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민의 이슈+]삼성은 소니·애플을 어떻게 넘어섰나

미국 기자 제프리 케인 '삼성의 부상' 출간, 세계 초일류 기업 성장 배경 담아
이병철 '도쿄선언'으로 반도체 사업 초석, 이건희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혁신

1983년 수원 소재 삼성전자 본사에서 당시 73세인 이병철 삼성전자 회장과 28세인 스티브 잡스가 대화하는 모습. ⓒ News1

(서울=뉴스1) 류정민 기자 = "1997년 IMF 외환위기는 오히려 삼성에는 이건희 회장이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해 제시한 비전을 실행에 옮길 기회였다."

삼성은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위기와 일본 소니, 미국 애플의 견제 속에서도 글로벌 시장의 최정점에 설 수 있었을까.

최근 미국에서 발간된 '삼성의 부상'(Samsung Rising)은 숱한 난관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의 성장 스토리를 담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제프리 케인(Geoffrey Cain)은 미국 언론인의 관점에서 한국에 본사를 둔 삼성그룹, 삼성그룹에서도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성장 배경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는 삼성의 전·현직 임직원, 정치인, 언론인, 활동가 등 400여 명을 인터뷰했다.

저자는 책의 전반부에 고(故) 이병철 회장이 일제 강점기인 1938년, 28세의 나이로 대구 인교동에 '삼성상회'를 설립한 것과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사업이 부침을 거듭한 삼성의 창업초창기를 소개한다.

1938년 창업 당시 삼성상회 전경. ⓒ News1

특히 오늘날 삼성전자를 있게 한 반도체 사업을 두고는 이병철 회장이 고민을 거듭한 것으로 묘사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은 1970년대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기술집약적 산업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병철 회장의 절박함에서 출발한다.

이병철 회장은 1982년 보스턴 대학 명예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미국을 찾은 길에 IBM, GE, 휴렛-팩커드의 반도체 조립 라인을 견학한다. 케인에 따르면 이때 이병철 회장은 미국 기업들의 반도체 조립 라인에 매혹됐지만, 한편으로는 냉혹한 현실을 깨닫고 후계자인 셋째아들 이건희 회장에게 "우리가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산업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이때 이건희 회장이 나서 설득했다고 케인은 전했다. 또 당시 정주영 회장이 이끄는 한국 재계 라이벌 현대그룹이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것도 삼성에 자극이 됐다고도 했다. 결국 이병철 회장은 이듬해인 1982년 2월 8일, 일본 도쿄 오쿠라 호텔에서 반도체 산업에 대규모로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는데,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도쿄 선언'이다.

2017년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애플 아이폰 X 등 신제품 발표에 앞서 고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 영상을 배경으로 인사말을 건네고 있다.ⓒ AFP=뉴스1 ⓒ News1 김정한 기자

삼성의 반도체 투자선언은 이듬해인 1983년 이병철 회장과 스티브 잡스의 운명적 만남으로 이어진다.

'히피 청년'과도 같은 모습을 한 28세의 애플 사장 스티브 잡스는 그해 11월 자신이 구상한 태블릿 컴퓨터에 사용될 최신 반도체 칩과 디스플레이 소재를 얻기 위해 삼성전자를 찾았다.

잡스의 삼성전자 방문에 동행했던 동료 제이 엘리엇에 따르면 당시 73세인 이병철 회장을 만난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구상한 태블릿과 PC 등에 대해 한참 동안 수다를 떨었다.

이를 지켜본 엘리엇이 "수백만달러 가치의 아이디어를 (이병철 회장에) 준 것"이라며 우려했지만, 잡스는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고 한다. 잡스의 수다를 들어준 이병철 회장은 그가 자리를 뜬 뒤 주변에 "IBM에 맞설 수 있는 인물"이라고 잡스를 평가했다.

