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도 펜 들고 질문하고…韓 재계 'AI 삼매경'

박지원 두산 부회장, 사장단 이끌고 美 실리콘밸리行
SK, CEO 대상 AI교육 확대…삼성·GS도 'AI 체득' 특명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사진 가운데)이 22일(현지시간) 미국 시애틀 아마존 본사를 방문해 AI 기반 경영혁신 사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두산그룹 제공) ⓒ News1 최동현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한국 경영계에 '인공지능(AI) 열풍'이 불고 있다. 사업 현장이나 실무자 교육에 AI를 추가하는 차원이 아니다. 그룹 총수와 최고경영진들이 미국 실리콘밸리의 선진 AI기업을 찾거나 펜을 들고 AI강의를 듣는 진풍경이 일상이 됐다.

두산 수뇌부, 美 총출동…SK, CEO도 AI 교육

23일 경제계에 따르면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은 22~25일(현지시각) 일정으로 계열사 핵심 경영진을 이끌고 미국 시애틀과 실리콘밸리를 방문했다. 두 도시는 아마존, 엔비디아, 퍼플렉시티 등 글로벌 AI 산업 최전선에 있는 빅테크가 밀집한 곳이다.

두산가(家)의 오너가 그룹 경영진을 이끌고 'AI 유학'을 떠난 셈이다. 정연인 두산에너빌리티 부회장, 유승우 ㈜두산 사장, 김민표 두산로보틱스 부사장 등 계열사 CEO는 물론, 최고전략책임자(CSO)들도 동행했다고 한다.

두산 경영진은 아마존, 엔비디아 등 빅테크 본사에서 AI 기술 현장을 눈으로 살피고 퍼플렉시티, 피지컬인텔리전스 등 피지컬 AI와 에이전트 AI를 선도하는 스타트업과도 만날 방침이다. 세계적 AI 분야 석학인 최예진 스탠퍼드대 HAI 교수가 직접 나서 강연할 예정이다.

SK그룹도 최근 AI교육 대상을 사장급(C레벨)으로 확대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구성원 개개인이 AI를 친숙하게 가지고 놀 수 있어야 혁신과 성공을 이룰 수 있다"며 AI 체화를 주문한 직후 AI 교육 대상을 기존 임직원에서 경영진으로 확대한 것이다.

SK그룹이 이달부터 내달 초까지 C레벨 경영진 1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AI 리더십 프로그램'에는 장용호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 유영상 SK텔레콤 사장 등 최고경영진 24명과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인사책임자(CHO)가 포함됐다.

경영진이 학생처럼 AI 교육을 받게 된 이유는 최태원 회장의 '특명' 때문이다. 최 회장은 지난달 21일 이천포럼에서 "이제는 AI/디지털 전환(DT) 기술을 속도감 있게 내재화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라며 모든 업무와 사업에 AI를 도입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15일 경기 용인시 삼성전자 The UniverSE에서 진행된 '삼성 AI 포럼 2025'에서 삼성전자 전영현 대표이사 부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9.15/뉴스1
"AI 없인 제조업 미래 없다"…삼성·GS도 'AI 열풍'

삼성전자도 연례 AI 기술 교류의 장(場)인 '삼성 AI 포럼'을 올해는 예년보다 두 달 앞당겨 지난 15일 개최했다. 포럼에는 딥러닝 분야 세계적 석학 요슈아 벤지오 캐나다 몬트리올대 교수, 언어모델과 AI 에이전트 연구의 권위자인 조셉 곤잘레스 UC 버클리 교수 등이 강연자로 나섰다.

삼성전자가 AI 포럼을 앞당긴 배경엔 'AI 전환'(AX)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내부의 위기의식이 반영됐다는 것이 재계의 해석이다. 노태문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 직무대행 사장은 "2030년까지 업무 영역의 90%에 AI를 적용하겠다"고 공언했을 정도다.

허태수 GS그룹 회장은 이달 초 주요 계열사가 모두 참가하는 그룹 해커톤에서 신속한 AI 전환과 구성원의 생성형 AI 활용 역량 강화를 역설했다. 허 회장은 지난해를 'AI 원년'으로 정하고 AI에 바탕을 둔 신사업 모색을 강조해 왔다.

경영계가 'AI 삼매경'에 빠진 이유는 구조적 한계에 봉착한 전통 제조업에 AI를 접목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회사를 이끄는 수뇌부부터 AI를 체득해야 진정한 'AI 혁신 로드맵'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은 출장에 동행한 경영진에 "활용 가능한 모든 영역에서 AI를 접목해야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허태수 회장도 해커톤에서 "석유화학·가스 등 전통의 화학·물리적 기술이 생성형 AI와 결합하면 우리 그룹이 새로 발전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SK, GS, 두산까지 그룹의 오너나 수장이 직접 나서서 AI를 배우겠다는 분위기가 크게 확산하고 있다"며 "그만큼 (한국 제조업이 처한 위기감이) 급하고 긴박하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허태수 GS 회장이 8일 웨스틴 서울 파르나스에서 개막한 '제 4회 GS그룹 해커톤' 현장에 방문했다.(GS그룹 제공)

dongchoi8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