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규모별 차등 규제, 주요국 중 韓 유일…"성장할수록 발목 잡아"

美·英, 회사법상 '기업규모' 아닌 '상장여부' 기준 규제
獨·日, 상법·회사법에 대기업 구분하나 절차상 효율 목적

대한상공회의소 전경 (대한상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4.17/뉴스1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기업의 자산이나 매출 규모에 비례해 규제가 누증되는, 이른바 '기업 규모별 차등 규제 규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주요국 가운데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 의뢰로 김영주 부산대 교수팀이 23일 발간한 'K성장 시리즈(8): 주요국의 기업 규모별 규제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상장 여부 등 기업의 법적 형태나 지위, 공시·회계 등 행위 유형에 따른 규제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상법, 자본시장법, 공정거래법, 외부감사법 등 주요 경제법 전반에서 자산총액, 매출액, 종업원 수 등 정량적 기준을 중심으로 규제를 설계한다. 국내 12개 법률에 343개의 계단식 규제가 존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기업이 성장할수록 규제가 늘어나는 '성장 페널티' 구조라며 기업의 성장 유인을 약화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은 기업 규제를 규모별로 세분화하지 않으며, 특히, 법령상 대기업규제는 명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상장 회사 등 지위 중심 구조에 따라 상장 유지 조건으로서 지배구조, 외부감사 등의 규제가 이뤄지며, 독점규제와 관련해서도 카르텔·남용·결합 등의 행위 규제가 주를 이룬다.

회사법은 연방 차원의 단일 회사법은 존재하지 않고 주별로 회사법이 운영되지만, 대기업 범주를 정해 상시적 추가 의무를 부과하는 체계는 없다.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이나 뉴욕주 회사법 등은 공개회사와 폐쇄회사를 구분하여 별도의 규제를 취하고는 있으나, 공개회사를 규모별로 나누어 차등적 규제를 실시하지는 않는다.

영국 회사법은 회사를 공개회사와 폐쇄회사로 구분하여 규제를 달리하지만, 공개회사를 규모별로 세분화하여 차등규제를 두는 체계는 없다. 공개회사는 상장회사와 그 밖의 회사로 나뉘는데, 상장회사의 경우 공시 규정이나 지배구조 관련 의무가 강화된다. 그러나 이는 규모에 따른 규제가 아니며, 기업지배구조 코드와 같은 자율규제 방식을 따른다.

독일은 상법에서 자본회사를 소·중·대규모로 구분하기는 하지만, 이는 재무제표 작성·공시·감사 등 회계 목적에 한정된 기술적·절차적 기준일 뿐이다. 지배구조·기업행위·공정거래 등 기업 전반을 규모별로 차등 규제하는 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 회사법은 자본금 5억 엔 이상 또는 부채 200억 엔 이상인 회사를 '대회사'로 법률상 정의하고 있지만, 대회사를 다시 세분화하여 규모별로 차등규제 하는 체계는 두고 있지 않다. 금융상품거래법과 독점금지법 역시 기업규모를 규제 기준으로 삼지 않고, 상장지위나 시장행위에 따른 기능별·행위 기반 규율을 적용할 뿐 규모에 따른 단계적 차등규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종명 대한상공회의소 산업혁신본부장은 "한국 경제 고성장기 도입된 기업 규모별 차등 정책은 경제력 집중 억제와 성장 격차 해소의 역할과 명분이 있었지만, 지금 같은 성장 정체기에는 성장을 독려하고 유인하는 방향으로 재검토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더욱이 국내 GDP 대비 수출 비중이 44%(2024년 기준)에 달하고, 시총 100대 기업의 해외 매출 비중이 50%(2022년 기준)를 넘는 등 대외 개방 경제로 전환된 상황에서 기업 규모별 규제가 우리 자신의 발목을 잡는 건 아닌지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seongs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