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그룹 인사 마무리…올해 키워드 '오·세·기'

세대교체·오너 3·4세 전진 배치·기술인력 발탁
부회장단 축소, 임원진 '기술인재' 대거 중용

왼쪽 윗줄부터 시계 방향으로 정기선 HD현대 회장, 허용수 GS에너지 대표이사 부회장, 허세홍 GS칼텍스 대표이사 부회장, 구동휘 LS MnM 대표이사 CEO 사장, 이선호 CJ 경영리더, 신유열 롯데 부사.(각사 제공)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주요 기업들이 연말 인사를 확정하며 미래 사업을 이끌 새 진용을 꾸렸다. 오너가(家) 3·4세가 경영 전면에 나서고, 핵심 사업 수장에 '젊은 피'를 중용하는 세대교체 바람이 일었다. 특히 인공지능 전환(AX) 가속화에 발맞춰 엔지니어 출신 기술 인재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달 SK그룹을 필두로 삼성·LG·롯데·HD현대·GS·CJ·LS 등 주요 기업들이 2026 사장단 인사 및 조직 개편을 마무리했다. 통상 11월 말에서 12월 초에 단행되던 인사 시즌이 올해는 한 템포 앞당겨졌다.

경영 전면 나서는 총수 일가 3·4세들…'책임경영' 강화

올해 대기업 인사를 관통한 첫 번째 키워드는 오너 3·4세의 전진 배치다.

정기선 HD현대(267250) 수석부회장은 지난달 17일 사장단 인사를 통해 회장에 등극하며 '오너 경영 체제'를 공식화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이자 현대가 3세인 정기선 회장은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의 한 축을 맡아 HD현대그룹을 이끌게 됐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 신유열 부사장은 롯데바이오로직스 각자 대표에 임명됐다. 신 부사장은 또 롯데지주에 신설되는 전략컨트롤 조직에서 중책을 맡아 그룹 전반의 비즈니스 혁신과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도 주도할 예정이다.

CJ그룹에선 이재현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 CJ미래기획실장이 신설되는 미래기획그룹장을 겸임하게 됐다. CJ그룹의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신사업 발굴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의 수장을 맡게 된 것이다.

LS그룹에선 구자열 LS 이사회 의장의 장남인 구동휘 LS MnM 대표이사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구본혁 인베니 부회장, 구본규 LS전선 사장에 이어 구동휘 사장까지 'LS그룹 차기 회장 후보'로 꼽히는 3인방이 주력 계열사 사령탑을 맡으며 '3세 경영'에 속도를 내게 됐다.

GS(078930)그룹에선 3·4세인 허용수 GS에너지 사장과 허세홍 GS칼텍스 사장이 각각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허용수 부회장은 고(故) 허만정 창업주의 5남인 고 허완구 승산그룹 회장의 아들이다. 허용수 부회장은 2019년 GS에너지 대표이사로 취임 후 사업 경쟁력 강화와 미래 포트폴리오 확장을 주도해 왔다.

허세홍 부회장은 허동수 GS칼텍스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허세홍 부회장은 2007년 GS칼텍스에 입사해 석유화학, 윤활유 사업을 맡았고 2019년 대표이사로 부임했다. 허 부회장은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는 정유·석유화학 사업 재편을 주도할 예정이다.

왼쪽부터 박학규 삼성전자 사업지원실장 사장, 박홍근 삼성전자 SAIT 원장(사장), 류재철 LG전자 CEO, 김봉춘 LG화학 CEO(각사 제공)
사령탑 '젊은 피'로 세대교체 '기술인재' 대거 중용

그룹 주력 계열사와 핵심 조직 수장들도 대거 물갈이됐다.

삼성전자(005930) '이인자' 교체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7일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비상조직으로 운영하던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를 사업지원실로 상설화했다. 초대 실장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복심(腹心)으로 통하는 박학규 사장이 발탁됐다. TF를 이끌었던 정현호 부회장은 이 회장의 보좌역으로 옮기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LG는 그룹의 투톱인 LG전자(066570)와 LG화학(051910) 지휘부를 모두 교체했다. 4년간 LG전자를 이끌며 B2B·비(非)하드웨어·D2C 중심의 질적 성장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던 조주완 사장과 8년간 LG화학 전지·소재 등 신성장 사업을 주도한 신학철 부회장은 후임에 자리를 내주고 용퇴했다. 신 부회장의 퇴임으로 LG그룹은 1인 부회장(권봉석 ㈜LG 부회장) 체제로 축소 전환됐다.

롯데그룹은 이동우 롯데지주 대표 부회장, 이영구 롯데 식품군 총괄대표 부회장, 김상현 롯데 유통군 총괄대표 부회장, 박현철 롯데건설 대표 부회장 등 부회장단 전원이 물러나는 유례없는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젊고 새로운 리더십을 수혈해 조직 체질을 전면 쇄신하겠다는 신동빈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조처다.

'기술 인재'의 약진도 눈에 띄었다.

삼성전자는 미래 선행기술의 산실(産室)인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사장)에 나노과학·분자전자과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박홍근 하버드대 교수를 중용했다. 가전·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와 AI·로봇·반도체 기술 전략의 컨트롤타워인 삼성리서치장에는 '기술통' 윤장현 사장을 발탁했다.

LG전자와 LG화학 사령탑도 '기술통'으로 교체됐다. 류재철 LG전자 신임 CEO는 1989년 금성사 가전연구소에 입사해 경력의 절반을 연구개발(R&D)에 쏟은 정통 엔지니어 출신이다. 김동춘 LG화학 신임 CEO도 반도체소재사업담당, 전자소재사업부장, 첨단소재사업본부장 등을 거친 소재 전문가다.

LG그룹은 경영진 이하 임원 인사에서도 '기술 인재' 중시 기조를 이어갔다. 핵심 미래사업인 ABC(AI·바이오·클린테크) 분야를 포함한 R&D 인재가 전체 승진자의 21%를 차지했다. 올해 최연소로 승진한 임원(상무·전무·부사장)도 모두 AI 인재가 꿰찼다.

dongchoi8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