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를 내다본 기업인…故최종현 SK회장 20주기

이번 주부터 故최종현 회장 20주기 기념행사 잇따라
무자원 산유국, ICT·반도체 강국 등 미래비전 모두 실현

폐암수술을 받은 故 최종현 회장이 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7년 9월,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 경제위기 극복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왼쪽 두번째) ⓒ News1

(서울=뉴스1) 송상현 기자 = "미래를 내다 본 기업인"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이 타계한지 오는 26일로 꼭 20년이 된다. 최종현 회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부친으로 "늘 10년 후를 미리 준비한 기업인"으로 평가받는다.

SK그룹은 최종현 회장 타계 20주기를 맞아 이번 주부터 선대 회장의 업적과 경영철학을 기리는 행사를 잇따라 진행한다. 오는 14일부터 고인의 업적과 그룹의 성장사를 살펴 볼 수 있는 20주기 사진전을 주요 사업장에서 개최한다. 24일에는 워커힐호텔 비스타홀에서 경영철학을 재조명하는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SK그룹 구성원의 기부금을 모아 숲 조성 사회적기업인 트리플래닛에 전달해 5만평 규모의 숲도 조성한다.

그는 석유 한방울 나지않는 대한민국을 '무자원 산유국'으로 만들고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세계 최초 CDMA 상용화로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의 기반을 닦은 것도 그의 업적 중 하나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해 가난한 청년들을 조건없이 유학보내는 등 인재양성에도 힘썼다. 1998년 8월26일 폐암으로 69세의 일기를 마친 그는 화장(火葬)이 드물었던 시절 화장 유언으로 사후에도 큰 울림을 남겼다.

◇치밀한 준비로 무자원 산유국·ICT 강국 초석 마련

최종현 회장은 자본, 기술, 인재가 없었던 1973년 당시 선경(現 SK)을 세계 일류 에너지·화학 회사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섬유회사에 불과한 SK가 원유 정제는 물론 석유화학, 필름, 원사, 섬유 등에 이르는 수직계열화를 선언한 것이다. 많은 이들은 '불가능한 꿈'으로 폄훼했다. 그러나 최종현 회장은 장기적 안목으로 중동지역 왕실과 석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한 끝에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했다.

1983년부터는 해외유전 개발에 나섰다. 성공 확률이 5%에 불과해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뚝심있게 사업을 추진했다. 이듬해인 1984년 북예멘 유전개발에 드디어 성공했다. 대한민국이 무자원 산유국 대열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이후 1991년 울산에 합성섬유 원료인 파라자일렌(PX) 제조 시설을 준공해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최종현 회장은 '미래설계'가 그룹 총수의 역할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다고 한다. 산업동향 분석을 위해 1984년 미국에 미주경영실을 세운 이유다. 이후 정보통신 분야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은 최종현 회장은 미국 ICT 기업들에 투자하고 현지법인을 설립해 이동통신사업을 준비했다.

1992년엔 압도적 격차로 제2이동통신사업자에 선정됐지만 특혜시비가 일자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다. 아쉬워하는 임직원들을 "준비한 기업에는 언제든 기회가 온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최종현 회장은 실제로 2년 뒤 문민정부 시절인 1994년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했다. 당시 주당 8만원대이던 주식을 주당 33만5000원에 인수하기로 하자 주변에서 재고를 건의했다. 최종현 회장은 "이렇게 해야 나중에 특혜시비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다. 앞으로 회사 가치를 더 키워가면 된다"고 설득했다.

故 최종현 회장이 1986년 해외 유학을 앞둔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들에게 장학증서를 전달하고 있다. ⓒ News1

◇인재개발의 꿈…"일등국가 되려면 세계적 학자 나와야"

최종현 회장은 1970년대부터 인재양성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1972년 조림사업으로 장학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서해개발(現 SK임업)을 설립했다. 1974년에는 사재를 털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만들었다. '일등국가가 되기 위해선 세계적 수준의 학자들을 많이 배출해야 한다'는 최종현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재단이다. 재단은 당시 서울 집 한 채 값보다 비싼 해외 유학비용은 물론 생활비까지 파격적인 지원을 했다.

재단은 44년간 약 3700명의 장학생을 지원했고, 740명에 달하는 해외 명문대 박사를 배출했다. 이들은 80% 이상이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양계 최초 예일대 학장인 천명우(심리학과), 한국인 최초 하버드대 종신교수 박홍근(화학과) 등이 대표적이다.

◇시대를 앞선 유언 '화장'(火葬)…한국 사회에 새문화 이끌어

최종현 회장은 폐암으로 갑작스레 타계하기 직전 "내가 죽으면 반드시 화장(火葬)하고, 훌륭한 화장시설을 지어 사회에 기부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묘지 난립으로 좁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을 평소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최종현 회장은 사회지도층 인사 중 처음으로 화장을 택한 인사로 기억된다.

시대를 앞선 유언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후 한 달만에 '한국 장묘문화개혁 범국민협의회'가 결성돼 '화장 유언 남기기 운동'을 전개할 정도였다. 최종현 회장 장례가 유언대로 화장으로 치러지자 1998년 20%에 불과했던 화장률은 이듬해 30%를 넘는 등 매년 급증했다. 지금은 82%에 달할 만큼 대중화됐다. SK그룹은 최종현 회장의 유언에 따라 2010년 1월 500억원을 들여 충남 연기군 세종시 은하수공원에 장례시설을 준공해 세종시에 기부했다.

벌거숭이였던 충주 인등산이 울창한 '인재의 숲'으로 변한 모습. 원안은 故 최종현 회장과 故 박계희 여사가 1977년 인등산에서 함께 나무를 심는 모습 ⓒ News1

◇최종현의 소중한 유산...10년을 내다본 경영

최종현 회장이 남긴 경영철학은 장남 최태원 회장이 충실히 이어받았다. 최종현 회장이 10년을 내다보고 준비한 끝에 SK를 직물회사에서 석유화학과 정보통신을 아우르는 그룹으로 성장시켰다면 최태원 회장은 2011년 하이닉스 인수 등을 통해 반도체와 바이오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최태원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 직후 "하이닉스가 SK 식구가 된 것은 SK의 반도체 사업에 대한 오랜 꿈을 실현하는 의미가 있다"며 30년 전 최종현 회장의 못다 이룬 꿈을 언급했다. 최종현 회장이 1978년 선경반도체를 설립했으나 2차 오일쇼크로 꿈을 접어야 했던 과거에 대한 언급이다.

최태원 회장이 1998년 취임할 당시 SK그룹은 매출 37조4000억원, 순이익 1000억원, 재계 순위 5위였으나 현재는 매출 158조원, 순이익 17조3500억원, 재계 순위 3위로 성장했다. 최종현 회장의 사업보국과 사회공헌 경영철학은 최태원 회장의 사회적가치와 공유인프라 전략 등으로 진화했다.

이항수 SK그룹 홍보팀장(전무)은 "최종현 회장의 혜안과 통찰 그리고 실천력은 후대 기업인이 본받아야 할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며 "SK그룹은 앞으로도 최종현 회장의 경영철학을 올곧게 추구해 사회와 행복을 나누는, 존경받는 일등기업으로 지속 성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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