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폭탄 넘으니 환율폭탄…재계, 내년 사업계획 새로 짜야 하나
달러·원 환율 1500원 가시권…'관세협상 이후 하락' 예측 빗나가
현지화에 '고환율=수출 호재' 공식 깨져…대미 투자 비용 눈덩이
- 김성식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한미 관세 협상 타결로 걱정을 덜었던 우리 기업들이 이번엔 환율 복병에 고심하고 있다. 연초 사업계획 수립 당시에 비해 달러·환율이 100원 이상 급등한 데다 1500원을 넘길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기업들은 이미 수립한 내년도 사업계획을 대폭 수정해야 할 처지다.
23일 외환 당국에 따르면 달러·원 환율(종가 기준)은 지난 6월 30일 1352원으로 연중 최저점을 찍은 뒤 꾸준히 올라 지난 21일 1475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4월 9일(1484원) 이후 약 7개월 만에 사상 최고를 기록한 것이다.
1500원 돌파 가능성도 커졌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당초 무역 협상 관련 불확실성이 사라지고 나면 비교적 큰 폭의 하락을 기대했지만, 환율은 오히려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며 "1500원 선에 도달할 거라는 의견도 분분해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통상 환율 상승은 수출 중심인 우리 기업들에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 생산 제품을 해외에 수출할 때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원화로 환산한 수출 규모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해외 생산 비중이 증가해 고환율에 따른 수혜를 온전히 누리기가 어렵다.
반대로 수입 원자재 가격은 환율이 오른 만큼 늘어나 기업들의 부담은 가중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달러·원 환율이 1500원으로 2023년 평균(1305원) 대비 14.9% 상승하면 전체 산업 생산 비용은 4.4% 증가한다.
한 수출기업 관계자는 "원재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고환율이 지속되면 생산 비용이 늘어난다"며 "환율 추이를 매일 모니터링하며 원재료 구매 적기를 저울질하고 있었는데, 관세 협상 이후 하락할 것으로 봤던 환율이 또다시 고개를 들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우리 기업들이 대규모 대미 투자를 약속한 점도 고환율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앞서 지난 8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당시 삼성·SK·현대차·LG를 비롯한 주요 그룹들은 정부의 관세 협상을 측면 지원하고자 총 1500억 달러에 달하는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발표 당시 환율(1384원)로는 약 207조 원이었지만, 지난 21일(1475원) 기준 약 221조 원으로 14조 원 넘게 불어났다. 환율이 1500원까지 올라가면 우리 기업들의 대미 투자 비용은 225조 원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당초 예상보다 18조 원 늘어나는 것이다.
1400원대 중반인 현재 환율은 올 초 기업들의 예상치를 크게 벗어난 수준이다. 대한상공회의소 통계에 따르면 국내 50대 기업의 62.9%는 올해 사업계획 수립 시 기준 환율을 1300원대로 적용했다. 1400원~1450원으로 잡은 기업은 18.5%였고, 현재 수준인 1450~1500원은 11.1%에 불과했다. 1500원 이상으로 잡은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재계 관계자는 "1500원대 환율은 1998년 외환위기,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전례가 없다"며 "연말 환율이 1500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한 기업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환율이 지금보다 상승하면 현재 수립한 내년도 사업 계획 내 기준 환율도 다시 짜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eongs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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