1980년 고(故) 이병철 선대 회장(왼쪽)과 함께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사진 삼성전자 제공) ⓒ News1 김진 기자

1987년 11월18일 이병철 회장이 폐암으로 숨을 거두면서, 그의 셋째 아들인 이건희 회장이 45세의 나이로 삼성을 이끌게 된다. 이건희 회장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냉전이 종식되던 1990년대 초반 글로벌 붐이 일고 있었지만, 삼성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고 절박함도 없었다고 진단했다. 1992년 오랜 기간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한 이건희 회장은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자신의 아버지가 도쿄선언을 한 오쿠라 호텔에서 삼성전자 디자인 고문인 후쿠다 다미오를 만나 '삼성전자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해달라'며 밤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후쿠다 고문은 후에 삼성전자의 문제점을 짚은 보고서를 쓰는데 이는 1993년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의 촉매제 역할을 한다. 후쿠다는 보고서에서 제품 디자인은 외형뿐만 아니라 제품 전반에 작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삼성의 디자이너들에게는 엔지니어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보다 강력한 권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독일로 건너가는 비행기 안에서 보고서를 읽은 이건희 회장은 1993년 6월7일 프랑크푸르트 켐펜스키 호텔에 200여 명의 임원을 불러모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보라"는 말로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삼성 임원진들에게 '신경영' 구상을 밝히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제공) ⓒ News1 김진 기자

삼성은 IMF 외환위기가 몰아닥치면서 2000년 삼성자동차를 매각하는 아픔도 겪는다. 당시 삼성그룹은 삼성전자도 위태롭다는 판단에 따라 삼성전자 직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3만명가량을 해고하고 고위 경영진의 절반을 교체했으며, 고위경영진의 임금 10%를 삭감했다. 또 건설기계, 파워디바이스, 방산, 유통 등 비핵심사업 등을 매각해 20억달러가량의 자금도 확보한다.

몸집을 줄인 삼성은 휴대폰, TV, 디스플레이, 리튬이온배터리, 낸드플래시메모리 등에 과감히 투자했고, 이는 후일 주요 고객사였던 애플의 아이팟을 가능하게 하는 등 괄목한 만한 성과를 이뤄낸다.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인사팀장을 지내며 이건희 회장을 가까이서 지켜본 황영기 전 금융투자협회 회장은 저자에 "IMF 외환위기는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실행에 옮길 기회였다"고 회고했다.

삼성은 2001년 4월 "소니에게 삼성은 하나의 부품사"라고 말한 이데이 노부유키 당시 소니 회장의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가 나온 뒤 정확히 1년 뒤, 시가총액에서 소니를 처음 넘어선다. 이후 삼성과 소니는 서로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하다 2002년 말부터 삼성이 소니를 멀찌감치 따돌리기 시작했다. 외환위기가 본격적으로 불어닥치기 시작한 뒤 불과 5년 내 벌어진 일이다.

'삼성 라이징' 표지ⓒ 뉴스1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집중은 애플의 아이폰 탄생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애플은 2006년 2월 삼성전자에 아이폰에 들어갈 반도체 칩을 5개월 내 개발해달라고 주문했다.

당시 애플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과제라고 여겼지만,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은 6주 만에 시제품을 만들어 테스트할 정도로 놀라운 속도를 보여줬고, 이듬해인 2007년 1월 스티브 잡스의 야심작인 아이폰이 처음 출시될 수 있었다.

이후 삼성이 갤럭시를 출시하면서 애플과 경쟁 상대가 됐고, 특히 갤럭시가 오퍼레이팅시스템(OS)으로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채택한 것을 스티브 잡스가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시장 점유율에서 애플을 압도하고 있다. 14일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 갤럭시는 2011년 이후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트너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한 해 동안 2억9619만대의 스마트폰을 판매해 시장 점유율 1위(19.2%)를 유지했으며, 화웨이(2억4061만대·15.6%), 애플(1억9347만대·12.6%), 샤오미(1억2604만대·8.2%), 오포(1억1869만대·7.7%)가 뒤를 잇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0월25일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뇌물공여 등 파기환송심 첫 공판을 마친 후 차로 향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정에 나온 것은 지난해 2월 징역형의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이후 627일 만이다. 2019.10.25/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저자는 삼성의 오너 경영을 오늘날 삼성전자를 가능케 한 원동력으로 보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한다. 삼성의 신입사원 수련회 카드섹션이 북한 세습정권의 그것을 떠올린다며, 오너 경영을 '왕조'(Dynasty)에 비유하는 부분은 삼성에게는 거북할 수 있는 내용이다.

또 과거 이건희 회장이 노태우 전 대통령들에 250억원의 비자금 건네 실형을 선고받은 것과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 등을 소개하며 불법적인 경영행태를 꼬집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pandemic, 세계적 대유행) 충격에 따른 글로벌 경제위기를 삼성은 또 어떻게 극복할까.

'1993년 51세의 이건희는 낡고 썩은 관행을 모두 버리고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선언했는데, 2019년 51세의 이재용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는가.' 저자는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파기환송심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의 근황을 전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ryupd01@new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