치를 일찌감치 달성한 셈이다. 일화도 '레트로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1995년 맥콜의 전성기 시절의 캔 디자인을 구현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뉴트로 감성을 입힌 제품은 밀레니얼 세대와 중장년층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어 흥행 보증 수표로 꼽힌다”며 “유통가가 과거 인기 제품을 리뉴얼하거나 복고 감성을 더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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