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집중근무제, PC셧다운제…신세계 주35시간 근무제 비법
'일과 삶의 균형' 중시, 그룹 전략실에 2년 전부터 TF 운영
실무진이 최고위층에 건의, 업무효율성 위해 시뮬레이션 반복
- 류정민 기자
(서울=뉴스1) 류정민 기자 = 이마트 소싱전략운영팀의 홍모 과장(36)은 신세계그룹의 35시간 근무제 덕분에 아내와 5개월 된 딸에게 '만점' 아빠로 거듭나고 있다.
홍 과장은 "딸을 육아 휴직 중인 아내 혼자 돌보고 있었는데 5시에 퇴근이 가능해지면서 저녁 6시면 육아를 도울 수 있게 됐다"며 "부인이 더 제도를 반기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마트 영등포점에서 가공식품 파트를 담당하고 있는 김모 과장은 건강에 한층 더 시간을 투자할 수 있게 되면서 주변에서 '얼굴이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김 과장은 "올해부터 5시에 정시 퇴근을 하면서 일주일 1~2회에서 이용하던 헬스장을 이제는 거의 매일 이용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법정 근로시간을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지난달 말 국회를 통과하면서 근로시간 단축이 경제계 화두가 되고 있다.
신세계는 선제적으로 주 35시간 근무제를 연초부터 실행에 옮기고 있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타 기업보다 한발 앞서 근로시간 단축을 도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집중근무시간제도, PC셧다운제 등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준비한 각종 신규 제도가 있다.
◇변화하는 직장문화…이마트 야근비율 32%에서 0.3%로 감소
올해부터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신세계 직장문화가 빠르게 변화화고 있다.
2일 이마트는 오후 5시30분 PC셧다운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야근 문화가 사실상 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마트의 서울 성수동 본사 출입구 사원증 출입체크 현황을 살펴보면 오후 6시30분 이후 퇴근자가 지난해 12월에는 본사 전체 인원의 32% 수준이었던 반면, 올 1월 들어서는 0.3%(5명)으로 감소했다.
오후 5시에서 5시10분에 퇴근자가 몰리면서 직원 주차장 출구에 차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풍경도 자주 벌어진다. 사내 어린이집 퇴소 시간도 지난해 12월까지는 정원의 20%가 오후 7시까지 남아있었지만 35시간제 도입 이후에는 5시30분에서 6시에 전원 퇴소하고 있다.
직원식당 이용자 숫자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점심시간(11시30분~12시30분)을 철저히 엄수하자는 캠페인에 따라 회사 밖에서 식사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줄었다. 지난 1월 본사 직원식당 이용자 숫자는 2017년 12월 대비 22% 증가했다.
본사 내 휴게실 카페 이용객 숫자도 감소했다. 근무 시간 중에 수시로 이뤄졌던 티타임이 감소하면서 휴게실 카페 판매랑은 2017년 12월 일 평균 304잔에서 2018년 1월 일 평규 218잔으로 28% 줄었다. 지난달 17일부터는 효율적으로 근무시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직원식당의 '테이크아웃' 도시락 서비스도 시작했다.
◇분석 또 분석…해답은 '생산성 향상
신세계가 주 35시간제 도입을 본격적으로 준비한 시점은 2년 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세계는 2015년 12월 서울 회현동 소재 신세계그룹 전략실 산하에 임원급 팀장을 비롯한 10여 명으로 구성된 '근무제도혁신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35시간 근무제를 준비했다.
TF는 2년 여간 해외국가별 현황 스터디, 근무시간 단축폭의 적정성, 근무시간과 연계된 매장영업시간, 매출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반복했다.
신세계는 이 과정을 통해 근로시간 단축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이 필연적이란 결론을 얻었다. 이에 따라 주35시간 근무제 도입과 동시에 관련 제도 보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예를 들어 이마트는 오후 5시 정시퇴근을 위해 오후 5시30분 PC 셧다운제를 실시하고 있다. 사전에 담당임원 결재 없이는 PC가 재부팅되지 않는다.
업무 효율성 강화를 위해 오전 10시부터 11시30분,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를 집중근무시간으로 정하고 있다. 이 시간에는 흡연실이 폐쇄되고 회의도 금지된다.
이마트는 보고 및 유관부서간 협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전임원 일정이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공유되는 '임원 스케줄 프로그램'도 개발해 1월 15일부터 시행 중이다. 결제를 받으러 갔다가 허탕을 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매장 현장에서는 상품이 점포로 입고되는 단계에서 상품분류를 담당하는 검품 파트 직원들의 업무생산성 향상을 위해 '카테고리 배송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물류센터에서 기존 3~4가지로 분류하던 상품 카테고리를 7~8가지로 확대해 점포 사원들의 상품 분류 시간을 절반 정도로 줄였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100건까지 묶어서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고, 협력업체 수수료율, 계약기간 등 반드시 확인해야 할 계약정보를 하나의 표로 보여주는 시스템을 추가한 EDI(Electronic Document Interface) 전자 문서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편했다.
이를 이용하면서 3주 안팎으로 꼬박 야근해야 처리가 가능했던 10만여건의 협력사와의 계약서 처리는 이제 야근 없이 3일이면 충분해졌다고 신세계백화점은 설명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매장 판매직의 근무시간을 오픈조와 마감조로 이원화한 시프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모든 직원이 오픈시간에 맞춰 출근해 마감시간까지 근무해서 연장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시프트제도 운영으로 연장근무가 없어졌다.
◇ 실무진이 건의하고 오너가 'OK'…'일과 삶의 균형' 강조
신세계의 주 35시간제 도입은 선진근로문화의 선제적 도입이 필요하다는 정 부회장을 비롯한 그룹 최고위층의 의지와 기업 실무진의 판단이 어우러진 결과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업무 시간 안에 주어진 업무를 모두 마치고, 퇴근 이후의 '휴식 있는 삶'과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의 질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며 생산성 향상을 통한 '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했다.
한국의 1인당 연평균 근로시간은 2113시간(OECD 2015년 통계 기준)으로 35개 OECD 회원국 평균(1766시간)보다 20%가까이 많다. 회원국 중 우리나라보다 근무시간이 긴 나라는 멕시코뿐이다. 매년 300명이 넘는 근로자가 과로사로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김재곤 신세계그룹 상무는 "장시간 근로, 과로사회로 대표되는 한국의 근로문화 개선이 사회적 관심사안이 될 것으로 오래전부터 예상해 왔다"며 "제조업에 비해 연장, 휴일 등 초과근로가 많지 않은 유통업 특성상 35시간 근무제 도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2년 전부터 과감하게 도입을 추진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실무진에서 근무시간단축의 필요성을 건의했고, 정용진 부회장을 비롯한 그룹 최고위층이 TF의 추진경과를 수시로 보고받으며 관심을 갖고 지켜봐 왔다"고 덧붙였다.
한편 현행 근로기준법은 휴게 시간을 제외하고 1주일에 40시간, 1일에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노사 당사자가 합의할 경우 1주에 12시간 연장근로 및 휴일근로가 가능해 주당 근로시간 한도는 총 52시간이다.
다만 지난 2000년 9월 고용노동부가 연장근로시간에 휴일근로가 포함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행정해석을 제시해 토요일과 일요일 16시간씩 최대 68시간까지를 근로시간 한도로 인정해왔다.
이번 개정안 통과로 종업원이 300명이 넘는 사업장은 오는 7월 1일부터 '주당 근로시간 52시간' 원칙을 지켜야 한다.
ryupd0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